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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바라기 Feb 25. 2022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

퇴사하며 겪은일 3 - 수습기간 중 퇴사 정당한 것인가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으려면 그 대표에 조금 더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나이는 30대 후반, 많아봐야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대표는 젊은 나이에 마케팅 회사를 차리고  또다른 온라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대표가 된 자였다. 한 달 하고도 약간 넘는 기간동안 그 회사에 몸을 담으며 대표가 두어번 대표실로 불러서 업무지시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애티튜드는 가관이었다. 본인은 의자에 앉아있고 나를 비롯한 사원 4명을 마치 직원들이 교무실에 혼나러 간 학생처럼 쪼르륵 줄지워 세워 놓은 채로 업무지시가 이어졌다. 상당히 수직적이고 고압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역시나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인가.


수습기간 중에 퇴사의사를 밝힌 직원에게 뜬금없이 경력증명서와 이전 회사의 연락처는 왜 요구하는가? 의도가 다분하지 않은가? 마치 내가 입사할 때 낸 이력서 내용에 거짓이 있을거라는 전제하에 '거짓이 있으면 응징을 가하겠다'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허허, 기가 차더라.

  

3개월 수습기간 중에 벌어진 일이고 수습기간은 말 그대로 회사입장에서나 직원입장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도 직원을 평가하겠지만 직원도 회사를 평가한다. 3개월의 수습기간은 법적으로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근로기준법 제4조에 따르면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기에 연장이든 퇴사든 각자의 자유의지로 의겨을 피력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은 수습기간 내 퇴사 문제에 대해 회사측에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거나, 부당해고로 인한 관련 글이 많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수습기간 내에 직원은 퇴사의지를 밝혔으나 퇴사 날짜를 정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서류를 요구하며 그야말로 갑질을 하는 회사의 처사에 대한 내용을 문제삼고 싶었다. 


우선 근로자를 해고할 때 수습기간이 아니라면 최소 30일 전에 서면 예고를 진행해야 하지만, 수습 3개월 이내의 근로자를 해고할 때는 예고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근로자 또한 퇴사에 대한 법적인 처벌 규정을 받지 않는다. 근로자가 퇴사 의사를 밝히면 당일 퇴사도 가능한 것이다. 물론 수습사원이 무단퇴사로 회사 측에 치명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회사는 근로자에 대해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도 없다. 손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무슨 손해배상을 요구하겠는가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수습기간이었고 모종의 이유로 회사측에 퇴사의사를 밝혔으나 회사측엥서는 명확한 퇴사 날짜를 픽스해주지 않았고 도리어 감정적인 대응을 하며 고압적인 태도로 갑질을 일삼았다. 경력증명서와 이전 회사의 연락처를 내놓으라는 그들의 어이없는 요구에 순순히 응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기에 나는 사직서를 작성하여 실장에게 직접 전달하고 퇴근을 하려 했지만 실장은 부르르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며 어이없는 막말을 쏟아 내었다. 


뭐가 찔리는게 있어서 퇴사하냐느니 이전 회사 연락처는 왜 안 주느냐느니(분명 말을 했다, 이력서에 명시되어 있는 회사 검색하면 연락처 나온다고, 내가 순순히 너희한테 그걸 왜 알려줘야 하나?) 이렇게 마음대로 나가면 불법이라느니.. 허허 그럼 퇴사의사를 밝혔을 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질질 끌지 말고 퇴사 날짜를 픽스해 주시던가요. 할 말은 많았지만 계속 그 공간에 있다가는 이도저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고 이미 퇴근 시간 20분이나 경과했기에(20분동안 광기 어린 대화를 했음) 난 퇴근해보겠다고 하고 그 회사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 그런 일이 벌어질 때 고압적인 대표는 부재했기에 더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대표는 남자였고 왠지 폭력적인 성향도 엿보였기 때문에 대표가 있었다면 내 입장이 좀 더 어려워졌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의 부재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내가 그 회사에서 퇴사한 날짜는 꽉 채운 수습 2달 째였고 그 다음주 월요일이 월급 날이었다. 난 내가 일한 기간에 대한 임금을 받으면 이 회사와는 깔끔하게 이별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계속하여 연락하며 '경력증명서 제출하라, 인수인계 파일 작성하라' 등을 요구했다. 굳이 낼 필요도 없는 서류들이었지만 '그래 네들이 원하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요구한 자료를 정석대로 제출해줬고(그래 그거 받아서 속이 후련하더냐?) 내 경력에는 허위내용도 없었고 인수인계 파일도 필요한 부분 작성해서 넘겨주었기에 - 막말로 수습 2개월 동안 내가 인수인계 할 내용이 뭐 얼마나 있었겠나 - 그들도 급여를 입금하고 이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그 회사에서 실장, 대표와 싸우고 급여를 입금 받기 전까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따지고보면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죽어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너무 답답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회생활의 더러움, 회사의 갑질 등에 대해 온 몸으로 체험하며 사회생활 경험치가 Lv1은 쌓인 것 같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무개 직장인이 있다면 정말 힘내길 바라고 싸움같지도 않은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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