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이런 말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사십년 넘게 부끄럼 없이 살아왔건만 그래도 인간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고백해버리면 그나마 있던 호인들마저 떠날지 모르나, 어쨌든 나도 조금 인간다워진 것 같다. 이것은 고백의 순기능이다.
여하튼 만우절인 김에, 최굴화 탄생일을 맞은 김에, 노트북을 열은 김에, 워드프로세서를 열은 김에, 스스로, 고요히, 깊고 깊이, 십이지장 아래 심연으로 내려가, 소울메이트를 만났다. 이것은 글쓰기의 순기능이다.
최굴화.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사월 첫날에 태어나, 일찍이 무용함의 유용함을 깨닫고 순수이성비판에 빠져 허우적대었다. 그러다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빠져 미재 앞잡이로 살며 라스베이거스를 꿈꾸었으나, 결국 강원랜드 VIP가 되버린. 비록 그의 역사는 무용했으나 늘 세상의 법도를 넘지 않고 평화를 염원했기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날이 날인 만큼 그는 인간의 거짓과 그 에티켓에 관하여 몇 마디 떠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구라란, 굴화(屈話)에서 기원했으며, 말話이 구부러져屈 그 고유함(origin)의 형태(mode)가 확장, 축소, 퇴색 혹은 변질됨을 뜻한다.
중도(中道)로 사용하면 능히 그 굴(屈)의 파동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두루두루 살피게 될 것이니, 이러한 작용은 낭만적이고 연대적이며 예술적인 것으로 우리네 삶에 큰 즐거움과 교훈을 줄 것이다.
허나, 지나치면 세계를 왜곡하여 태양 아래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생명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 있으니 우리는 지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굳이 이조시대 시조를 인용하자면,
굴생어진 (屈生於眞) - 거짓은 진실로부터 나고
진생어굴 (眞生於屈) - 진실은 거짓으로부터 나니
굴진상생 (屈眞相生) - 진실과 거짓은 늘 함께 하는 것이다
진굴즉락 (眞屈卽樂) - 진정한 굴화는 곧 즐거움 아니겠는가
이것은 구라의 순기능이다.
친구의 말을 듣다, 진실된 깨달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 나는 본의 아니게 아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게 되었다.
아들 : 아빠! 아빠는 럭키 했던 경험이 있어?
나 : 응. 사랑하는 아들아. 그럼~ 아빠도 있지. 그 때 혼자 머리 식히겠다고 산에 갔었어. 홍천 어디쯤 이었는데, 발 밑에 네잎클로버가 딱 보이는 게 아니겠어, 그래 반가워 걸음을 멈추고 한 쪽 무릎을 딱 꿇었다 일어났지. 그런데 조금 후에, 저기서 어떤 아저씨가 막 뛰어오더니 이러는 거야. “괜찮으십니까 선생님? 저는 사냥꾼인데 방금 이쪽으로 총을 쐈어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멧돼지 잡는다고 그만”. 그러더니 내 손에 토끼풀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는 거야. “아니 이럴수가! 선생님은 정말 행운아, 아니 럭키가이 이십니다! 말하자면 내가 딱 수그리는 그 타이밍에 내 등위로 총알이 지나가 버린 거지. 그랬던 거란다. 아들아.
아들은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아빠의 순기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