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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Feb 08. 2022

장래희망은 재미있는 할머니입니다

슬기롭게, 위트 있게

너는 몇 살이야?

네살 조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었나 보다.

그래서 조카도 매번 주변인들의 나이를 묻는다.

'나이 질문을 초면에 투척'하는 문화는

이렇게 대를 이어간다.

 

언젠가 네살 조카와 네살처럼 놀고 있는데

문득 조카가 물었다.

그런데 이모는 몇 살이야?

음.

언젠가 큰이모의 나이가 사십이 넘었다는 것을 듣고

조카가 충격을 받아 제 손으로 이마를 치며 

뒤로 넘어갔던 것이 떠올랐다.

사..... 십...?!!!

조카에게는 우주만큼 가늠할 수 없는 숫자였다.


내가 되물었다.

조카야 너는 몇 살이니?

네살.

이모는...음.

네살네살이야.

양손을 쓰면서 보여주었다.

넷넷.


나는 네살인데, 이모는 네살네살이야?

나는 네살, 이모는 네살네살, 꺄하하하!

조카는 다시 한번 이마를 탁 치며

꺄르르 나뒹굴었다.


조카가 이모의 조크를 알아듣고 웃었는지

그저 라임이 맞아서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십'이라는 숫자를 듣지 않고도

조카는 이모의 나이를 이해했다.

두 손을 다 써야 하는 나이라고.




어느 날 조카에게 물었다.

조카야 니 꿈은 뭐야.

요즘엔 '그런 질문' 금지인 시대지만

어린이의 꿈이 궁금했다.


"시크릿쥬쥬 별의여신이 되는 게 꿈이야"

꼬맹이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쥬쥬의 반짝이 옷을 꺼내와서 입자,

조카는 이미 꿈을 이룬 것 같았다.


이모는 꿈이 뭐야?

음.

이모는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야

할머니가 꿈이야?

아니. '재미있는' 할머니인데.

어. 알았어. 하고는 시크하게

시크릿쥬쥬의 노래를 부르며 떠났다.


정말로 내 꿈은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게 생각할수록 쉽지가 않다.

경험과 지혜와 여유와 위트가

모두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젊음을 질투하지 않고,

나이듦을 비관하지 않고,

인생에 찾아올 고비들을 인정하고,

언제나 재미를 찾고, 재미를 품고

슬기롭게, 솔직하게

조크로 툭-


그렇게 나이든다는 건

반짝이 스팽글 원피스를 입지 않고도

시크릿쥬쥬만큼 멋있는 꿈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면

그제서야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러스트_안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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