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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

by 황승욱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같은 대답이나,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트럭이나 버스가 지나가며 간발의 차로 만나지 못하는 장면이라거나,


“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고 물었을 때

“나다운 게 뭔데?” 라는 대사들 같은 것들.


너무 흔하고 자주 사용돼서 이제는 진부하고 식상해진 것을 일컫는 말.


감동도, 슬픔도, 새로움도, 재미도 느끼기 어려운 클리셰.

그런데 아기가 생기고 나니, 클리셰에서 새로움을 느낀다. 클리셰가 클리셰로 와 닿지 않는다.




클리셰 1.

누군가를 사랑할 때, 혹은 어떤 순간이 너무 행복할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흔한 말인데, 이게 정말 표현력의 천재가 아니고서야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듯하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냥 특별할 것도 없이 거실에서 히히덕 거리며 놀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아내와 아이를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그럴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 역시 표현력의 천재가 아니라, 그냥 이렇게밖에 딱히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억만금의 억만금의 억만금으로도,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거기에는 일말의 고민도 필요 없다.


나에겐 내 가족이 그렇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

아내와 아이를 지켜보는 순간들이 그렇다.




클리셰 2.

한창 귀여운, 티 없이 맑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러고 보니 이것도 클리셰인가)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아들치고는 애교도 많고, 잘 웃는 편이라 더 보는 재미가 있다.

너무 귀여워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근데 이번 클리셰는 왜 인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집에서 아이를 보다가 회사에 가면 또 보고 싶고 눈에 아른아른 거린다.

특히 주말에 오래 같이 보다가 월요일에 출근하면 상사병의 정도가 더 심하다.

빨리 가서 보고 싶고, 안고도 싶고, 킁킁 아기 냄새를 맡고도 싶어진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아내가 보내준 아기의 사진과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본다.


바쁘게 일하던 중에도

모니터 앞에 놓은 아기의 사진이 잠깐 눈에 보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즐거워진다.


아무래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한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눈에 넣어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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