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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Nov 17. 2021

뜨거운 건 위험해

우리 엄마도 그래요

뜨거운 것은 위험해 


보기와 다르게 나는 마흔 다섯 살이다. 그러므로 이미 어른, 그것도 중년의 어른이다. 

점심을 먹고 이동 중에 전화를 받았다.

“아들아, 아무리 해봐도 안 된다. 아휴, 그놈들은 모른다고만 하더라”

“아니 엄마, 거기 전화해봐야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아니다... 갈게요 집으로”


엄마 집에 갔다. 엄마는 네이버 로그인이 되지 않자 엘지 전자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했고, 도와줄 것이 없다는 그들의 답변을 들었다. 엄마는 답답한 심정으로 아들에게 하소연 한 것이다. 나는 패스워드를 새로 설정했다. 로그인은 되었고 나는 엄마의 닉네임이 '영성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고, 이제 되네. 별 것도 아니네. 아들, 밥 먹고 가”

시간은 3시를 지나고 있었다. 때가 아니었지만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평소 엄마는 밥을 고봉으로 퍼 주곤 했기에, 나는 미리 말했다.

“조금만 줘요. 배 안 고파요”

엄마는 국이 담긴 대접을 밥 오른쪽에 놓았다. 수저는 금칠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아버지가 쓰는 것이었다. 엄마는 냉장고에서 멸치, 짠지, 김치도 꺼냈다. 내가 숟가락으로 국물을 뜨자, 엄마는 손사래 치더니 미간에 힘을 준다.

“뜨거워, 뜨거워, 입 데어, 식혀 먹어. 방금 푼 거야”

나는, “아 좀! 내가 앤가. 뜨거운 거 잘 먹어요”, 하며 어린 아이처럼 빽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그새 좀 식었네”, 하며 밥을 가져가 전자렌지에 넣었다.

나는, “아 좀! 뜨거운 거 먹지 말라며 밥은 또 왜 데워”, 또 빽 질렀다.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뭇국. 고기도 많다. 엄마는 내 앞에 앉았다. 팔짱을 꼈다가, 두 손을 모았다가, 박수를 치다가, 턱을 괴며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엊그제 다녀온 결혼식 피로연 음식이 형편없었는데, 그래도 신랑 인물은 괜찮았다는 얘기, 옆집 아줌마 아들이 임원 승진했는데, 그 아줌마 새로 한 눈썹 문신은 형편없다는 얘기, 정수기 필터 갈러 온 아줌마가 동향사람이라 신기했고, 반가운 마음에 공기청정기도 하나 계약했다는 얘기.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고, 어쩐지 나도 그런 것만 같았다.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엄마가 컵에 물을 부어 주며 말했다.

“아들 어릴 때 엄마가 제대로 해준 게 없어서 항상 미안했다. 뭐 그리 바빴는지, 맛있는 것도 해주고 공부도 봐주고 할 것을”

나는 시선을 물 컵에 고정한 채 엄지로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다 지나갔는데요 뭘. 지금 좋으면 된 거지”

엄마가 다시 말씀하셨다.

“그치? 지금 얼마나 좋으냐. 나는 별일 없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아들아. 그리고 유튜브에 어떤 스님이 그러더라. 뜨거운 걸 손에 쥐고, '나 어떡해요 뜨거워 죽겠어요 살려주세요' 이렇게 소리치는 거, 그 사람 진짜 바보라고. 그냥 '탁' 놓아 버리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고. 아들 생각이 나더라. 아들아, 사업이든 뭐든 그것 때문에 괴로워 못 견디겠거든, 그냥 '확' 다 놓아버려라. 다른 사람 생각 말아. 너만 생각해. 그래도 괜찮아”

나는 또 빽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배불러 죽겠네. 뭔 밥을 이리 많이 줘서”


엄마는 서랍을 열어 새 칫솔을 꺼냈다. 나는 그것으로 어쩔 수 없이 양치를 했다. 엄마는 외투를 입으며 말했다.

“엄마 오늘 모임 있어서 지금 나가야 되거든. 커피 타 놨으니까 먹고 가”

그리고 잔소리에 잔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네 애들 생각해서라도 제발 나쁜 것 좀 끊어. 술이며 담배며 왜 자꾸 독을 몸에 넣어? 건강이 제일 중요한 거 알지? 그리고 내일부터 추워진다니까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코트 이거 말고 좀 두꺼운 거 없니? 네 아버지 것 같은 거 사줄까?”

나는 말없이 손사래 치고, 식탁에 앉아 커피 잔을 들었다.

“아들아, 뜨거워, 식혔다 먹어. 물 금방 부운거야.”

엄마는 냉동실 문을 열어 얼음을 두 알 꺼내 커피 잔에 빠뜨린다. 그리고 서둘러 집을 나갔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앉아 홀로 커피를 마셨다. 

맛이 없다. 이건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니고 뭐 이런 맛이 다 있나 싶다.

우리 엄마, 좀 과한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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