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물개 Mar 14. 2024

길에서 밥 먹는 뉴요커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들



나는 맛집 탐방에 그다지 감흥이 있는 편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그동안 네 구글맵의 그 많은 하트는 뭔데’라며 되물을 친구들이 많다는 걸 안다. 사실 나도 뉴욕에 와서야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고 해서 새로운 레스토랑에 가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뉴욕에서 발견한 나란 사람은 딱히 미식활동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43일 동안 절반은 누군가와, 절반은 혼자서 시간을 보냈는데, 혼자 있을 때의 나는 결코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집착할 정도로 찾아다녔던 장소는 오직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카페와 마음껏 멍 때리고 산책할 수 있는 공원뿐, 카드 기록을 보면 그나마 레스토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43번가에 위치한 베이글 집이 전부였다. 그것도 To-go(테이크아웃)으로.


생각해 보면 나에게 ‘맛집’ 이란 단어는 맛있는 식당이란 공간보다는 꼭 누군가를 대동해야 하는 ‘경험’에 가까웠던 것 같다. 굳이 팬시 하진 않더라도 가고 싶었던 장소에서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사진도 찍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  여기에 식사는 거둘 뿐. 혼자 가는 미슐랭보다 둘이 가는 새마을 식당이 더 좋은 나에게 가뜩이나 높은 물가에 혼자 맛집을 탐방한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머릿속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내게 푸드트럭의 천국인 이 도시는 기대한 적 없는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사실 푸드트럭은 관심조차 없었는데, 회사 동료 T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T는 나를 포함 몇 안 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살고 있는 디자이너 동료인데, 나와는 같이 일한 적이 없어 그동안 친해지지 못한 사람이다. 이 지역 토박이인 그는 내가 뉴욕에 간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회사 메신저로 츤데레처럼 불렛포인트가 열댓 개 있는 <Best Food Trucks in NYC > 리스트를 띡-하고 보내주었다.  이게 뭐냐고 묻는 내게 영화배우 세스 로건을 3초 닮은 그는 장미 타투로 뒤덮인 양 손바닥으로 기도 하는 제스처와 함께 장난스럽게, 그러나 애원하듯 말했다.



“클레어 제~발, 푸드트럭 꼭 가. 진짜 뉴요커들은 푸드트럭에서 밥 먹는다고.



나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으나, 뉴욕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그의 말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뉴욕엔 무려 5천 개의 푸드트럭이 있다고 한다. 특정 블록에만 트럭들이 밀집해 있는 샌프란시스코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우리나라 길바닥에 떡볶이차가 있다면 여긴 뭐 떡볶이부터 시작해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있는 도시답게  별의별 음식이 다 있다. 또 트럭의 종류도 어찌나 천차만별인지, 우리나라로 치면 요구르트 카트 크기의 차에서 커피와 각종 음료만 파는 곳도 있고, 이연복 세프의 <현지에서 먹힐까?>에서 처럼 거대한 트럭에서 나름의 고급요리를 하는 곳도 있다.


내 최애 푸드트럭이 이었던 할랄가이즈


내가 처음으로 이용한 푸드트럭은 14번가 록펠러 센터 근처에 위치해 있는 무슬림 브랜드 할랄가이즈(The Halal Guys)였는데, 놀랍게도 푸드트럭인 이곳이 이 브랜드의 본점이었다. 호일 재질의 컨테이너에 밥과 고기, 샐러드에 요거트 소스를 버무리고 빵을 곁들여먹는 플래터는 일종의 부리토 보울과 비슷해서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종종 먹는 음식이다. 탄단지가 완벽에 갖추어져 있는 데다 10불 언저리의 미국 물가치곤 저렴한 가격, 거기다 양도 엄청나서 한 번 사면 점심, 저녁에 두 끼를 거쳐 먹기도 했던 추억의 메뉴. 근데 여기가 뉴욕 길거리 푸드트럭에서 출발한 거였다니.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알고 보니 푸드트럭은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 푸드트럭 전용 모바일 맵도 있고, 최고의 푸드트럭을 가르는 '벤디 어워드(Vendy Awards)'가 있었다. 생각보다 푸드트럭 비즈니스 규제가 상당히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거리마다 푸드트럭이 우후죽순으로 보이는 걸 보면 장사가 꽤 되거나, 레스토랑을 여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정답은 모름)

벤디어워즈 로고(출처: https://www.invitednyc.com)




빠르고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푸드트럭에 푹 빠져서(?) 나는 그 뒤로도 종종 점심시간이나 혼자 돌아다닐 때면 타코부터 햄버거, 스시부리토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푸드트럭에서 사 먹었다. 특히 평일 점심시간에 나처럼 푸드트럭에서 사 온 음식들을 가지고 공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뉴욕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앉아 삼삼오오 밥을 먹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빈 벤치 아무 데나 앉아서 10분 만에 해결하고 다시 제 갈길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도 위에 있는 벤치에서 샌드위치 하나 먹고 사라지던 사람들


우리나라처럼 한강 고수부지에서 치맥을 먹는 문화는 없지만, 바쁜 일상에 빠르고 효율적인 걸 좋아하는 건 여기 사람들도  별 다를 바 없구나 싶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온 내가 남의 나라의 빨리빨리에 물들어 푸드트럭 최고를 외치게 될 줄이야. 신기하고 재밌고 그랬다. 아무래도 그 많은 맛집은 모두 관광객이 가나 보다 싶다. 먹고살기 바쁜 평일의 뉴요커는 맛집에 갈 시간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역세권보다 공세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