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르륵
임신에도 '안정기'가 있다. 대부분의 유산은 임신 16주 전에 일어나는 일. 그때까지는 임신초기라 명명하고 꽤나 임산부들을 걱정시킨다. 프로 부정, 걱정러로서 16주 이전의 나는 염려에 염려를 반복하는 쿠크다스멘탈이었다.
임신을 간절히 원하던 사람도 아니었으나 이미 어떤 강을 건넌자로서, 임신이 종료되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내 몸에 자리 잡은 작은 세포에 큰 애정이 생겼다고 한다면 과장이지만, 그 작은 세포 하나를 지켜내지 못하는 육신의 나약함이 원망스러울 것이고.. 또 임신중단을 겪는 과정이 전혀 간단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랬다. 솔직히 후자가 더 두려웠다.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그 과정을 겪고 나서도 또 임신을 시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임신 초기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임신 8주를 향해 나아가던 무렵, 변기에 앉으니 주르륵 흘러내리는 무엇.
확인해 보니 검붉은 피다. 말로만 듣던 임신초기 갈색혈. 유산의 징조일지 모른다는..
폭풍검색을 때리다 다음날 간 병원에서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은 '유산기'가 있다며 누워만 있기를 강조했다.
그리고 유산방지 주사와 질정제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시간마다 스스로 넣으라며 질정제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받아들고 오며 마음이 꽤나 심난했다. 임신선배들은 그런일 종종 있다며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유산기'라는 단어가 내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기에 대한 걱정보다는 나를 향한 걱정이 더 컸다.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유산이 되면 부모님들이 많이 실망하겠지. 이기적이게도 그런 생각만 했다. 아직은 세포 단계일 아기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만 생각했다. 나쁜년..
12월 13일, 내 생일 전야에 갈색혈은 또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날은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남편도 없는 저녁, 혼자 걸어서 동네 산부인과를 갔다. 가는 내내 피가 나오는 느낌이 계속 났다. 눈을 보며 반가워하는 사람들 사이로 모자를 쓰고 펭귄처럼 걸었다. 저 사람들은 내가 지금 임산부라는 걸 알까?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동네 산부인과 선생님은 중년여성이었는데 꽤나 시크하고 직설적인 타입. 유산기가 있어 피가 나왔다는 말에 나를 굴욕의자에 앉히고 질 초음파를 해주었다. 다행히 아기는 무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들은 아기의 심장소리.
"어머~ 얘 심장도 뛴다. 들어봐요"
심장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던데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크게 안심이 되었다. 나랑 연결된 존재지만 나의 무엇과는 또 상관 없이 잘 살아주어서 고마웠다. 주르륵 흘러서 어디로 사라질까봐 걱정했는데 꿋꿋이 붙어서 심장도 만들어낸 기특한 아기. 심장박동 그래프가 그려진 최초의 초음파 사진을 받아들고 눈이 소복히 쌓인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내 몸을 잠깐 빌려 자라나는 생명이지만 내 것이 아니다. 나와 이렇게 친밀히 붙어있는 순간에도 나는 완벽히 이 아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나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김령은아, 너의 불안과 염려는 언제나 빗나갈 것이다.
'유산기'를 강조하며 누워만 있을 것을 강조하던 병원은 그만 다니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