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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Jul 01. 2022

자연스럽게 살고 싶소만

자연스럽게 살고 싶소만


최근 신뢰할 만한 조사에 따르면, 40대 남성이 가장 즐겨 보는 프로가 ‘나는 자연인이다’란다. 그리고 보기와 다르게 나도 40대 남자다. 우리는, 나는 왜 자연인을 동경하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성찰이고 고백이자 반성이며 명분이다.


왕이 되고 싶은가. 물론 신료대신과 호족을 상대하고 오랑캐와 왜구를 물리치며 역모를 단속하고 무엇보다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하는 자리인지라 그에 따른 과보로 단명할것 같다. 그래도 한 번 쯤은 그리 살고 싶다. 비록 백성도, 무수리도, 달성할 대업 따위도 없을 지라도, 그것이 비루한 집 한 칸 일지라도, 내 세상에서 내가 그리하라면 스스로 그리되는 것이고 말라하면 스스로 말게 될지어다. 내가 주상이고 어명이오, 천하 산천이 모두 내 것이리라. 나만의 생각이다.


또 그들은 친구도 직장 동료도 채권자도 이웃도 멀리 떨어졌거나 존재하지 않기에, 비교적 ‘관계’로부터 자유롭다. 모름지기 관계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고 행복의 근원이자 동기이며 모든 질문의 시작과 끝일지 모른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책임, 회피, 예의, 시기, 배려, 감시, 강요, 의무, 계약 등 거의 모든 형태의 부정적 피곤함으로 나를 괴롭게 한다. 괴로움을 피하는 것이 행복의 길, 자연의 이치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자신의 왕국에서 만큼은 관계에서 자유로운 그들은, 경쟁과도 자유롭다. 사는 게 그렇다. 경쟁에 경쟁, 이긴 놈들끼리 붙이고, 진 놈들끼리 또 붙고. 아, 정말 싸우다 볼 일 다보는 이 놈의 세상. 적자생존, 약육강식, 그게 자연이야 라고 훈계하시는 현자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소망해 본다. 무경쟁 상태를.


또 현자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고 생산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내 손으로, 내 발로, 오롯이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것을 만드는 행동은 사람이 이승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내 집을 짓고 터를 가꾸는 일. 채집과 수렵, 경작으로 얻어낸 재료를 입맛대로 버무려 일용할 양식을 얻어 내는 일.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 일. 세간살이를 만드는 일. 자연인은 이 모든 활동을 손수 한다.


이런 연유로,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느라 적잖게 피곤한 나는,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최신형 가죽 소파에 기댄 채 ‘자연인 356회’를 시청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스트레스를 배불리 먹었으니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살찐 돼지를 볶아 안동소주를 곁들이면서 말이다. 이러나 저러나 건강만 나빠질 뿐이다.


나도 언젠가 그 날이 오면, 꽃이 지는 이유를 알게 되는 그 날이 온다면, 나를 억누르는 모든 관계와 경쟁을 훌훌 벗어 던지고, 돌아가련다. 스스로 그러한 곳으로. 자유롭게.

물론 그날이 언제 일지, 이루어질지 누구도 장담치 못하니 나는 그저 건강과 생존에 온 힘을 다해야겠지. 이 소파에 누워 그들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말엔 청계산에 오르려 한다. 정상에 서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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