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타는 이야기
터키 이스탄불 역사지구
공항버스를 타고 이스탄불 역사지구에 위치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일명 블루모스크)로 향했다. 나는 양손에 1989년 개정판 최신 이스탄불 시내 지도를 펼쳐들었다. 갈 장소를 확인했다. 빨간펜으로 동그라미 친 곳이 안내테스크에서 소개받은 유스호스텔이다. 안내원은 내가 대뜸 콩글리쉬로 싼 곳을 찾자, 블루모스크 근처에 숙소는 많다며 한마디 넌지시 던졌다.
“값싸고 좋은 그런 물건은 없어요. 물건 값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요.”
버스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블루모스크) 근처 악사라이 정류소에 섰다. 그곳에서 역사지구까지는 관광용 트램으로 갈아타고 간다. 길거리를 거북이처럼 달리는 빨간색 노상전철이다. 나는 노상전철은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 설레기도 했다. 그림엽서에 보면 꼭 노상전철에 매달려 팔을 펼친 여성 모델이 나온다. 나도 흉내내보고 싶은데 누가 찍어 줄 사람이 있어야지.
‘혼자하는 자유여행은 옆구리가 시려. 흐흣.’
나는 트램 안에서 올림푸스 카메라로 옆을 스치는 또 다른 트램을 찍었다. 아마 낯선 여행지에서 찍은 베스트 기념사진로 내 사진첩 속에서 기억될 터였다.
어느 여행칼럼리스트가 여성잡지에 쓴 기고글이 언뜻 떠올랐다.
‘시스터, 매일같이 입는 옷이잖아. 그래 트랜디한 정장 뭐 나쁘지 않아. 그래도 잠시 벗어놓자. 거울 앞에 서봐. 빈티지한 나들이 차림 괜찮지 않아. 그리고 상상해봐. 엔티크한 고풍스러운 거리를 걸으며, 낯선 그이가 맞은편에 앉아있고 풍미가 전혀 다른 음식이 눈앞에 있다고 입맛을 다셔봐. 그에게서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같은, 다음 편이 기대되는, 어떤 육감적인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지 않아.’
이런 글은 찾아서 봤다고 하기는 좀 거시기하고 눈에 띄니깐 봤다. 어느 한국병원이나 접수처 로비에는 꼭 4대 여성잡지(여원, 여성중앙, 여성동아, 주부생활)가 비치되어 있다. 그래도 나는 아줌마는 아니니까 살짝 여원을 몇 장 들춰봤다.
기고 글은 늘 미끼밥이다. 뒷장부터 다 찢어진 청바지, 야들야들한 옷 -천 값도 별로 들어 보이지 않는다.- 을 입은 모델이 엔티크한 배경을 뒤로 하고 포즈를 잡는다. 사진엔 할인가가 아닌 늘 정가만 붙어있다. 나는 지름신이 강림했는지, 그만 미끼에 낚였다. 찢어진 청바지를 샀다. 그런데 나중에 값이 얼마짜리 인지도 모르는 엄마가 찢어졌네, 하며 걸레로 재활용했다. 내가 못살아.
이스탄불에 오면서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술탄의 어리어리한 궁전, 높이 솟은 첨탑, 둥근 돔을 가진 웅장한 모스크, 그리고 야자수가 심어진 오아시스가 백그라운드로 쫙 깔린 거리, 낙타를 탄 대상들이 그 길을 오가는…. 이런 모습은 그림엽서에 다 나온다. 나는 그 그림 속에서 온 몸을 가린 니캅을 입고 낙타 등에서 산들산들 흔들리며 대상을 따라갔다. 그런데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면 주로 팔려가는 아주 예쁜 여자노예들이다.
나는 이스탄불에서 아라비안나이트 풍경을 찾아보려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그런 풍경이 없지 않지만, 오일머니 힘으로 리야드 시내가 하루가 다르게 미국식 건축문화로 변해갔다. 이곳도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 차장 밖으로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라비안 신사 숙녀들이다. 그들은 이제 낙타를 타지 않는다. 트램이나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고풍스러운 낡은 건물들 사이사이로 현대식 상점 건물들이 ‘공사중’ 팻말을 달고 있다.
‘그래, 한결같을 수야 없지.’
‘오♪ 너무 쉽게 변해가네.♬ 오♪너무 쉽게 변해가네.♬’
나는 낮은 콧소리로 허밍하며 동물원 앨범 1집(1988년)에 수록된 ‘변해가네’를 불렀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 곳으로만 가려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 곳으로만 고집했지♬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차창 너머 바깥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그가 어른거렸다. 아스라이….
“아웃사이더 프린스 씨! 흰색 깐두라는 입지 않나요?”
“전통행사 때는 입죠. 아람코(사우디국영석유기업)에서 일할 때는 자유롭게 입어요. 그곳은 이슬람율법이 다스리지 않는 별천지죠.”
그는 검사실 옷걸이에 양복을 걸어놓고 셔츠 소매를 걷었다. 검사대 앞에 앉아 나에게 굵직한 팔뚝을 내밀었다. 그의 팔뚝, 검푸른 핏줄이 꿈틀꿈틀 했다.
“아웃사이더 프린스 씨는 왕궁하고는 거리가 먼 모양이죠. 바깥에서 근무하게. 흐흣.”
그가 나의 농담을 알아들었는지 피식, 웃었다.
그의 팔뚝에 내 손가락을 가져갔다. 꿈틀꿈틀하는 핏줄을 따라….
바깥 풍경이 밝아왔다. 어머, 하며 차창에서 손가락을 떼자, 높은 첨탑과 둥근 돔 지붕이 붉은 노을에 물들어가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한 손에는 지도,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면서 나는 블루모스크 앞거리를 걸어갔다. 숙소를 찾아 빨리 짐을 맡겨야지, 하면서도 블루모스크에 절로 눈이 갔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모스크 앞이다. 두 말이 필요 없는 눈호강. 민낯을 드러낸 양파 돔은 노을 속에서 더욱 불그레했다. 모두가 자기를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내가 더 얼굴이 붉어졌다.
6개의 미나네트(뽀쪽탑)에서 저녁 예배를 알리는 아잔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나는 아잔 소리를 듣기 위해 거리에 멈췄다. 두 손을 모으고 이 웅장한 모스크를 바라봤다. 나는 몸담고 있는 종교는 없지만, 기도하고, 사랑하며 일상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은 있다. 꼭 종교를 믿어야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눈앞의 블루모스크가 페이드 아웃되었다. 불현 듯 머릿속에는 밀레의 ‘만종’이 페이드인 되었다. 저녁노을이 지는 들판. 두 손을 모은 부부의 모습이….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음을 감사하는 그들의 나지막한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신이여, 당신은 날개 달린 우리의 영적 자아입니다.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의지입니다.
우리가 갈망한다면 그것은 우리들 속에 있는 당신의 갈망입니다.
당신의 것인 우리 속의 어둠이 역시 당신의 것인 낮으로 변하게 하는 것도
당신의 의지입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들 속에 욕망이 생기기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실 터이니….
우리에게서 당신의 모습을 더 많이 드러내므로
그대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칼린 지브란 <기도에 대하여> 中에서
내가 있는 사우디 기숙사 근처에는 개인이 세운 모스크가 있다. 그 모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아잔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매일 새벽, 잠을 깬다.
“알라신은 위대하다. 신은 한 분이시고, 그 분 이외에 그 누구도 없도다. 무함마드는 그가 보낸 사도. 예배 보러 올 지니….”
나는 그 아잔 소리를 ‘날개달린 내 영적 자아’가 부르는 소리로 바꿔 듣는다.
‘나의 영적 자아는 위대하고, 홀로이며, 그가 나에게 의식을 주어 이 세상에 태어난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가게 했으니…’
저녁시간인데도 블루모스크 광장은 관광객이 끊임없이 넘쳐나고, 예배를 위해 순례자와 이슬람 교인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나는 이런 번잡함과는 자매 관계가 아니라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블루모스크 근처에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을 지도를 보며 올라갔다. 날은 저물었고 골목을 밝히는 가로등을 따라 발걸음도 빨라졌는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녀석이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꼼짝 마, 너 누구야!”
나는 돌아서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검둥이(?), 길거리를 떠도는 방랑견(?). 몸집이 작은 검둥이 개가 내 캐리어에서 무슨 냄새를 킁킁, 맡고 있다. 가방 주위를 맴돌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개 코는 역시 개 코야.”
게스트하우스 골목으로 들어오기 전에 길거리 노점에서 고등어 케밥을 하나 샀다. 그런데 생선고기에서 비린내가 살짝 났다. 몸이 지쳐서 더 그랬는지 비위가 상해 조금 먹다가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사우디 리야드 시내에서 고등어 케밥을 먹을 때는 이런 맛이 아니었다. 분위기 있는 쇼핑몰 식당가에서 먹은 이유도 있겠지만, 아싹아싹 잘만 씹어 먹었다. 생선구이와 야채가 빵 속에서 절묘한 맛을 낸다.
방랑 개에게 그냥 줘 버려, 하다가 왠지 이 녀석이 따라와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밤거리인데다 힐끔힐끔 추파를 던지며 지나가는 행인들이 못내 신경 쓰였다. 이 녀석이 가끔씩 짖어주니 나도 ‘그냥 지나가지 뭘 봐!’ 하는 자심감이 생겼다. 동행하는 대가는 일단 보류. 후불이야, 했다.
골목을 누비며 찾아 간 숙소는 언덕배기에 위치했다. 나는 불이 들어온 간판 아래에서 방긋, 미소를 지으며 3층 높이의 숙소를 올려다봤다.
“세헤라자데 호텔”
나는 공항 안내데스크에서 숙소를 소개받을 때, 이 이름을 듣자마자 결정했다. 약간 돈을 더 주면 독방도 얻을 수 있단다.
“제가 물건 값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죠. 한 쪽은 방도 깨끗하고 주인도 친절하죠. 또 다른 한 쪽은 물론 방도 깨끗하고 주인도 친절해요. 그리고 장식을 잘 해놓았죠.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있고, 천일야화의 그림이 계단 벽면에 걸려있죠. 레이스가 달린 침실 침대는 어떻고요. 스토리가 있어요. 이 집 여주인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예, 거기로 할게요.” 하며 장화신은 고양이 눈망울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는 게스트하우스 골목 숙소들을 꿰고 있지. 혹시 이 집 딸인가?
나는 졸졸 따라온 방랑 개에게 먹다 남은 고등어 케밥을 선물로 주었다.
“고마워, 함께 와줬어.”
늘 우리가 신에게 간구하는 게 이런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