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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Dec 16. 2024

지옥 바깥이 더 심한 지옥이라면

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 (2)

2023년이 저물어갈 무렵, 나는 하루하루를 초긴장 상태로 보내고 있었다. 늘 바빴지만 이번 연말연시는 더더욱 끔찍하게 바쁠 예정이었다. 큼지막한 업무와 행사 들이 탁상달력에 줄줄이 적혀 있었다. 누가 공무원은 워라밸 있는 직업이라고 했던가?


나는 공공기관에서 월간 홍보물 만드는 일을 했다. 층층시하의 결재선 맨 밑바닥에서 윗분, 윗윗분, 윗윗윗분, 윗윗윗윗분, 윗윗윗윗윗분에게 차례로 보고하며 수많은 수정지시를 받아내고, 수십 개 관련부서에 문의전화를 돌려 추가정보를 확인한 뒤, 사진 수백 장 중에 제일 잘 나온 사진을 찾고, 모든 수정사항을 교정지에 표시하고, 이미 과로하고 있는 디자이너에게 사정사정하며 재수정, 3수정, 4수정, 5수정, 6수정, 7수정... 등등을 거쳐 마감일을 지켜내는 일은 곡예와도 같았다.


수정사항이 없도록 처음부터 알아서 잘 만들면 되지 않냐고? 몇 달 해보면 윗분들 취향도 대충 파악되지 않냐고? 그런 의문을 가진 독자가 있다면, 곽재식의 단편소설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한 줄 한 줄이 심금을 울리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명작이다.


‘긴급 수정. 가능하면 9시 전에 수정본 보낼 것. 보고서 요약서 결론 부분 수정 사항 1) 한 문장으로 할 것 2) 실패한다는 말에 다른 수식은 다 빼고 실패한다는 말만 남길 것 3) 중간에 숫자 나오는 디테일 부분 삭제.’

김 박사는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도무지 시간이 없었다. 오늘이 실제로 원래 예정된 보고서 제출 마감 기한이었다. 김 박사는 뇌를 하얗게 비우고 시킨 대로 그냥 고쳐버렸다.

...박 과장은 9시가 되어 출근하자마자 보고서를 보았다. 아무래도 결론 부분은 아주 이상해 보였지만, 최 담당과 싸울 수는 없었다. 이렇게 이상한 걸 보면 최 담당도 뭔가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잘못된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하겠지.

...최 담당은 곧 보고서를 봤다. ...결론을 보니 너무 지나치게 단순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내용보다는 좀 단순해도 이렇게 간명한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정 국장이 말했다. “다 좋은데, 여기 '초공간 도약 항법'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나? ...뭔가 다른 말로 좀 더 짧게 한번 바꿔 보세요. 입에 잘 붙게 알파벳 약자 같은 것도 좋고.”

(곽재식, 『지상 최대의 내기』 33~36p 발췌, 아작)


수시로 바뀌는 윗분~윗윗윗윗윗분 중에 한 명 이상은 반드시 빌런인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는가? 그들 중 누군가가 시킨 일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것이 공무원의 ‘복종의 의무’ 아니겠는가? 인쇄가 바로 내일이어도, 담당자가 보기에 별문제가 아니라도, 윗분들이 뜯어고치라면 뜯어고쳐야 했다. 이런 식의 난리법석을 매달 반복하는 와중에 새로운 업무, 새로운 사건, 새로운 갈등이 기습처럼 날아들곤 했다. 밤 10시에 회사 옥상 벤치에 앉아 ‘그 일 오늘 중에 꼭 끝내야 되는데...’라고 생각할 때면 그냥 뛰어내리고 싶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임용 첫날 공무원 선서를 하다가 ‘복종’이라는 단어에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았더랬다. 방금 설마 진짜로 ‘복종’이라고 한 건가? 이 단어를 접한 기억은 20세기 말에 학교에서 배운 만해 한용운의 시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그 시를 배운 중학생 때도 생각했다. 시인의 뜻은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복종은 싫다고.


어쩌면 내 멘탈이 유독 약했던 건지도 모른다. 공직에 대한 이해와 각오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복종의 의무란 전적으로 복종하라는 게 아니라 직무상의 적법한 명령을 따르라는 뜻이며, 공무원 중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공익을 위해 보람차게 일하는 이도 있고,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만족하는 이도 많다.


또한 상사들 입장에서는 작은 실수라도 빠짐없이 찾아내서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것이 책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생명과 안전 등에 직결된 주요사항이라면 그게 맞다. 하지만 이 색깔을 저 색깔로, 이 그림을 저 그림으로, 우표만 한 사진을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게 그렇게 분초를 다투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관철해내야만 하는 일이었을까?


나는 공무원시험이 아닌 경력공채로 채용된 임기제공무원이었다. 임기제는 5년까지만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공무원을 계속하고 싶다면 다음번 공채에 지원해 다시 합격해야 했고, 민간인으로 돌아갈 거라면 다른 진로를 찾아야 했다. 약 7개월 후면 5년 임기가 끝날 예정이었다.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나이 어느덧 사십대 초반, 여길 나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들은 어떻게 여기서 탈출하지 않고 10년 20년을 버티는 걸까? 잘 적응한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이곳이 안 맞는 사람들은 어떤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걸까? 그러나 이제 알 것도 같았다. 탈출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였다. 지옥의 출구가 훤히 열려 있어도 지옥 바깥이 더 심한 지옥일까 봐 그 문을 나설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정말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무리 힘들어도 소소한 행복을 어떻게든 찾아내며 복지포인트 쓰는 낙으로 사는 수밖에 없나? 그리고 먼 훗날 부모상을 당했을 때 기관의 이름이 박힌 근조화환을 친척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 무의미한 잠깐의 떳떳함(???????)을 위해서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매년 매월 매일 겪어야만 하나?


내가 원하는 삶은 거창하지 않았다. 대단한 부나 명성을 얻고 싶은 게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언젠가 회심의 걸작을 써내서 뿌듯해 하고 싶은 욕심이 있긴 했지만, 18년간의 지망생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걸작은 못 써도 좋으니 그냥 자유롭게만 살고 싶었다. 충분히 자고 잠이 깰 때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고 피아노를 치며 혼자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혼자만의 주말이 와도 그런 여유를 누리지 못했다. 일 걱정에 마음의 짐을 지고 있든지, 실제로 일을 하고 있든지, 아니면 하루 종일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드라마를 몰아보다 두통에 시달리며 자책하기 일쑤였다. 글을 올리는 브런치 계정을 버려둔 지도 오래되었고, 지난봄 야심차게 시작한 그림도 지지부진했다. 마라맛 기름맛 설탕맛 소금맛 야식에 길들어 살이 찌고 건강이 나빠졌다.


이 생활에 어떻게든 적응해야 하나? 이 나이에, 이 불경기에 공무원이 된 건 놓치면 안 될 행운이 아닐까? 돈은 벌어야 하니까, 다들 좋다고 하는 직업이니까, 인정도 받고 자리도 잡았으니까, 세상에 안 힘든 일은 없으니까, 다 내 마음먹기에 달린 거니까, 건강이든 창작이든 내가 더 노력하면 되니까, 내가 거쳐 온 여러 직업 중에서 부모님이 만족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하는 직장은 여기가 처음이니까,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실제로 어떻게든 되긴 된다. 되어가는 그 하루하루가 매순간 괴로울 뿐.


언젠가 한번은 가족들과 동네 카페에 갔다. 어쩌다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몰라도, 아빠가 카페 주인에게 얘는 공무원이라고 자랑을 했다. “아빠!” 하고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카페 주인이 “어머, 요즘은 공무원이 제일 좋은 직업이잖아요” 하는 말에 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이 직장이 내 인생 마지막 구명보트인 거면 어떡하지? 지금 이 삶이 나의 최선이라면, 여기서 내리면 빠져 죽는다면, 여기 밖의 삶이 여기보다 더 나쁠 거라면,


왜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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