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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Sep 15. 2023

우체국 김연수 주사님

-빠른 등기로 부탁 드릴게요.

-아 선생님 저희가 여섯시 마감이라.

-어떻게 안될까요?

-선생님 제가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은요.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예? 거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그치만 저에게는 중요한 일이라서.

-오늘만 접수 해드릴게요. 제가 이런 말씀 드렸다고 너무 섭섭해 마시고, 원칙이 그렇다는 거 아닙니까, 원칙이. 근데, 그게 뭔데 그리 중차대합니까?

-공모전 출품입니다. 오늘까지 소인이 유효해서.

-뭔데요? 소설 이라도 됩니까?

-네, 장편입니다.  

-아이고 그래요? 하하, 요즘 세상에도 그런 거 쓰고 그런 양반들이 있네. 선생님, 아니 작가님이라 불러야 겠네. 이리 줘 보이소. 와 묵직하니 명작의 냄새가 막 풍깁니다. 이제 다 됐습니다. 여기 소인 보이죠?

-고맙습니다.

-아이고 감사는 무슨. 우리가 또 국민에 봉사하는 공공기관, 공무원 아닙니까. 작가 양반을 봬니 내가 감사하지요.

-아직 지망생이라, 그런 호칭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소설 쓰십니까. 우리 때는 그저 연애소설. 그게 마 최고였지 아입니꺼. 아이고 나 좀 봐라 사투리가 나오네. 아무튼 그 당시에 테레비가 있나, 비디오가 있나, 유튜브가 있나, 하도 볼게 없어노이까 마이 읽었지요. 카뮈 알죠, 알베르 까뮈. 우리 땐 그 양반이 인기가 좋았어. 뭐 자고 나니까 바퀴벌렌가, 나빈가 되가지고. 변신의 서사, 이게 증말 멋졌어요.

-카프카 말씀이시죠?

-어 그러네요. 그 양반이구나. 또  조정례 선생 알죠? 거 뭐냐 백두대간 이라고, 대하소설 있잖니껴. 그걸 끝까지 읽은 사람이에요 내가. 우리 마을에 복순이는 그랬어요. 대하소설? 무슨 조개(대하 大蝦)를 읽고 앉았냐고. 하하, 아이고 무식한 년.

그래도 시집은 갸가 제일 잘 갔어요. 우리 마을에 장 선생님이라고 학교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마을 정신적 지주인 기라. 솔로몬? 그런 거 있잖아요. 아무튼 좋은 집안에 갔으니, 출세했죠. 내가 좋아했냐고요? 아니지, 복순이가 내를 더 좋아 했지. 그러면 뭐해, 홀라당 넘어갔는데.

아이고 내 좀 봐라. 우리 작가 양반 이리 오래 붙잡으면 안되지. 얼렁 가서 또 쓰셔야지.

-며칠 쉬려고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도 뭐 읽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내 중학교 다닐 땐가. 학교 대표로 선발 되가, 경상북도 백일장 뭐 이런데 나갔어요. 최우순가 우순가 상도 받았지. 시를 썼던것 같애. 이 가을이 지나가도 나는 당신이 빈틈없이 그리울 거예요. 뭐 이래 시작했었나. 장 선생님이 용기를 줬지. 잘 쓴다고, 더 읽고, 더 써보라고.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 왜 누구나 생각나는 은사님 있잖아요.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셨지. 선생님이 공부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때 알았어요. 아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근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아무튼, 그러고 대구서 김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어. 정말 잘 태어났다. 이 세상은 참 좋은 곳이다. 뭐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니까. 그래 김천 터미널에 내려 집까지 막 뛰어갔어요. 십리도 넘는 길을.


(이때, 김주사의 동료 직원인 고미숙 주무관이 슬적 대화에 끼어든다)

-김연수 주사님! 또 그 이야기? 백일장? 그만하고, 우체국 문 안 닫을 거에요?

-아이고 고양아, 알았다 알았어.

-아휴! 정말, 고양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고미숙 주무관, 이렇게 부르시라니까 정말.

-왜 얼마나 좋아, 고양아, 고양아.

(고양은 웃으면서 사라진다)


-왜 고양인가요?

-아 고 주무관이 나랑 친해요. 그래서 애칭으로 불러요. 처음엔 미스 고, 라고 불렀는데 여기가 다방이냐 뭐냐 해서, ‘고 양’이라 합니다. 아, 오해 말아요. 하대 아니고, 친해서 그래 친해서.


아무튼, 어디까지 했죠? 어 그래가 집까지 막 뛰어 갔어. 다리는 후들거려도 날아갈 것 같더라고.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 외쳤지요. 내 상탔다! 동생들이 우루루 몰려 나왔어요. 대구에서 사온 붕어빵은 이미 눅눅했지만 동생들은 좋아했어요. 내도 좋았고.

근데 아부지랑 엄마는 별 말이 없었어요. 내는 내심 섭섭 했지. 그러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대번 알겠더라고. 울아부지가 살림 날 때, 할배한테 뭐 물려 받은 게 없었어요. 그래 소작부터 시작해가, 누에도 치고, 소도 먹이고 그래 열심히 살았지. 그런데 내 밑으로 동생이 다섯이었어. 그러니 여덟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았지. 엄마 아부지도 장남이 상을 타 왔으니 속으론 얼마나 기뻤겠어. 근데 저러다 글쟁이 된다고, 예술 한다고 바람 들까봐. 그래서 티를 안 낸 거야. 그 때는 시를 쓴다는 게, 부자 양반들이나 취미 삼아 하는 거였어. 돈이 안 됐어요, 돈이.


고등학교 가서는 공부를 잘했어요 내가. 근데 그칸다고 대학을 갈 수가 있나. 동생들이 다섯인데, 내 하고

싶은대로만 할 수 있나. 그래가, 공무원 시험을 쳤어요. 그게 벌써 삼십오년이요.

아이고 나 좀 봐라. 별소릴 다한다.


-소설도 쓰셨나요?

-왜 아니겠어요. 시를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더라고. 그래 공부하는 척 하면서 소설도 좀 썼지. 김연수 작가 알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그 작가. 김천 출신이잖아. 내가 계속 썼으면, 나도 김천의 김연수로, 그 분만큼 유명해졌을지 모르지 하하.


-그럼 공무원이 된 후에는요?

-집사람이랑 결혼해 살림 나면서 서울 올라왔는데, 서울살이 라는 게 만만찮더라고. 그저 먹고 살기 바빴지. 근데 그 와중에도 틈틈히 읽고 썼어요. 그러다 첫째가 서너살때쯤 이었나, 친한 형님 동서가 편집장이라는 거야. 그래서 몇 개 보여줬는데, ‘재능 있네요. 본격적으로 써 보실 생각 없습니까' 이러더라고. 그 말이 밥먹다가 생각나고, 씻다가도, 자다가도, 술먹다가도 떠오르더라고. 집사람한테 솔직히 털어 놓았어요. 그러고는 회사에 삼개월 휴직 신청을 했지. 그리고 썼어요. 나름 치열하게.


거 뭐,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이런 말 들어 봤죠? 열리긴 했어요. 다른 문이.

초고를 다 쓰고는 그걸 들고 사람들을 만났어요. 작가도 만나고, 편집자도 만나고, 나같은 지망생들도 만났지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문은 문인데, 회전문이네. 그렇게 회전문을 반쯤 돌아 안쪽을 힐끔 봤는데, 내가 아는 문 밖의 세계와 너무나 달랐어요. 그 안의 사람들은 순수하고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어. 뭐랄까 어린 아이 같다고 할까. 이노센트 한데 눈은 또 또랑또랑하니, 총기가 넘치더라고. 한마디로, 살아있었어.

그 때 나는 이미 나의 세계에서 닳을 대로 닳은 사람이었던거든. 갑자기 덜컥 겁이 나더라구. 저 세계로 들어간다는 게.

그래도 장 선생님 생각하며 용기를 내보려 했지. 근데 내가 거기 서서 출구를 이렇게 보니까, 너무 좁은 거야 문이. 어찌 어찌 들어간대도, 다시 돌아 나올 자신이 없더라고. 왜 그런말 있잖니껴, 들어올땐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땐 니맘대로 안된다. 그 말이 머리를 스치더라고.

그래서 그냥 회전문의 나머지 반을 마저 돌아버렸어. 그리고 처음 그 자리에 다시 섰지.

-후회는 없으세요?

-차라리 회전문이라 얼마나 다행인교. 지나고 보니 이게 천직이에요 나는. 정시 출근, 정시 퇴근, 따박따박 봉급나오고, 예?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럼 아름답게 퇴근 하셔야지요.

-벌써 시간이 이래 됐나요. 근데 사람들이 잘 몰라 그렇지 사실 우리도 야근 많이 합니다. 이게 공무를 수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세상 쉬운 게 어디 있냐만, 이 세계도 그래요.

실은, 어제는요 한 아가씨가 찾아왔어요. 뭘 또 묵직하게 들고 왔길래…


(고양이 다시 나타난다)

-김연수 주사님! 다들 기다려요.

-작가 선생, 오늘은 이만 해야겠네. 회식때 할 얘기도 남겨둬야지.

자 그럼, 좋은 글 많이 쓰시고! 회전문이든 뭐든 당당히 들어가 끝까지 쓰시고!

그러고 보니 우리 작가님 눈이 아주 또랑또랑하니, 완전히 살아있네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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