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지금 당장 용인에 가야겠지. 민속촌으로 달려가 곤장 맞아 마땅하겠지. 그래도 싸니까.
뭘 또 얼마나 죄를 지었기에 이러느냐면(뭐 한 둘 이겠습니까 만은), 엄마 마음 몰라주는 불효자 라서.
오늘도 점심을 먹는데 전화가 왔다.
-밥 먹니?
-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일은 무슨. 날 더우니까 조심하고 다녀. 잘 먹고 있지?
나란 사람, 항상 뭐든 잘 먹는 사람이기에, 엄마란 사람, 그런 날 잘 알기에, 나는 잠시동안 고민했다.
-네. 먹고 있어요.
-그래. 떨어지기 전에 얘기해라.
영양제를 말하는 거였다. 우리 엄마 말로는 술이며 담배며 나쁜 것을 너무 많이 넣고 산다. 그러니 이런 것 좀 먹어야 한다며 준 게 바로 그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한 봉 씩. 간단해 보이지만, 하나 뜯으면 열 두개의 알약이 들어있다. 비타민, 마그네슘, 비오틴. 그냥 좋다는 건 다. 건강해 지겠지 하고 먹어야 건강해 진다던데, 나는 글쎄, 믿음이 부족하다. 믿음이.
그래도 저녁을 먹고 건강해지기위해 집을 나섰다. 오솔길을 걷는데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인다. 맞다. 엄마다.
-운동중이었어. 단지가 넓어서 걷기 좋아. 안그래도 아들이 산책이라도 할라나 싶어, 요 근처에 있었지. 그래 밥은 먹었고?
-네. 근데 손에 든건 뭐에요?
-자두랑, 귤이랑 뭐 이거저거. 애들 가져다 주라고.
-무겁게 뭘 이런걸 들고 다녀요. 요즘 주문하면 다 배달해 주는데.
커피를 한 잔 하자는 엄마에게,
-지금 먹으면 잠 안와요. 소화되게 음료수 사올게요.
하고는, 편의점에 들렀다.
사이다를 가운데 두고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얘, 살찐다 이런 거 먹지마. 우유 같은거 먹어.
-원 플러스 원 하길래요. 먹기 그러면 놔둬요.
-아이고, 여름은 여름이다.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이네. 그나저나...우리 아들 스트레스 받아 어쩌니, 머리가 백발이 다 되겠네.
-먹고 사는게 다 그렇죠 뭐. 다들 이러고 살아요.
-얘, 스트레스 너무 받으면 확 다 때려 쳐버려 그냥. 아들은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없어요. 그런거
-그러지 말고, 정 머리 아프면 다 맡겨 놓고 한 일주일 훌쩍 떠났다 와.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었다 와.
-젊은 사람이 놀면 뭐해요. 나는 괜찮아요.
-그리구 몸이 건강해야 다 소용 있는거야. 튼튼해야 헤쳐나갈 힘도 생기는 거구. 술좀 줄이고 담배도 좀…
-아 좀! 알아서 한다니까요! 괜찮다는 대두 자꾸만 그래요!
나는 이렇게 ‘빽!’ 성을 내고는 피곤해 씻고 일찍 자야겠다며 일어났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의식없는 신호 같은 것을 보내고 있었다. 나 좀 도와 달라고. 나 좀 안아 달라고. 엄마니까. 그래도 되지 않겠냐고.
영화를 틀어놓고 맥주 캔을 땄는데 메세지가 왔다.
-형, 나는 요즘 하고 싶은게 없어. 내가 뭘 원했는지도 모르겠고. 형은? 사업 그만 두면 뭐하고 싶어?
-나야 딱 하나 있지. 하고 싶은거
-전에 말했던... 책방?
-아니. ‘아무 것도 안하는 거’.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점심을 먹고 전화를 했다.
-엄마, 별일 없죠?
-응 그런데 좀 다쳤다.
-왜! 얼마나! 어쩌다가!
-양평 집에서 마당 나오다가 계단에 미끄러졌어. 슬리퍼가 오래되가지고 바닥이 다 닳았나봐. 나는 괜찮다.
-병원은요?
-정갱이쪽이 까졌어. 피가 철철 났지. 뼈에는 이상 없댄다. 괜찮아 나는.
-아휴 증말! 아니, 조심좀 하지. 큰일날 뻔잖아요!.
-괜찮대두 그러네. 뼈안다쳤으니 됐다. 당분간 사우나를 못가서 문제지.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엄마집으로 걸었다.
-어디 좀 봐요. 이만하길 다행인 줄 아세요.
-손에 든 건 뭐냐?
-동네에 수제버거집 생겼어요. 엄마 이런거 좋아하잖아. 그리고...맞을라나 모르겠네. 튼튼해 보이는 걸로 고르긴 했는데.
-아이고 발에 딱 맞네. 꽃 그림 이네. 이쁘다. 그리구 이런거 좀 사 먹지 마. 너 좋아하는 김치찌개 있어 먹고가. 덥지? 에어컨 켜줄게.
우리 엄마. 잘 넘어지는 우리 엄마. 그래 놓고 맨날 괜찮다는 울 엄마.
여하튼 엄마나 나나 이만하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