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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개 Feb 21. 2023

뉴욕에선 파타고니아를 입지 않는다

나를 열일하게 하는 것



“Claire!!! (클레어다!)”



팀미팅에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팀원들이 외친다. 지금까지 이들이 나를 이토록 환대한 적은 없었다. 데시벨이 유난히 높은 이들의 목소리가 행여나 뒤에 들릴까 이어폰을 끼고 있었음에도 주변을 살피는 나. 괜히 머쓱하다.



나는 팀원들과 랜선친구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내가 사는 이곳 샌프란시스코 베이(Bay Area)에 없다. 매니저를 포함한 2명은 텍사스, 나머지는 미국도 아닌 저 멀리 유럽의 아일랜드와 폴란드에 살고 있으니까. 팀 내 베이에 사는 사람이 2명 있기는 한데, 그들과는 일적으로 얽힐 일이 없으니 사실상 내가 현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일하는 동료는 아무도 없는 셈이다.


나의 랜선 동료들.




“뉴욕 어때? 지금 오피스 간 거야?”

“응! 여기 진짜 좋아! 보여줄까?”

“응! Give us a tour!! (투어 좀 시켜줘 봐)”




그냥 한 말인데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이 랜선 친구들의 요청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나는 출근 첫날부터 랩탑을 들고 한 바퀴를 돌아야 했다.


회사 건너편의 다른 오피스 건물. 근무시간이면 열일하는 뉴요커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살다 살다 출근이 하고 싶어질 줄이야


입사한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오피스, 그것도 내가 사는 곳에 있는 본사가 아닌 잠시 방문한 도시, 뉴욕에서 한 달가량 일을 할 수 있다니. 아주 잠시였지만 나는 내가 진짜 뉴요커가 된 기분이 들었다. 프라다를 입지는 않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같은 출근길을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의 출근길은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는데 왜 하필 저 영화를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그 정도로 ‘신이 났다’.



한국에선 리모트 근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외노자가 된 후 재택을 2년째 하고 있다. 나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운 좋게 취업을 했는데, 인터뷰를 볼 때만 해도 ‘Back to the office (오피스로 복귀하는 것)’ 를 계획하고 있다는 HR의 말에 언젠가는 오피스를 나가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입사 확정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회사 근처 산호세로 이사를 했으나 모두 헛짓이었다.  회사가 갑자기 ‘전 직원 하이브리드 근무체제(출근과 리모트 근무를 혼합하는 방식)’ 를 하겠다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출근 안 하면 좋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1년 가까이 이 생활을 하다 보니 무언가 이상한 거다. 내가 학교 과제를 하는 건지, 정말 돈을 받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인지,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인 내가 월화수목금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일만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해가 지고 있는데, 뿌듯함보다는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더 많았다. 거기다 하루종일 유일하게 대화하는 사람들인 화면 속의 랜선 친구들은, 빨간색 ‘Leave Meeting (미팅룸 나가기)’ 버튼 클릭 한 번이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적막함만 가득한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아지며 나는 이내 궁금해졌다.  ‘Work From Home(재택)이 과연 내가 원하는 근무환경일까?'



그래서 뉴욕에 머무르는 동안, 물론 이곳에도 나의 동료들은 없겠으나 적어도 오피스로 출퇴근하는 환경에선 지금의 이 갑갑함이 조금은 해소되리라 내심 기대했다. 내가 출근을 하고 싶어질 줄이야,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출근할 맛 나는 오피스


뉴욕에서의 첫 출근 날, 회사가 위치했던 Penn 1 건물



미드타운 34번가에 있는 Penn Station, 회사는 거기서 꼴랑 5분 거리였다. 옆에는 미국의 흔한 백화점 메이시스가 있고, 10분을 더 걸어가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고, 그 앞엔 바로 K-town 이 있으니 이토록 ‘딱 좋은’ 위치가 어딨 을까.



그런데 오피스에 도착하자마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1년 동안 출근을 하지 않아 사원증도 없었던 나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위해 우선 방문객 QR 코드부터 받아야 했는데, 이게 문제였다. 사원증이 없는 내가 임직원에게 부여되는 직원 ID를 기억할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건물 로비에서 내가 불청객이 아니라 여기 일하는 직원이라는 사실을 몇 차례 증명하고 나서야 9층부터 시작되는 회사 오피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알았던 것 같다. 적어도 여기 머무르는 동안 매일 출근하고 싶어 지게 될 거라고. 실제로도 그랬다.



뉴욕 오피스 내부 모습



34번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에 스마트 빌딩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채광에 따라 블라인드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오피스 모습은 그야말로 ‘쿨’ 했다. 길쭉하게 뻗은 반짝이는 하얀 데스크를 따라 들어가면 언제든 미팅을 할 수 있도록 설치된 붙박이 모니터에서 꼭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슈트 차림의 사람들이 서서 퀵  미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카페테리아 공간 - 정갈하게 전시된 스낵들과 커피머신 - 을 보고 있으니 나는 이걸 1년이나 누리지 못했다는 억울함에 몸서리쳤다. 그리곤 다짐했다. 내 이 한 몸 불살라 뉴욕에 있는 동안 모든 복지를 누리고 가리라.



그런데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 오피스에서 약 4주간 일을 하며 발견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뉴욕에서 출퇴근하며 알게 된 것들


첫 번째, 아시아 인이 눈에 띄게 없다는 것. 우선 뉴욕에는 디자인 팀이 따로 없어서, 커다란 모니터로 디자인을 하고 있노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은 먼저 다가와 어느 팀이냐며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때로는 이상할 정도로 내가 이방인이 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바로 층 전체에서 내가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을 때다.


이곳 뉴욕 오피스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일즈였다. 디자이너가 없다는 건 그렇다 쳐도, 왜 하고 많은 세일즈가 모두 백인일까? Diversity(다양성)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 조직에서 정작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업무가 천편일률적으로 특정 인종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들이 상대하는 고객도 백인일 확률이 높다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2년 차 조무래기인 나는 지금은 몰라도 되는, 그러나 만약 내가 한국에서처럼 계속 영업을 하고 싶었거나 혹은 리더가 되고 싶다면 애초에 내 위엔 너무나 깨기 어려운 유리천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현실에서 내가 계속 일을 하고 싶어 질까?



두 번째, 사실 내가 그리웠던 것은 번쩍번쩍한 오피스가 아니라 ‘대면 커뮤니케이션’이었다는 것. 여전히 나는 종종 한국에서 일하던 시절이 그리운 순간이 있다. 너무 더러워서 감히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내 자리, 매니저 몰래 메신저로 수다를 떨며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 식곤증이 오기시작하는 오후 3시쯤 사람들과 가지던 잠깐의 커피타임, 커다란 보드에 마커로 논의 아이템을 적어가며 함께 하던 브레인스토밍, 누군가의 생일이면 미팅룸에 깜짝 불러내 축하를 해주던 기억, 야근을 하다가 메신저에 불이 켜진 동기들과 급 만나 해결하던 저녁. 리모트로 미국에서 다시 커리어를 시작한 나에게 한국에서의 이런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경험, 즉 ‘공통사가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함께’ 일하고, 어울리는 것이란 걸 첨단기기와 무료 단백질 바가 가득 찬, 뉴요커 잡지 건물이 바로 앞에 보이는 오피스에서 일하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 부대껴 일하던 한국에서의 직상생활 시절



마지막으로 근무환경을 제외하고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피스로 향할 때면 꼭 4계절 옷차림이 다 있는 듯했다. 미드 Suits (슈츠)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스탠더드 정장을 빼입은 사람부터 등이 시원하게 파진 실크소재의 샤랄라 원피스에 세상 힙한 운동화를 신었던 모델 뺨치는 여자, 나에겐 아무리 봐도 아빠 러닝셔츠 같은데 태연하게 그 위에 크롬하트 금 목걸이를 걸친 사람까지. 이는 결코 내가 사는 이곳 베이에선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Bay Area), 즉 실리콘밸리는 패션과는 거리가 멀다. 스티브잡스나 마크 주커버그를 떠올려보라. 모두 멋과는 거리가 먼, 간편한 옷차림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이 짤이 나는 이곳의 현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일명 '테크유니폼'. 회사 로고가 박힌 후디와 메신저 백, 손질하지 않은 머리, 청바지, 웨어러블 시계, 그리고 자전거. 소름 끼치도록 일치한다.  (출처: 비즈니스 인사이더)



특히나 일교차가 큰 이곳에선 너나 할 것 없이 회사 로고가 박힌 파타고니아 플리 재킷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한때 우리나라 10대들의 상징템, N사 바람막이 점퍼처럼.


테크브로(Tech bro) 룩. 미드 실리콘밸리에도 항상 나온다. 조끼와 긴팔 재킷 다양하다.




“So how’s New York? Did you meet some people? (그래서 뉴욕은 어때? 사람들 좀 만났어?)”


“No one wears Patangonia here. (아무도 파타고니아 안 입어)”


나의 이 대답에 팀원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내가 사는 곳이 테크회사 천지인 동네이기도 하고, 뉴욕에 방문한 시기가 여름이었으니 재킷이 꼭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뉴욕은 상대적으로 금융산업이 우세하니 멀끔한 슈트차림의 직장인이 많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fact 말고, 두 도시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고, 그리고 이것이 평상시 옷차림 까지도 연결된다고 본다. 가령 베이에선 ‘정말로’ 누구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회사를 갈 때도 후드티나 플리플랍을 신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패션과는 거리가 먼 이곳 사람들의 옷차림을 놀리는 짤들이 돌아다닐 정도다. 반대로 온갖 파티 등 소셜이벤트가 많고, 루프탑 바, 클럽 등 화려한 장소가 넘쳐나는 뉴욕에선 어쩌면 자연스레 나를 치장하는 것이 그룹에 융화되기 위해 꼭 필요한 생존 전략이 돼버린 건 아닐까?



뉴요커 vs 샌프란시스코 겉모습. 샌프란시스코 남자는 거지 같아 보여도 사실은 20억 이상의 자산가라는 내용.  (출처: thecooperreview.com)



화려한 뉴요커들의 출근룩을 볼 때면 나는 잠시 여의도로 출근하던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몸에 달라붙는 오피스 룩에 7cm 힐을 신고 9호선을 타고 다니던 시절의 나. 지금은 화장도 잘하지 않는 내가 그땐 어떻게 그러고 매일 출근을 했는지 나 조차도 신기할 노릇이다. 꾸미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좋다. 매일 같이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고, 2시간에 한 번씩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쳐야 했던 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행복하다. 무엇보다 관심도 없는 명품백을 가지고 서로의 옷차림을 평가해 대는 그 사회적 시선에서 해방된 것이 너무나 좋다.



겉치레가 아닌 정말 일만 하면 되는 분위기 (물론 원하면 꾸며도 된다), 같은 목적,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면서 얻는 배움, 나누는 대화, 거기서 자연스레 느껴지는 유대감. 무서울 정도로 자본주의인 이 나라에서 월급 외에 나를 열일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보면, 화려한 오피스도, 공짜 점심도 아닌 결국 사람과의 교류인 것 같다. 파타고니아는 사실 입어도 그만, 안 입어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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