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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May 02. 2022

중년의 바베큐

친구가 친구를 만나서

 오늘도 대충 일과를 마치고 옥상에 올라 테이블을 펴는데, 꺽다리 하나가 불쑥 들어온다. 영진이다.    

 "왔냐?. 뭐 사왔네?."

 삼겹살, 쏘시지, 상추, 고추, 바나나, 콜라, 소주. 30년 지기는 장을 봐왔다. 여전히 새로운 녀석.   

 "잔치 팬 있는데 거기다 굽지?"

 "장 봐온 거 안보이냐, 불 피워, 불!"

 화로에 숯을 올리고 토치를 때자 연기가 피어오른다. 눈이 시리다. 불이 준비되는 동안 소주를 딴다. 

 "쌈을 사왔네."

 "야채도 같이 먹어 줘야지. 귀찮더라도."

 한 잔 들이키고, 고기 뒤집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중년 남자의 얼굴. 못 본새 더 늙었네. 나도 늙었다 생각하니 괜시리 서글퍼지고 만다. 

 고기가 익어가고 술잔도 익어가니 말도 익어간다.   

 "그래서 뭐 사업은 좀 나아졌냐."

 "뭐 좋아지겠지. 요즘 다들 그래."

 "마지못해 버티는 거구만. 야 니가 무슨 지금 뭐 독립운동 하냐. 그러다 병 온다. 그래도 눈 하나 깜짝 들 안 해. 그러니까 대충 대충 해. 그러다 아니면 마는 거지 뭐."

 "야! 다들 그러고 살아." 

 "내가 그동안의 세월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이제부터라도 그냥 너만 생각해. 남들 신경 쓰지 말고. 그래도 되.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 이 세끼 오늘 왜 이래? 어울리지 않게, 그냥 하던 대로 해. 근데 이거 어디서 본  대사 같은데, 그 드라마 봤냐, 우리 아저씨였나?"


 불은 그 힘을 다하여 온기만 남았고 소주는 비워져 간다.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했던 얘기들이 또 나온다. 허긴 그땐 뭘 해도 좋았다. 추억이니 계속 꺼낸들 뭐 어떠한가, 돈 드는 일도 아닌데.

 "그 때 애들하고 춘천 나이트 갔다가 나왔을 때 말이야. 그 때 누가 먼저 튀었냐? 지금 생각해도 너무 하긴 했어." 

 "영진이 너 아니었냐? ‘야, 튀어!’ 외치면서. 우린 얼결에 따라 뛰었을 뿐이지." 

 "몰라. 난 넌 줄 알았지. 그때 벙개한 애들, 걔네가 분명 자기들 핑클 닮았다 했는데, 아니었잖아. 거기다 스타일도 막 허리에 체인 같은 거 차고 막 무섭게 들 생겨서 우리로써는 본능적으로 도망간 것뿐이지, 살기 위해서. 물론 나중에 걔네가 삐삐음성에 막 퍼부어놨잖아. 너네도 태사자 안 닮았다고. 우리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놀아준 거라고. 다신 춘천 얼씬도 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특별히 비난받을 행동을 한 것도 아니란 거지."

 "걔네도 아마 지들끼리 그 날 얘기 할걸? 그 미친놈들 도망갔다고. 우리가 먼저 튀었어야 했다고. 지금도 짜증나 죽겠다고. 큭큭큭."


 거의 먹지 않은 상추와 뜯지도 않은 과일을 냉장고에 넣고 빈 소주병을 정리하고 나니, 전화가 온다. 

 "어 아들, 아빠 지금 친구랑 밥 먹었어. 학원은 갔다 왔고? 엄마한테 금방 들어간다 전해."

 "뭔가 좀 허 한데, 라면이나 때리자."

 각자 대리를 불러 놓고 편의점에 갔다. 왕뚜껑과 집에 아이들 줄 도나스 몇 개를 챙겨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야 나는 요즘 촌에 가서 농사짓고 싶어."

 "야, 농사는 아무나 하냐? 너 인마 택도 없어. 하던 사람이나 하는 거지."

 "맞아. 맨날 술이나 먹겠지, 내가 농사는 무슨."

 "근데 나도 요즘 그렇다. 자꾸 산이 좋고, 들이 좋고, 자연인 막 그런 거 부럽고. 어른들이 왜들 그렇게 시골, 시골 했는지 이해가 간다니까."

 "야 나는 나중에 강원도 산골에 집 짓고 살 거야 진짜로. 할 일 없으면 놀러오든가. 와서 풀 좀 뽑고."

 "남는 땅 좀 떼 주냐?. 

 "뭘 떼 줘, 떼 주긴. N분의1이지."

 "그래서 언제 갈 건데?" 

 "몰라. 일단 막내 대학은 보내고 봐야지 않겠냐, 현실적으로다가. 한 10년 남았나."  

 "그럼 일단 그때까지 살아있어야 하네. 역시 건강이 제일이지.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지. 암 그렇고말고."

 "아 전화 들어온다. 대리 왔나봐. 라면 못 먹고 가네. 먼저 간다!"

 "야, 도나스 챙겨가야지."


*


오늘도 월요일이 흘러간다.


(이런 말 조금 창피하지만) 

기록은 명백하나 존재하지 않고, 

기억은 존재하나 재구성 되며, 

추억은 멀어져 가나 소멸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도 조금 더 소진하였으나 아직 분명히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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