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노래의말들 165화 방송 후기
안녕하세요. 김숲입니다. 165화 방송을 한지가 벌써 한달이나 되었네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그런대로 후기를 적어 봅니다. 밤이기도 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하니 힘을 쭉 빼고, 주저리주저리 얘기해 볼게요.
이번 방송에서는 아무래도 7월 말, 8월 초가 휴가 시즌이다 보니까 여행과 떠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했습니다. 정작 저는 여행을 많이 가는 편이 아니에요. 막상 여행을 가면 굳이 특별한 활동이나 장소를 가지 않더라도 여행 자체로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만, 애초에 잘 떠나지를 않습니다. 누군가 맑은 하늘을 보며 '아 여행하기 좋은 날씨야'라고 한다면 저는 그 옆에서 '아 집에 있기 딱 좋은 날씨다'라고 한달까요. 실제로 여행하기 좋은 날씨가 집에 있기도 좋다고 굳게 믿습니다.
여행을 잘 떠나지 않지만, 여행하는 기분은 자주 느낍니다. 주로 책을 읽을 때 많이 느끼죠. 낯선 세계를 만나는 설렘이랄까요. 그 속으로 더 들어가고 싶은 호기심이랄까요. 그런 감정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고개를 들어 올립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요. 막상 "어디로?"라고 물어보면 딱히 떠오르는 장소는 없습니다. 그런 걸 보면 진짜 떠나고 싶긴 한 건가? 생각해 보게 돼요. 떠나고 싶은 마음은 사실 '몰입'하고 싶은 마음과 비슷한 게 아닐까? 흥미진진한 책을 만난 기분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요.
반대로 생각하면 훌쩍 떠나지 못한 '지금, 여기'에서는 '몰입'을 잘 못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너무 반복적이어서, 때론 너무 분주해서 '지금, 여기'에 몰입을 못하는 경우가 저는 많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긴 하는데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보람도 없을 때 가끔 있잖아요? 반면에 좋은 책에 빠져서 있을 땐, 작가가 먼 나라의 외국인이어도, 소설처럼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라도 어찌나 내 얘기 같은 지요. 한 문장 한 문장이 굳은살이 많이 박여 둔감해진 마음을 쿡쿡 찌릅니다.
몰입하기 어려우는 일상이 있고, 몰입하는 여행이 있다고 할 때, 여행이 일상의 몰입에 도움이 될까 생각해 봅니다. 엄밀히 말하면 여행의 몰입은 여행지에서 시작해서 그곳에서 끝나는 것 아닌가요. 여행을 해도 돌아오면 다시 반복적인 일상이 펼쳐지고, 책을 덮고, 영화관을 나오면 결국 다시 빙글빙글 쳇바퀴 도는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여행의 기분을 느끼는 것이 일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 몰입하지 않으면 일상을 낯설게 바라볼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 안에서만 있어서는, 마치 같은 음식을 매일 먹는 것처럼 맛이 점점 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에 몰입하여 일상을 벗어나 보아야 비로소 일상의 맛을 회복할 수 있죠. 일상 자체가 바뀐다기 보다 여행자의 입맛이 바뀌는 것입니다.
여행은 몰입, 즉 나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잃어버렸던 나다움을 찾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바뀐 내가 일상을 다시 삽니다. 바뀐 일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바뀐 내가 일상을요.
노래의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짧은 여행이 되길 바라며 후기를 마칩니다. 좋은 밤 되세요.
[165화 방송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