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IT 및 네트워킹의 선도기업인 시스코는 2019년 기술지원·서비스 조직을 모두 CX(Customer Experience) 사업부로 통합, 공식적으로 고객 경험 조직을 출범시키며 시스코 제품과 기술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우수한 경험을 얻도록 고객 라이프사이클 전체의 긴밀한 지원을 약속했다.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은 22년 신년사에서 “고객이 혁신 성과 경험하도록 하자”라며 고객과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SK 최태원 회장도 “고객과의 관계가 기업 가치를 결정한다 ”라고 강조하면서 테슬라의 팔로워 수(937만 명) 사례를 예시로 고객과 더 많은 접점에서 관계를 맺는 기업이 미래 현금흐름에서 앞서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포레스터 보고서에 따르면 B2B, B2C 분야 모두에서 지난 5년간 고객 경험 임원의 수가 100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고객 경험, CX란 Customer eXperience의 약어로 기업과 고객 간 접점의 총체적인 흐름을 일컫는데,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구입·사용·수리·폐기·재구매까지의 전체 과정에서 고객이 느끼는 경험과 정서 전부를 대상으로 한다. “ 이향은 LG전자 고객 혁신담당
사실 ‘고객 경험’이라는 워드는 크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IT의 발전으로 인터넷 대중화가 한창이던 2003년 콜롬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번트 슈미트 교수가 자신의 저서 “CRM을 넘어 CEM으로”에서 기본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이후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가 디지털로 대이동, 오프라인의 치열한 생존전략이 대두되는 등 환경적인 요건이 마련되면서 고객 경험이 큰 화두로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기업들부터 난리가 났다. 이제 어느 회사나 ‘고객 경험’이 안 들어가는 부서가 없다고 한다. 고객경험혁신팀, 고객경험마케팅팀, 디지털고객경험팀, 고객 경험 디자인팀…등등 기존에 있던 팀명을 바꾸고 새로 팀을 만들고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B2C는 고객 1명을 잃지만, B2B는 몇 천명의 단체 고객을 잃는다.
사실 B2B 기업들은 B2C보다 CX 측면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상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고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지속되어 온 거래관계가 많을뿐더러, B2C만큼 고객과의 접점이 다양한 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납품 전까지 고객사의 요구사항(납기, 스펙, 견적 등)에 신속, 철저하게 대응하며, 다양한 접대성 행사(세미나, 트립)를 통한 리워드 등에 치중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과 융복합 산업의 발전,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전통적인 먹거리가 흔들리고 다양한 거래관계가 형성되면서 이제 B2B 기업들도 기존 방식으로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특히 B2B 기업들의 매출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수가 소수의 고객사로부터 매출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는데, 이는 B2B의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한번 쌓은 신뢰관계는 크게 깨지는 일이 없지만 만약 틀어진다면 큰 타격을 입는다. B2C는 고객 1명을 잃지만, B2B는 몇천 명의 단체 고객을 잃는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그렇다.
경쟁에 익숙한 앞서가는 B2C 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고객의 요구 사항에 맞춰 인프라 및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오고 있으며,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들을 발굴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고객 접점마다의 이해관계자 파악, 예상되는 고객 행동과 더 나은 경험을 위해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 뭔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심도 깊게 분석, 파악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호텔과 만나는 모든 접점 들(예약, 체크인, 룸서비스 등)을 재분석해 고객의 선호도, 요구사항, 중요도에 근거해 단계별로 재설계한 힐튼호텔이나,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개개인에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외상 어음거래가 일반적인 보수적인 철강 유통시장에서 업계 최초 D2C 플랫폼 구축으로 시장의 판을 새롭게 짠 “스틸 1번가”의 사례처럼 B2B 기업들도 고객의 요구사항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탁월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고객 창출에 매진해야 지속 성장할 수 있다.
CX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편함은 제거하고, 즐거움은 더하는 것”이다
CX를 제대로 하기 위해, 회사 내 본부나 팀을 만들고 전사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드는 그런 거창한 일부터 머릿속에 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제대로 준비하면 좋겠지만 그런 여건이 주어진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결정적으로 고객이 정말 피부로 느끼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CX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편함은 제거하고, 즐거움은 더하는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불편함을 주는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 제거하고, 어떻게 더 편하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처음 상품을 인지하는 출발점, 탐색, 컨택, 협상, 구매 후 사용, 유지관리까지 모든 경로를 세밀하게 그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예를 들어, 기업용 IT 시스템 회사 관점에서 본 고객 여정 지도를 일반적인 순서에 따라 그려보면 크게 하기와 같이 7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신규 시스템 도입 시에는 보통 미팅, 지인 추천, 광고 등을 통해 처음 상품을 인지 후,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효과 등 현재 대비 장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탐색단계로 넘어간다. 해당 상품의 브랜드 홈페이지를 방문해 어떤 솔루션인지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고, 검색사이트에서 다른 제품을 비교 분석, 주변의 추천 등을 받아 후보군을 추린 뒤 우선순위에 따라 전화나 이메일로 문의를 한다.
이후 영업사원과 미팅을 통해 시스템에 대한 상세설명을 듣고 사내 이해 관계자들(구매, 관리팀 등)과의 추가적인 조율, 가격 협상 후 우선 협상자가 추려진다. 다음 최종 결재권자에게 보고 및 승인을 득한 후 구매가 결정되면 시스템 설치가 진행되는 데 적용 초기에는 잦은 문의와 불편사항의 빠른 대응을 위해 전담 기술지원팀이 밀착 지원하고 이후에는 서비스 센터에서 유지,보수를 맡는다. 시스템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제품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인 평가가 이뤄지는데 이 평가를 통해 향후 지속적인 거래관계가 결정되고 또한 추천과 비추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수많은 고객과의 접점에서 만약 “고객이 우리 회사에 대한 정보 탐색을 위해 휴대폰으로 홈페이지에 방문했는데 모바일 최적화된 페이지가 아니어서 불편함을 느낀다”거나, 주말이라 전화 연락이 어려워 이메일로 연락처를 남겼는데 며칠이 지나서야 연락이 온다면 당연히 기분이 나쁠 것이다. 또한 미팅 시 영업사원이 고객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거나,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좋은 회사의 평판이 좋은 솔루션이다”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B2B는 B2C에 비해 복잡하고, 느리고, 이해관계자도 많다. 하지만 거래 규모가 훨씬 크고 안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고객과의 모든 접점과 그 사이의 다양한 상호작용들이 매끄럽고 즐거워야 한다. 고객경험관리가 B2B에서도 중요한 이유다.
또한 구매 후 애프터 세일즈 서비스가 제대로 안되면, 고객은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고 향후 관련 제품을 재구매 시 다른 회사의 제품으로 갈아탈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이런 불만족들이 쌓이게 되면 온, 오프라인에서 안 좋은 WOM(Word of mouth, 입소문)이 금세 퍼지게 되고 결국 탐색 단계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궁극적으로 구매 고려 옵션에부터 제외될 확률이 높다.
결국 모든 고객 경험 여정은 일방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과의 모든 접점이 하나하나 쌓여서 우리의 자산이 되고 모든 경험 여정에서 하나라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고객은 등을 돌린다. 고객의 변심은 무죄다. 사랑도 변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