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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Aug 15. 2016

그녀의 '덫' #36

'시련'의 역습


세 번째 상자를 열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무경을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갑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집중하세요. 이제, 그 날의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그와 처음 만난 날.

우리 집 앞 카페테라스에 앉아있던 그를 떠올려보았다.


창백할 만큼 하얀 피부에 갈색머리, 갈색 눈동자를 가진 이국적인 남자의 모습.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감싸고 있고, 카페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맞춰 손가락으로 '톡톡' 박자를 맞추는 모습이 여유롭고 근사해 보였던 무경.


그리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강렬한 눈빛.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이 맞다고 확신하며 세 번째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텅 비어있는 상자.

'뭐지?'


그 옆에 다른 상자를 열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예랑씨, 무슨 일이에요?"


멀리서 승주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상해요. 분명히 그 날이 맞는데, 상자에 아무것도 없어요. 열쇠가 보이지 않아요."


잠시, 침묵하던 승주.


"그건......  그 기억이 틀렸다는 거예요. 당신이 혼란스럽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최면상태에서 혼란은 위험합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돌아오세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준비가 되어있으면 오른손을 올려주세요."


난 그녀의 말에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셋을 말할 때, 당신은 깨어납니다. 다시 마음의 점을 향해 집중하겠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다른 생각들이 머물고 있다면 모두 비워주세요. 하나, 둘, 셋"


천천히 눈을 떴다.  내 앞에는 승주가 맞은편에 앉아 유심히 날 쳐다보고 있고,  내가 깨어나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예랑씨 괜찮아요? 컨디션이 어때요?"

"좀 어지러워요."

"잠시 누워서 편하게 안정을 취하세요."


난 그녀의 말대로 의자에 다시 누워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가 잘못된 거죠?"

"그 공간에 상자가 있었다고 했죠?"

"네 개가 있었고,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열쇠가 나왔어요."

"그런데, 세 번째에서는 보이지 않았군요?"

"네, 없었어요."

"그럼, 기분은 어땠어요? 처음 무경이를 만난 날이 떠올랐을 때."

"아무렇지 않았아요. 드라마를 보듯이 편하고, 낯설지 않았어요."

"마치, 남의 일처럼?"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해야 하는 거에요? 뭐가 잘못된 거?"

"네 맞아요. 다시 시도해 봐야 해요. 그런데 조금 우려되는 게 있어서.......  각성 반응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빠른데, 잘못하면 뇌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먼저 예랑씨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체크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최면요법은 그 이후에 다시 하는 게 좋겠어요."


난 그녀의 말에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전 가능하면, 다시 해봤으면 좋겠어요. 무경씨를 위해서 시작했지만, 이제 저도 궁금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기억을 못 하는지......"

"알겠어요. 우선, 검사 예약부터 잡아놓을게요. 따로 연락이 갈 거예요."


충분히 안정을 취한 후,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오기 전 뒤돌아보며


"무경씨한테는 아직, 말하지 말아주세요. 꼭 그래야 한다면 내가 직접 얘기할게요."


승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무경의 병실 안.

여전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하라며, 조용히 옆에서 그를 지켜보다가 병원을 나섰다.


스포츠센터에서 저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혼란스러웠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이 그 날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그날 밤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난 다시 그 회색 공간 안에 갇혀 있었다.

답답한 느낌에 빠져나오려 주변을 살펴보는데, 바닥에서  커다란 구멍이 뚫리더니 마치 블랙홀처럼 날 끌어당겼다.


난 겁에 질려 계속 끌려들어 갔고, 어둠에 휩쓸려 한참을 떨어진 후에야 바닥이 보였다.

'털썩' 떨어진 충격에 앉아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눈 앞에 낡은 건물이 보였다.

 

마치 끌려가듯이 천천히 일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버려진 지 오래된 것처럼 낡고, 텅 비어있었다.

 피 비린내........

사방에서 악취가 진동을 해서, 인상을 찡그린 채 주변을 살펴보는데, 그때 '끼익' 건물의 문을 여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쳐다보니, 거구의 남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깨에는 커다란 자루를 맨 채.......


'뚜벅.. 뚜벅.. 뚜벅...' 텅 빈 건물 안에 울려 퍼지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을 낮춰 숨을 곳을 찾았다.

한참을 헤매다가 통로 끝에 열려있는 문을 발견하였고, 그 안으로 들어갔는데, 좁았지만, 다행히 안쪽 문에 걸쇠가 있어 잠글 수 있었다.

나는 가장 구석 안으로 몸을 밀어 넣어 숨죽여 웅크리고 있었다.


남자는 복도에 잠겨있는 문들을 일일이 확인해보더니, 이내, 내가 있는 창고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자가 바닥에 자루를 내려놓더니 뒤돌아 나가버렸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안심하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돌아보니 어떤 나무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신음소리가 났다.

가까이 다가가 뚜껑을 열려는데, 그때, 창고의 문이 부서지며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빛을 등지고 서 있는 남자의 괴기한 모습에 난 겁에 질려 도망을 쳤고, 내 비명을 듣고 남자가 쫓아왔다.

날 쫓던 그에게 따라 잡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헉!!!!"


용수철이 튕기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온몸이 땀으로 뒤덮여 있고, 동공이 풀려 어지러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운 방 안이었고, 난 머리를 감싸 쥐고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방 한쪽 구석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곳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난 기겁을 하며 침대 반대편으로 뛰어갔고, 급한 데로 손에 잡히는 스탠드를 들었다.

날 지켜보던 그가 한 발작 앞으로 나왔는데, 월광에 비친 모습은 전에 보았던 '절망'과 비슷했다. 다만,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넌 뭐야? 저리 가!!!"


겁에 질려 스탠드를 허공에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는 그저 날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가 떠났음을 확인하고, 난 그대로 주저앉았고,  한참을 그대로 멈춰있었다.




8월의 중순에 들어.... 유독 뜨거웠던 여름이 곧 지나갈 것을 기대하며, 무더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덫'은 네이버웹소설 첼린지리그에 '수상한이웃집남자'로 재구성되어 연재 중입니다.

올해는 여러 가지로 저에 새로운 도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되새기며 하는 말. '욕심부리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

아는 드라마 작가님이 1년여의 작업 도중 너무도 힘이 들고, 피폐해져, 때로는 '주인공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경지까지 가려면 얼마나 오랜 공을 들여야 할지 아직 저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계속 정진해야겠죠.... 스스로 자문자답을 해보는 땀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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