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왜 우는 지 알고 있지
조리원 생활이 끝났을 때였다. 조리원처럼 선생님들이 계신 것도 아니니, 이제 진짜 육아 시작이다. 걱정과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터. ‘출근 해야 하는데 밤에 계속 울면 어떡하지? 목욕은 잘 시킬 수 있을까? 실수해서 아기가 아프면 어쩌지?’
가뜩이나 조리원 선생님들이 "아기가 잠을 잘 안 자요." 라고 겁을 주기도 한 탓인지, 아내는 새벽에 아기가 울어서 남편인 내가 잠을 설치는 것이 제일 걱정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게 제일 걱정되긴 했다. 워낙 잠귀가 밝고 피곤을 쉽게 느끼는 허약체질인 탓이다. 괜히 피곤해져서 예민하게 굴게 될까봐, 나 스스로도 걱정이었다. 그래도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을 주워 들은 바 있어, '100일 잠깐이니까 100일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자', 하고 미리 결심은 해두었지만 과연 실전에 그렇게 될 것인가는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다행이도 걱정했던 일은 없었다. 아기는 잘 울지 않았고 설령 울어도 금방 달랠 수 있었다. 우선 드림이는 타고난 성격 자체가 순한 건지 웬만해서는 잘 울지 않았다. 또 아내의 덕이 컸다. 아내는 드림이가 기저귀를 간 시간, 맘마를 먹은 시간과 먹은 양, 잠을 잔 시간을 그 때마다 매번 기록해 두었는데, 덕분에 아기가 울면 무엇이 부족해서 우는 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욕구가 충족되면 아기는 금방 울음을 멈춘다.
그래도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능숙하게 아기의 니즈를 파악하고 해결해 줬던 것은 아니다. 서로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맘마를 얼마나 먹어야 적당한 건지 한 번에 알기는 힘들었다. 맘마를 먹긴 먹었는데 양이 좀 부족해서 우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또 가끔은 아기가 이유 없이 자지러지는 듯 울 때도 있었다. 패턴에 따르면 부족한 게 없는 상황인데도 그칠듯 그치지 않고 한 두시간은 내리 아픈 듯 울고 있으니 부모로서 답답한 상황이 몇번 있었다.
그래서 아기가 왜 우는 것인지 파악하려고 울음 소리 구별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전문적으로 설명해주는(것 같은) 육아 채널을 하나 찾았고, 아기 울음소리 구별법 영상을 두 번인가 세 번을 반복 학습했다. 영상에 따르면 아기 울음 소리를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오, 에, 얼, 헤, 네”가 그것이다.
오~ : 아기가 이렇게 우는 것은 졸려서 그런 것이다.
에~ : 아기가 이렇게 우는 것은 가슴이 답답해서 그런 것이다.
얼~ : 아기가 이렇게 우는 것은 배가 아파서 그런 것이다.
헤~ : 아기가 이렇게 우는 것은 몸이 불편해서 그런 것이다.
네~ : 아기가 이렇게 우는 것은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이다.
이제 아기가 왜 우는 지 알았다! “오~”하고 울면 재워주면 되고, “에~”하고 울면 트림을 시켜주면 되고, “얼~”하고 울면 배앓이니까 장시간의 울음을 각오해야 하고, “헤~”하고 울면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온도가 적당한지 체크하면 되고, “네~”하고 울면 맘마를 주면 된다!
영상을 보고 모든 게 해결된 기분이었다. 이제 내심 아기가 울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아빠는 다 알아들을 수 있거든!
드디어 아기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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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오에얼헤네가 아니네?
아기는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애비! 어디 한 번 맞춰보시지. 훗” 하고 결심한 듯 울었다. 아, 이론은 이론일 뿐인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구별하는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드림이는 정확히 오에얼헤네로 울지는 않았지만, 필요에 따라 정말로 울음소리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출산휴가에 추석연휴가 겹쳐 아이와 함께 1주일을 지내서 파악할 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평생 불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다. 다행이었다. 아기 울음소리도 연구하고 아내가 기록하는 아이 패턴을 조합하니 아기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알고보니 이유 없이 자지러지게 울었던 울음이 바로 “얼~”하고 울었던 배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금 피곤하고 힘들어도 트림을 꼭 시켜서 애초에 배앓이를 방지했다. 그 뒤로는 그런 울음이 거의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