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소녀 Jan 28. 2021

일기는 꼭 논픽션이어야 할까

글의 치유성

김이나 작사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겐 여럿의 아이돌 노래를 작사한, 그저 '예쁜 유명인'으로 각인돼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 건 음악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 때문이었다. 무명의 가수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간절한 이들의 노래를 '심사'하려 하지 않고 그들의 인생을, 목소리를, 이야기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대해 함부로 선입견을 가졌었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확, 호감 쪽으로 넘어가버린 계기가 있었다. 김영하 작가와 가진 어느 짧은 인터뷰(톡터뷰이) 때문이었다. 


"일기를 픽션으로 썼거든요" 

그는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어느 시절에, 현실이 힘들었는지 거짓말로 일기를 썼다고 했다. 실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하루를 썼다고, 하지만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단다. 뭔가 허황된 아이일까 걱정을 하셨던 모양이었다. 와, 이런 사람이 또 있었네. 그리고 묻어두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울컥 떠올랐다.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과정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늘 '글짓기 반'에 속해 있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산문반'으로 가서 (일기의 확장 버전인) 산문을 쓰고, 매주 백일장에 나갔다. 농사꾼처럼 성실하게 매일 글을 썼다. 수확도 나름 괜찮아서 백일장에 나갈 때마다 상장을 들고 왔다. 글은 학교 교내지에 자주 실렸다. 어디선가 낭독 같은 것도 했다. 그런데 내 글을 읽어본 엄마에게는 혼이 나곤 했다. 내 글이 어딘가 픽션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이야기면 솔직하게 써야지. 

왜 이 부분은 지어내서 썼어. 엄마는 상장을 쥐고 있는 내 손을 잡으면서 속삭이는 말로 혼을 냈다. 마치 누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처럼. 부끄러움과 상처를 동시에 받았다. 그리고 내가 쓴 산문이 줄줄이 상을 받는 동안에도 늘 상장의 뒷면에는 '거짓된 글'이라는 옅은 죄책감이 묻었다. 그때 나는 열 살 남짓이었다.  


거짓말을 쓰려던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새로 '지어낸' 결말이 더 좋았다. 현실 이야기의 결말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이후로도 픽션이 가미된 산문은 계속되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서야 엄마도 나도 알게 되었다. 그 글들은 픽션이어도, 논픽션이어도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다만 (정직을 최대 미덕으로 믿는) 엄마의 가치관과 내 (글 쓰는) 성향이 달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열 살짜리의 죄책감은 마음속 한편에서 꽤 오래 살았고, 꼬맹이가 카피라이터 어른이 되어서야 오래전 산문들은 죄를 벗었다. 


김이나 작가 엄마의 마음이나, 우리 엄마의 마음을 이제는 당연히 안다. 어떤 걱정과 노파심으로 우리를 야단쳤는지도 안다. 그 안에 혹여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엄마도, 어려도 나이 들어도, 늘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김이나 작가의 엄마도 그에게 엄청 사과하셨다고 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영상에서 인터뷰이였던 김영하 작가가 말했다. 솔직하게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가상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도 된다. 그럴 때 더 자신에 대해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어린 작사가도, 어린 나도 '픽션'의 글을 썼지만, 결국 이야기는 다 우리 자신의 것이었다. 그저 우리의 결핍과 소망을 담은 픽션. 


그러니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솔직하든 솔직하지 않든, 글은 그저 쓰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내 감정을 써 내려간다기보다는, 글을 쓰면서 내 감정을 알아가고 정리할 때가 많다. 길게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도 서서히 알게 된다. 내가 쓴 글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기분도 든다. 그러니 일기(가 아니라 격일기 주기 월기 분기도 좋다)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사소하고도 위대한 일인가.


'귀국 365일째' 일기를 썼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으로, 제주로 탈출해 표류 생활을 한지 오늘부로 딱 1년. 서너 달쯤이면 상하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고 나름 기록의 일기를 써왔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본 것은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다. 상하이 탈출과 귀국 후 격리, 죽음의 공포, 공황장애, 10개월 간의 치료, 공황장애 완치, 그리고 새해. 일 년 동안 많은 것을 해냈다.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365개의 글은 그렇게 기록이 되기도, 치유가 되기도, 방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모두 논픽션이었다.


언니 식구들이 귀국 1주년 파티를 열어주었다. 일 년째 방을 빌려주고 있는 둘째 조카에게 이 영광을 돌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설거지 그 씻김의 희열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