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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Dec 18. 2017

어떻게 지내

9g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도 묻기 어려운 시기가 있다. 영어를 접하며 처음 배우는 문장 중에 그런 게 있다.


- How are you?


동시에, 위 문장과 한 세트처럼 붙어다니는 문장이 있다.


- I'm fine thank you. And you?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 Fine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근래에는 지인들의 안부를 물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꼭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혹시나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해서.


왜냐하면 나도 그다지 Fine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업 후, 나는 직장을 자주 옮겨다녔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항상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색함을 풀기 위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차마 잘 지낸다고는 못하고 그럭저럭이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했다. 조금 더 친한 친구들에게는 겨우겨우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농담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런 대답을 할 때면 친구들은 대부분 웃었다. 장난스러운 내 표정도 한 몫 했지만, 모두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공감 섞인 안도감이 공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마치 잘 지낸다는 말을 기다리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렇게 서로 웃어넘겼다.


안부도 폭력이 될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쉽지 않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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