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도빈 Jun 14. 2024

호시절이었다





호시절이었다


호시절이었다

거실을 가득 채운 어미의 기타 소리 

그 앞에 큰 놈이 배를 깔고 엎드려 발가락을 꼼지락 

스케치북 펼쳐 놓고 까르륵 까르륵

큰 놈을 베고 누운 작은 놈이 발가락을 꼼지락 

스케치북 위로 피어난 어미의 얼굴

별안간 두 놈을 와락, 품에 담는 애비도 까르륵 까르륵


그때는 호시절이었다

프라하의 강을 앞에 두고 신랑의 어깨에 기댄 색시

두 사람을 축복하며 피어난 몽글몽글 가로등

수평선 아래 위로 떠 오른 달님도 몽글몽글

지켜진 약속과 지켜질 약속

그렇게 시간을 건너 시절이 된 허니문 


역시 호시절이었다

다락방에 둘러 앉아 

때를, 시간을, 시절을 이야기하는 우리

학사파전에 붙어 앉아

너를, 나를, 우리를 쓰다듬는 우리

그렇게 서로에게 전해진 막연한 위로

텅빈 노천극장에는 듬성듬성 쓸쓸히 서 있는 가로등


호시절이다

호시절의 한점에 우두커니 서서 

그리다, 그리운, 먼저 흘러간 호시절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었나


찰지게 반죽해 뚝뚝 떼어놓은 시절의 조각들

그것들을 징검다리 삼아, 천천히

서쪽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 저편 

그립고 그리운 그들이 나를 기다리는 편으로

인연이 다하는 그 시절에 가 있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불면의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