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물개 Oct 28. 2022

하마터면 브이로그에 속을 뻔했다

청량하지 않아도 괜찮아


날씨는 우리의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날씨에 진심인 나는 한때 이 질문을 꽤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우연히 1998년에 실제로 이런 연구를 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심리학자인 David Shkade(데이비드 슈 케이드)과  Daniel Kahneman(다니엘 카너먼)은 'Does Living in California Make People Happy? (캘리포니아에 사는 것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화창한 기후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행복한지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는데, 결론은 당시 나에겐 다소 실망스러웠다. 실제로 비교를 해보니 (대체적으로 날씨가 좋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중서부 지역의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날씨는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에서 상당히 하위권에 위치했고, 삶의 전반적인 밸런스나 커리어 기회, 재정적 안정도 등이 더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몇 년 전 딱 한 번 만났던 나의 소개팅 남은 크게 반발했다. 내가 한 연구도 아닌데.


“행복도를 상승시키지 않을지는 몰라도 안 좋은 날씨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건 확실해요.”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는 겨울이 유독 길고 춥다는 뉴욕의 시골 지역에서 오랜 유학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본인을 포함한 주변 친구들이 유학시절 모두 우울증으로 고생을 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고 했다. 동부의 우중충한 날씨가 영향을 미쳤다고 굳게 믿는 그는 나에게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며 몇 번이나 강조했다. 꼭 훈수를 두는 듯한 그의 태도가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날씨와 기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그의 생각에는 이견이 없었다. 실제로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의 5할은 날씨였기 때문이다.



5월의 뉴욕을 택한 이유


나는 한국의 여름과 겨울을 유독 힘들어했었다. 여름엔 해가 갈수록 동남아 뺨치는 습도가 싫어서 약속은 무조건 실내로 잡고, 겨울엔 수족냉증으로 손발을 꽁꽁 묶고 다녀야만 했으니까. 이렇게 날씨에 민감한지라 여행지의 기후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것이 내가 5월에 뉴욕을 간 이유이기도 하다. 난 초여름의 뉴욕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운이 없게도 한 여름(7.8월)또는 한겨울(12월, 1월)에만 방문해서 도시의 찜통더위와 혹독한 바람에 호되게 고생한 기억이 있는지라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뉴욕 날씨가 그렇게 좋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그만 넘어가버렸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뉴욕에 가게 되면 마치 유명 뉴요커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하염없이 청량한 날씨에 공원에서 평화롭게 피크닉을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월터의 상상과 달리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돌아보면 뉴욕에 머무른 40일 동안 날씨가 좋았던 날은 일주일이 조금 될까 말까 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좋은 날씨’란 모든 것이 ‘적당한’ 상태 - 즉 외부 활동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온도와 습도 - 햇살이 있지만 그렇게 뜨겁지 않고, 바람이 불지만 칼바람은 아닌, 불편함이 없는 청량한 날씨를 의미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완벽한 날씨가 애초에 어떻게 매일 가능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365일 중 최소 330일을 그런 날씨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것이 지나친 기대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상상했던 뉴욕의 푸르른 여름. 현실은 미치도록 덥고 습하다.

누가 여름의 뉴욕이 좋다고 했냐


나는 뉴욕 사람도 힘들어한다는 ‘Heatwave (폭염)‘를 제대로 겪었다. 그러나 90F (약 34도)를 넘나드는 폭염은 둘째 치고, 여행 내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실 이곳의 습도였다. 폭염이야 캘리포니아에도 비일비재한 데다가 내가 살고 있는 산호세는 화씨 100도(섭씨 약 37도)를 넘는 날도 많기 때문에 더위는 그럭저럭 익숙했지만, 습도는 달랐다. 이곳의 습도는 마치 한국의 한 여름을 떠올리게 했다. 숨이 턱 막혀서 제대로 숨쉬기도 힘든 날씨.


뉴욕에 도착한 첫날, 하필이면 긴 청바지에 시폰 소재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던 나는, 첫 목적지였던 Bryan Park(브라이언 파크)에 도착하기도 전에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고 머리는 얼굴에 달라붙어 그야말로 오징어 몰골이 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청량한 여름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자마자 제습기를 떠올리게 하는 날씨라니. 맨해튼 길바닥을 걸어가며 갑자기 나에게 기대감을 심어줬던 모든 이들이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예쁜 얼굴로 “I love Summer in New York. The city is so gorgeous. (여름의 뉴욕이 너무 좋아.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라며 호들갑을 떨던 그 브이로그 유튜버까지.


살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사고 나서는 패턴이 너무 화려해서 돌아온 뒤로 한 번도 입지 않았다는 원피스.

결국 나의 거창한 뉴욕 여행의 첫 방문지는 브라이언 파크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아닌, Zara가 되었다. 이 어이없는 행선지에 나중에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폭소를 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나는 괴로웠다. 옷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덥고 습한 날씨에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힌 나는 도저히 긴 바지를 입고 남은 하루를 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하여 미친 듯이 쇼핑을 하고, 밑이 시원하게 뚫린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서야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계획대로 브라이언 파크에서 첫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날씨는 죄가 없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날씨가 내 기대와 같지 않았다고 해서 뉴욕에서의 40일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염원했던 청량한 여름은 손에 꼽을 정도였을지 몰라도, 이상할 정도로 나는 이곳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있을 때 보다 더 자주 ‘행복하다’ 고 느꼈다.


행복하다. 맨날 맨날 돌아다니느라 발은 만신창이고 얼굴은 까매졌고 날씨는 오락가락하고 일은 너무 많고 살은 하나도 안 빠졌고 주말은 또 이렇게 가버렸지만, 진짜로 진심으로 행복하다.


3주 차 일기에 저 구절을 적으며 스스로도 흠칫 놀랐다. 내가 이런 날씨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니! 나 이제 더위에 강해진 걸까? 아님 샌프란시스코보다 뉴욕이 나랑 더 맞는 곳인가?


추측컨대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이유의 대부분은 아마도 낯선 환경이 주는 설렘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덥고 습해도 절대로 무시 못할 뉴욕 특유의 화려한 뷰,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든 공원에서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 한강만큼이나 예쁜 허드슨 강, 어디서나 쉽게 보이는 길거리 공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플리마켓들.. 내가 살고 있는 베이 지역과는 현저히 다른, 낯선 곳이 주는 자극은 한없이 정적이고 무료하고, 그래서 침전되어 있던 나의 감각 세포들을 깨워주기 충분했다. 그러니 40일 동안 딱 하루 빼고 밖에 나가지 않은 적이 없었을 테다.


또한 20대 때와는 달리 내가 이제는 더 이상 무언가를 ‘탓’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20대는 여느 청춘처럼 늘 불안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늘 바쁘게 살았었다. ‘꼭 뭐에 쫓겨 사는 애 같았어’ 라며 나의 20대를 기억하는 친구의 말처럼, 언제나 조급하고, 그래서 초조하던 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나의 모습이 싫어서 날씨 탓을 했던 것 같다. 사실은 진짜 이유 - 과제를 하지 않아서, 남자 친구와 싸워서, 살이 쪄서 등 - 가 있었을 텐데도 그저 좋지 않은 날씨 탓을 하고 싶었던 거다. 비가 와서 기분이 처지고, 날이 너무 더워서 짜증이 나는 거라고.


현실은 날씨가 좋다고 내가 항상 행복했던 것도 아니고, 비가 온다고 항상 울적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날씨가 거의 항상 좋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한국의 폭염을 겪고 있는 김 아무개보다 행복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날씨가 좋았던 기분을 '더' 배가시켜 주거나, 우울했던 기분을 '더' 증폭시키는 촉매제의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애초에 부정적인 기분의 원흉은 아니었다는 걸 나는 30대로 넘어가면서야 깨달았다. 날씨는 날씨고, 기분은 기분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말은 즉슨, 지난 일 년간 간헐적으로 찾아오던 나의 우울감도 얼마든지 타파할 수 있다는 것. 애초에 날씨는 죄가 없다면, 덥고 습했던 뉴욕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던 행동들을 여기서도 행하면 되지 않겠는가? 즉 일부러 낯선 경험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것이다. 날씨는 바꿀 수 없을지 언정 기분은 바꿀 수 있으니까.


폭염에도 행복했던 뉴욕에서 다시 베이로 돌아온 이후, 나는 요즘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혼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는 한다. 베이킹도 해보고, 꽃도 사보고, 커피 원두를 바꿔보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러닝머신 위해서 40분간 전력질주를 하기도 하고. 20대엔 전혀 하지 않았던 이러한 노력에 스스로도 '참 별 짓을 다한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 효과가 있다. 잠시나마 수면 위로 가라앉으려던 기분이 이러한 심폐소생술로 괜찮아지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한다.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적어도 기분에 속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지금 30대의 내가, 불안하기 짝이 없던 20대의 나보다 훨씬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은 어쩐 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