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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Apr 18. 2022

눈물 나는 날에는

결혼식, 관혼상제의 한 가운데서

남자가 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소리 없이.

애써 하품 짓 하고는 안경 안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래도 궁금해진다. 하객이 왜 우는지.

남자는 신부의 옛 사랑 일까. 그녀 마음 빼앗아간 김중배 놈이 미워서 일까. 아니면 축의금만 내고 식권은 받지 못한 자책인가. 혹은 주례사에 지치고 축가의 음 이탈에 놀라다 신랑의 팔굽혀 펴기 후 만세삼창의 지루함에 몸부림치다 눈의 물이 이탈한 것인가. 여하튼 하객의 눈물은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시다시피 이런 시시한 이유로 사나이 눈물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식이 시작되면 오늘은 그러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아버지의 손을 잡은 신부가 입장 한다. 딴 딴따 단~ 딴 딴 따 단~. 여기서부터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혼인이 성사되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올린다. 이 대목에서 하객은, 나는, 짠 함이 솟구치다가 급기야 눈물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왜 그러냐 묻는다면 그건 나도 잘.

물론 결혼식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다. 찔끔찔끔 하다 참을 만 해 질 때가 있는가 하면, 막 엉엉되기 직전까지 가버려 피로연장으로 먼저 피신하기도 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리 흠 될 일도 아니고, 나도 그렇소, 라고 동감해 주신다면 감사할 일이나, 문제는 나의, 본인의 결혼식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때는 긴장을 했던 터라, 행사의 주인공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터라,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문제는 신랑 신부가 하객께 인사하는 장면이었는데, 사회자가 갑자기 편지를 낭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편지는 울 엄마가 썼고, 내용은 대략 이랬다.


‘아들아, 네가 두 살 때 큰 사고를 당했지. 그때 너를 이불에 싸 앉고 서울 시내 병원을 다 돌아다녔어. 너는 어릴 때 몸이 약해 툭하면 고열을 앓았지.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한 숨도 자지 못했어. 네 옆에 누워, 열은 내리는지, 깨지는 않는지, 숨을 쉬고는 있는지 밤새 지키고 있었어. 모든 것이 다 내 탓 인 것만 같았어. 그리고 연탄가스 마셨을 때... (중략) 그렇게 작고 약했던 아들이 이제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으니 엄마는 하늘에 감사해. 그리고 미안해 아들, 그때는 몰랐는데 엄마가 늘 미안했었어. 아들과 며느리가 늘 행복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할게, 사랑해 아들.'


그랬다. 편지를 듣다보니 잊었던 어린 시절 장면이 막 떠올랐다. 가뜩이나 잘 우는 놈이 엄마의 고백을 듣고 나니 주체할 수 있으랴. 감추려 해도, 다른 생각을 떠올려 봐도, 혀를 깨물어도 도데체가 콘트롤이 안 되었기에, 그래서 그냥 울어 버리고 말았다. 꺼이~ 꺼이~ 훌쩍~ 훌쩍~.

결혼 후 14년 동안 나는, 내 결혼식 영상을 보지 않았다. 그 날 나는 바보 울보 였고 나약한 남편 이었다. 창피하고 속상하고 후회스러웠다.

그런데 두 아들의 아빠인 지금, 우리 엄마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공감이 되어,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지려 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들들을 모아놓고 영상을 보련다. 아빠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니 너희들이 이해해라, 라고 가장으로서 명령할 예정이다. 용기를 내자. 아 물론 명령하는 남자는 또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진짜 고민은 이겁니다. 제 아들도 (웬만해서는)언젠가는 결혼을 할텐데, 그때 전 어째야 합니까. 신랑 아버지가 울고 있는 모양새가 흔한 일은 아니라 말이지요. 이를 어쩐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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