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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Nov 16. 2021

아침마다 누군가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한 마디

나름대로 비슷한 시간에 일어난다. 자는 시간과 깨는 시간의 루틴을 지키려 노력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깨져버렸다. 오전 5시가 되면 어김없이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메시지는 주로 자기관리를 통해 성공에 이르는 열쇠를 하나씩 전수했는데, 그밖에 건강, 투자, 연애, 철학, 과학 까지 실로 다양한 분야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새벽의 깨달음이랄까. 


*지금 그것을 하라*

계획한 사업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신념은 단 하나, ‘지금 그것을 하라’ 이것뿐이다.

(할 일을 두고도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하면 그 다음날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루는 것은 나쁜 버릇입니다. 할 일이 있다면 지금 해야 합니다.) 

-윌리엄 제임스-


간결한 요점. 괄호열고 닫고 알기 쉽게 풀이하는 다정함. 어디 가서 알은척 할 수 있게 출처를 밝히는 친절함.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까지 정확하다. 


나는, 이렇게 아침마다 깨달음을 얻어 한 없이 희망찬 오늘을 감사하고 지금 당장 할 일을 수행하기 위해 벅찬 마음으로 당장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침 체조를 하진 않았고, 지행불일치, 그냥 다시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제가 그렇치요 뭘)

늘 그렇지만, 훌륭한 말씀은 나를 졸리게 한다.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말씀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당시 같은 반 친구가 작별 인사라며 준 것은, 책 ‘세상을 보는 지혜’였다. 친구는 성숙했고 다정 했다. 나는 그의 애틋한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한동안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그 때 너무 많은 지혜를 체화했기 때문일까, 훌륭한 말씀은 내게 매력이 없다. 유용하기는 하다만. 


예전에 종이 신문을 구독할 때, 오늘의 운세는 꼭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79년생 양띠,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라’, 뭐 이런 운세가 나오면, 그날은 주변인들의 말에 유독 신경 쓰게 된다. 평소 줏대 없이 사는 나인데 그런 날이면 굳건히 소신을 지키며 하루를 보내다 잠자리에 들 때, ‘음 오늘도 백야장청 유아독존, 한 쪽의 대나무처럼 꿋꿋이 걸었구나. 암, 이게 다 운세 덕분이지’, 하며 내일의 운세를 기다리곤 했다. 


비슷한 차원으로, 아침의 말씀도 하루를 예언하는 것 같았다. 오늘 너한테 이런 상황이 닥칠것이니, 그 때 지혜의 마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라고, 그렇게 너 자신을 지켜내라고. 

위 메시지를 받은 날도 그랬다. 숙취로 당장 사우나에 가야했지만 말씀을 따랐다. 당장 오늘 할 일을 해치웠으며 내일 일까지 당겨 해버리는 괄목할만한 생산성을 보였다. 깨달음이란 진짜 어른으로 살게 하는 훌륭한 것이다.


아침의 말씀은 반 년간 지속되었다. 그렇게 훌륭해져버린 나였지만, 불충히도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감사하다거나, 좋은 하루 보내라거나 따위의 인사 한번 없이 받아먹기만 한 것에 변명하자면, 내가 모르는 번호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시길래 나를 위해 수고하시는지, 이 바쁜 세상에 남의 아침까지 챙기시는지. 험한 세상,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피싱?. 아니면 답을 하는 순간 중요 정보가 싹 다 털리는 건 아닐까. 혹은 유료구독서비스로 전환?, 하는 걱정때문이지만, 사실 새벽이라 귀찮았다(5시 라니까요). 

너무 무심했을까. 그래도 나도 사람인지라 무소식인 날이면 신경이 쓰였다. 그 분이 손가락을 다친 것은 아닌지, 과음으로 쓰러졌는지, 더이상 내게 관심을 주고 싶지 않은지, 이래 저래 심란했다.  


지혜의 마법은 어느 날 이후 완전히끊겼다.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도 아무 소식조차 없었다. 허전하고 공허했다. 밥을 먹어도, 누구를 만나도 즐겁지 않았으며, 잠도 쉬이 들지 못했다. 말하자면, 황망했다랄까. 

물론, 그분의 평안도 염려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메시지 잘 받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고맙습니다.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로 답장이 없기에 역시 피싱 이었나 하는 마음에 서글펐다. 다음 날 새벽. 

‘제 딸한테 보낸다는 것이... 받아 놓은 번호가 잘못되었는지... 아무튼 그동안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 진정 무심한 인간이 되어 버린 나는 공손히 두 손을 모아 답장.

너무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틀린 번호라는 것을 바로 알려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도 답했다. 

‘딸 아이와 사이가 안 좋습니다. 그 애는 저를 미워합니다. 아무튼, 애가 답이 없길래... 괜한 짓을 하는 구나 생각에 그만 둔 것이고요.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참견하고 싶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따님이었어도 좋아 했을 겁니다. 덕분에 저는 하루가 행복했어요. 

지금이라도 보내보세요’


그가 다시 말했다.

‘정말 그랬나요? 그 애도 그럴까요? 내일부터 다시 해 봐야겠어요’


사실 내가 그 분께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좋은 말씀도 좋지만 가끔은 마음을 전해보세요.


'날이 차구나, 감기 조심하렴.'

'거기 파스타 잘 한다는데, 아빠랑 저녁 할까?'

'어디 아픈데는 없니?'

'보고 싶다, 딸아'


이런 진심이요.


물론 실제 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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