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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계적 글쓰기 Mar 15. 2020

효율적인 방식만 찾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

요즘은 툭하면 서버가 터진다

1. 정부는 국민들의 마스크 구매가 어려워지자, 2월 17일부터 공영홈쇼핑을 통해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판매는 게릴라 식이었다. 방송 시간이 정해져 있던 게 아니라, 마스크가 수급되는 시점에 갑작스럽게 했다. 판매시간이 긴 것도 아니었다. 5분, 10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매 전화가 몰려, 전화는 불통 상태가 지속됐다. 몇 개의 전화회선을 운영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평상시 홈쇼핑 주문 전화에 대응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마스크 대란만 제외했으면 말이다. 


2. 최문순 도지사가 감자를 판매 중이라는 소식을 트위터에서 알렸고, 이 소문이 커뮤니티와 SNS로 확대되자 판매 사이트인 진품샵(jinpoomshop.kr)엔 무려 동시접속자만 100만 명이 몰렸다고 한다. 이 정도의 트래픽을 예상하지 못했던 서버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터지고 말았다. 네이버는 이 소식을 듣고 수수료 없이 강원도에 서버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과연 네이버가 손해를 봤을까?) 


3. <미스트트롯>의 최종 결승전에서는 문자투표에 770만 건이 몰렸다고 한다. 역시나 서버가 견디지 못했고, 하루를 넘겨서야 우승자를 발표할 수 있었다. 이런 사고조차 인기를 반영하는 해프닝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청자의 마음은 '재밌네'보다는 '답답하다'에 가까웠을 거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은 건 김성주다. 몰림으로 인한 사고를 그나마 안정적으로 막은 건 김성주의 진행 실력 덕이라는 평가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력과 몇 번의 방송사고(연예대상 구색 맞추기, 복면가왕에서 결과를 잘못 발표하는 등)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시청자의 분노는 더 심각했을 수도 있다. 


4. 디지털 서비스가 많아지고, 데이터를 분석하게 되면서 동시에 떠오른 키워드는 '효율'이다. 호텔이나 항공 등의 업계들은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공실률(상가나 건물 등이 얼마만큼 비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을 낮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효율을 만들기 시작했다. 안 팔린 객실을 반값에 제공하는가 하면, 평상시의 취소율을 감안하여 오버부킹(호텔 따위의 숙박 시설에서, 보유한 객실 수 이상으로 예약을 받는 일)을 운영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5. 하지만 데이터를 잘 분석해 낭비를 줄인다는 건, 사실 모든 일이 예측 가능한 상황일 때의 이야기다. 디지털은 데이터 분석을 가능케했지만,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골목식당에 한번 소개된 '연돈'의 경우는 2018년 11월 방송 이후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도 밤을 새워 줄 서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골목식당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맛집은 사정이 비슷하다. 맛집만이 아니다. 달고나 커피와 같은 레시피도 유행을 탄다. 방송을 통해, 다시 커뮤니티, 그리고 다시 SNS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따라 하는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요즘은 툭하면 몰린다.


6. 대부분의 회사, 서비스는 평상시를 기준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상하느라 바쁘다. 적당한 인력, 적당량의 서버,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 시스템.. 하지만 디지털 사회에서 몰림 현상은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남을 기억해야 한다. 효율적인 시스템일수록 위기를 대처하는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문성은 한 가지 분야를 집중했을 때 만들 수 있지만, 역량은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합칠 때 더 강해진다.(김성주의 역량은 '효율적인 무사고'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까)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가 낭비하는 시간이 없도록, 데이터를 분석해 좋아할 거 같은 영상만 제공해 준다. 덕분에 난 전혀 다른 영역의 콘텐츠를 볼 기회조차 없다. 내 취향은 집중적으로 파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완성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우리는 '생산성'이라는 키워드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당연히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찾아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효율주의가 외면하는 '비효율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기업이 있다면, 아마 장기적인 경쟁력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요즘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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