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은 뒤 "괜찮아요?"라고 물어봤자다
1. 코로나19로 인해 야외활동에 제한이 걸리자, 반대로 방송계는 힘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주말 예능, 드라마 시청률이 상승 중이라는 뉴스가 이어진다. 하지만 시청률과 별개로 방송 촬영이 어려워진 프로그램도 있다. KBS <배틀트립>은 종영을 결정했고, tvN <더 짠내투어>는 촬영 중단, MBC every1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지금 추이를 살펴보는 중이다.
2. 여행을 떠나거나 시민을 만나는 프로그램들이 직접적인 타격이 있는 셈인데, 이 중에서도 유난히 밀레니얼 세대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JTBC <한끼줍쇼>와 SBS <정글의 법칙>이다. 모든 방송이 코로나로 인해 정상 촬영의 압박을 받는 건 똑같은데, 유독 이 프로그램들에 대한 시선은 더욱 날카로운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은 바로 '선(line)'에 있다.
3. 코로나 이슈 전부터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있었던 프로그램들이다. 방송의 재미 여부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한끼줍쇼>는 조용히 잘 살고 있는 가정집에 들이닥친다는 설정이, 정글의 법칙은 깨끗이 보존해야 할 천연 자연에 침입한다는 설정이 못마땅해서다. 밀레니얼 세대는 방송을 보면서 '우리 집에 저렇게 온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울까'라고 감정이입을 한다. 제발 방송이라도 선을 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다.
4. 우리는 여기서 밀레니얼 세대가 지켜야 하는 선, 혹은 테두리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 테두리는 공간, 시간, 정보, 관계 등 전체를 아우르는 경계선을 가진다. 불쑥 찾아와 "여기가 너희 집이었어?"도 싫지만, "너 퇴근하고 어디 가는데?"의 질문도 대답하기 싫은 건 똑같다. 주말을 회사 사람들과 보내기 싫은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들 기성세대가 밀레니얼 세대가 어렵다고 말하는 건, 이미 이 테두리를 넘어선 채로 밀레니얼 세대를 바라보고 있어서다.
5. 한 인터넷 게시판에 "과장이 종이를 던졌는데, 신입사원이 퇴사를 했어요"라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종이를 던진 건 잘못한 게 맞는데, 퇴사는 조금 과한 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포인트는 종이가 아니다.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무언가를 던진다는 행위 자체가 신입사원에게는 선을 넘는 트리거였던 셈이다. "취업은 언제 하니?" "결혼은 언제 하는 거야?" 친척들의 잔소리가 싫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도, 이 문제에 대해 넘어오면 안 된다고, 친척들은 경계선 바깥이라고 선을 긋는 신호인 셈이다.
종종 기업 강연에 가면, "밀레니얼 세대에게 개인적인 걸 물어보지 못하면 어떻게 친해집니까?"라고 볼멘소리를 내는 기성세대 분들이 있다. 하지만 물어보는 게 먼저가 아니라 그들의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는 게 먼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친해지기 위해 침범하는 게 아니라, 우선 친해진 다음에야 그들의 공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우선 초인종부터 누르고 "밥 한 끼 같이 먹어도 되나요?"라고 묻는 <한끼줍쇼>가 밀레니얼 세대의 응원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지금 보고 있지 않는가?
선을 넘지 않으려면, 우선 그들이 그려놓은 경계선을 잘 이해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와 일하는 법'은 그들이 그려놓은 경계선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