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뉴욕뽕
뉴욕에 사는 한국인을 만나면 꼭 한 번씩 언급하는 단어가 있는데 듣기에도 썩 유쾌하진 않은 “뉴욕뽕”이다. 거짓말 안 하고 만났던 모든 이가 마치 점쟁이가 예언하듯, 하나같이 나에게 ‘뉴욕에 머물면 반드시 뉴욕뽕에 취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충 이들이 묘사하는 ‘뉴욕뽕 맞은 자’ 특징을 종합해 봤더니 그냥 미디어에 소비되는 뉴욕의 이미지들 - 화려한 야경, 높은 건물들, 고급 레스토랑, 패션- 과 관련된 내용으로 자신을 치장하며 뭐든 뉴욕이 최고라고 믿거나, 뉴욕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산다고 착각하는 허세과잉 상태를 의미했다. 비슷한 말이 뭐가 있으려나. 아마도 ‘부심’ 정도? 서울부심, 강남부심, 그리고 뉴욕뽕.
솔직히 처음엔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스노비즘(snobbism; 알맹이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남에게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해 껍데기만 빌려오는 성향 및 허영을 나타내는 문화사회학 용어)은 현대 사회 어디서나 나타나는데 유독 뉴욕에만 이런 단어가 있다니, 뉴욕뽕이라는 단어부터 허세의 기운이 넘쳐흐르지 않는가. 자본주의에서 과시의 기준이 소득이라면 1인당 평균 연봉은 샌프란시스코가 뉴욕보다 더 높은데, 왜 샌프란시스코뽕이나 실리콘밸리뽕 이란 말은 없지? 나는 무슨 말만 하면 뉴욕, 뉴욕 거렸던 ‘자칭 뉴요커’ 지인들이 떠오르며 나는 ‘대체 뉴욕이 뭐라고’ 하며 코웃음을 쳤다. 나는 절대로 뉴욕뽕을 맞을 일은 없다며.
아무튼 친구들의 예언은 적중했다. 뉴욕뽕에 단단히 취한 집주인을 만났으니.
나의 뉴욕 숙소는 센트럴파크 동쪽에 위치한 방 3개짜리 아파트였다. 방이 3개라고 영화에 나오는 빌딩 숲 사이 크고 번쩍번쩍한 고층 건물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그런 건 개나 줘야 했다. 현실은 침대와 책상 외에 몇 걸음 여유밖에 없는 크기의 작고 낡은 아파트였고, 집주인과 집주인의 친구가 있는 집에 남는 방 하나를 쓰는 조건이었다. 두 명 모두 내가 머무는 중간에 여행을 가서 2주 정도 혼자 집을 쓸 수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샌프란시스코 친구 J도 짧게 뉴욕을 방문해서 같이 머물기로 한 상태였다.
그런데 혼자 숙소에 도착한 첫날부터 고행이 펼쳐졌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캐리어를 이고 지고 끙끙대며 올라가야 하는 건 애교고, 여느 뉴욕의 아파트들처럼 에어컨이 없어서 오랜만에 이열치열을 제대로 경험했다. 거기다 첫날부터 자는 내내 소음의 어찌나 심하던지, 누우면 바로 잠드는 나도 몇 줄을 밤을 설쳤다.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말하는 내게 집주인은 말했다.
“에이, 맨해튼이잖아요. 여기서 이 정도 소음은 소음도 아닌데? 너무 시끄러우면 에어팟 끼고 주무시면 돼요. 전 지금은 익숙해져서 소음 들리지도 않아요”
에어팟을 끼고 자라고? 어떻게 저렇게 순수한 얼굴로 얼토당토않은 말을 할 수가 있담. 상상도 못 한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나는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놀라운 발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말에는 “돈” 과 “뉴욕”이 등장했다. “뉴욕은 돈이면 다 돼요.” “뉴욕이잖아요, 다 돈이에요.”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퀄리티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레스토랑의 음식도, 렌트비가 한화 600만 원이 넘는 이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도 모두 ‘뉴욕이라 그렇다’고 퉁칠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유독 나의 데이팅 라이프에 관심을 가졌는데, 싱글이라는 나의 말을 듣자마자 “여기 계시는 동안 파이내스가이 (금융권 종사자)랑 데이트하세요!” 라며 여행보다 데이트에 집중하길 조언(?)했다. 점점 더 그녀의 세속적인 마인드와 “뉴욕=돈”으로 귀결되는 논리가 거북해졌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라고 쳐도, 매번 이런 식의 대화로 이어지니 참하고 생긴 그녀가 모순덩어리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 진심으로 궁금했다. 도대체 그녀는 어쩌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게 됐을까.
숙소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집주인이 2주간 집을 비웠을 때 나의 친구 J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왔었다. 방들이 워낙 좁아 우리는 거실에 캐리어를 펼쳐놓고 지냈는데, 하루는 친구 가방 안에 있던 초콜릿과 캔디봉투에 구멍이 나있는 걸 발견했다. 봉투입구도 아닌 바닥 모서리에 버젓이 있는 구멍을 보며 우리는 두 눈을 의심했다. 설마 아니겠지 했던 의심은 집안 곳곳에 보이던 하얀색 원형 디바이스가 초음파 쥐 퇴치기라는 걸 알게 된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쥐라니. 쥐라니. 쥐라니!!!! 가뜩이나 뉴욕 길바닥에 쥐가 천지인데 이젠 집에서까지 쥐랑 같이 지내야 하다니, 신이시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정녕 이것이 뉴욕이란 말인가.
친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쥐의 실물을 영접하지 못하고 샌프란으로 돌아갔고, 얼마 뒤 여행에서 돌아온 집주인이 먼저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누가 10년 넘게 뉴욕에 산 뉴요커 아니랄까 봐 그녀가 호기롭게 나를 안내한 곳은 내 사랑 푸드트럭, 할랄가이즈. 우리는 각자 플래터 한 접시씩 포장해서 집 바로 앞에 있는 센트럴파크에서 사이좋게 벤치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친구는 잘 돌아갔냐고 물어보는 그녀에게 나는 밥 먹는데 이런 얘기 꺼내 미안하지만 집에 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 왈, “어머, 놀라셨겠다. 맞아요 뉴욕에 쥐 많아요. 근데 큰 쥐 아니고 mice(생쥐)에요! 실제로 보면 그렇게 안 무서워요!” 역시나 뉴요커 그녀에겐 라따뚜이정도의 쥐는 애교였군! 그래도 불편한 경험 해서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으니 악감정은 없었다.
노을이 지랑 말랑한 시간이었다. 센트럴파크의 푸르름과 지저귀는 새소리, 여유롭게 산책하는 사람들. 참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할랄가이즈를 먹으며 우리는 이런저런 일상 얘기와 서로의 미국 정착기를 공유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온 그녀는 집안의 가세가 어려워져서 알바를 여러 개 뛰어야 했다고 한다. 뉴저지에 살았던 그녀는 허드슨 강 너머 보이는 맨해튼이 꿈의 동네였던 것 같다. 늘 맨해튼을 바라보며 저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잠깐 한국에 들어와 데이터 애널리시스트로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다시 뉴욕에 왔다고. 적성에 안 맞는 데이터분석은 집어치우고 돈 많이 버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했다. 그녀는 또 지금 남자친구가 너무 좋아서 결혼하고 싶은데 강 건너 뉴저지에 살고 싶어 해서 조율 중이라며, 한 번 맨해튼을 벗어나면 다신 맨해튼으로 못 온다는 말이 있어서 자긴 여기 꼭 남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녀의 일편단심 맨해튼 사랑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다 문득 한국에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미국에 오겠다고 결심하고 실리콘밸리로 이직을 다짐했지만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던 때였다. 노는 것도 연애도 주말도 다 반납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가겠다고 난리치던 시절.
어느 일요일, 하늘이 이날의 뉴욕처럼 유독 예뻤던 날이었는데, 카페에서 하루 종일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하늘이 샌프란시스코 하늘이면 좋겠다’고. 난 그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여기에 꽂혔던 걸까?
어떻게 서든 맨해튼에 살고 싶은 그녀와 어떻게 서든 샌프란시스코에 살겠다고 직업까지 바꿔가며 한국을 떠나온 나. 누군가의 눈엔 나도 실리콘밸리뽕에 취해있었는지도 모르지.
“저는요, 뉴욕이 정말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진짜 힘들다가도 뉴욕 하늘을 딱 보면 힘든 게 싹 풀린다니까요?”
그녀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 그랬다. 낮에는 무더위와 습함이 기승을 부리지만, 해가 질 무렵의 뉴욕의 하늘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예뻤다. 높디높은 건물 창에 맨해튼의 구름이 거울처럼 비치고, 바람은 솔솔 불고, 나는 배부르고. 나는 아주 조금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