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이 책을 읽게 된 3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서울 전자 도서관에서 ‘디자인’ 키워드로 찾은 책 중 거의 유일한 디자인에 관한 책이었다는 것. 둘째로 저자의 1995년 독일 연방 디자인 진흥상 수상을 기념해 발간되었다는 것과 그가 사회학자라는 점. 마지막으로 심사위원장이 디터 람스였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건축, 예술, 도시계획, 미술사, 디자이너, 풍경 건축, 생물학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쓴 글과 작가의 글이 발췌 형식으로 담겨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다. 하지만 잘 읽히지 않았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것에는 옮긴이가 이야기한 저자의 독일식 표현 특성으로 인한 번역의 어려움 이상으로 내용의 어려움도 한몫했다. 실제로 번역도 이상했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이란 외적인 모양뿐만 아니라 구조, 형태 등의 계획, 설계와 구상을 뜻한다.
내가 이해한 저자의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사회(풍경, 제도), 사물(구조, 조건), 인간(구성, 경험)의 관계와 방향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형태의 디자인은 외적인 주변 조건을 따른다. 이렇듯 사물들로 세계를 파악하는 인식은 외적 조건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행동을 디자인이라고 불리게 하였다. 다시 말해 디자인은 디자인의 사회적 기능,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저자는 소각해야 할 쓰레기와 박물관에 남겨지는 것을 결정하고 역사를 재단하는 잘못된 인식을 지적했다. 낯선 것에 대한 불편함과 아름다움의 잘못된 기준은 사회를 지배하는 단편적 결정과 설계의 연장에 있다. 이런 규정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삶의 형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회도 삶도 재단할 수 없다. 시간과 환경의 변화는 완벽한 계획을 실패로 만든다. 또한, 어떠한 방법으로도 나머지가 생기는 것을 막지 못한다. 저자는 미의 재단 또한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인용해 목적 없는 합목적성과 취향이 가진 평등한 무게와 다양성으로 경계했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좋은 취향과 그렇지 않은 취향, 칸트의 보편적인 심미성 또한 그 시대적 배경의 인과에 따라 결정된다. 미에 대한 인식론적 해석은 보편성의 타당함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정부의 몇몇 기관이나 정책심사위원회의 논쟁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 구시대의 도구와 제도에 의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선호하는 그림에 있다. 그것은 그들의 목표가 환경이 아니라 미학적인 자연에 머문다는 점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이 말은 디자인의 정의와 대비되는 자연과 풍경이 담고 있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일부 사회적 풍경에 대한 이미지는 획일화된, 미학적인 자연에 기초하고 있다.
나는 이런 표현을 자주 한다. ‘와 그림 같네’. 하지만 내 머릿속 그림이 얼마나 의도된 것인가에 대해 의심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내게 각인된 그림 같은 이미지는 19세기 풍경화가 들이 만든 것이다. 무엇이 풍경이고, 무엇이 이미지인가? 저자는 산책학을 통해 인식과 학문의 목표에 대해 질문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큰 틀 안에서 내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는 ‘도시를 발전시키고 아름답게’ 만들려는 운동이다. 그리고 이는 고유성을 부수고 더 크고 좋아 보이는 것들로 채우는 결과를 만들었다. 전형성의 확장은 고유성과 다양성을 파괴한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들 속에서 일어나는 역사와 장소의 무늬를 등한시하는 개발주의, 깊이 박혀있는 왜곡된 인식과 사회 시스템 들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은 반갑게도 ‘빈자의 미학’과 고 정기용 선생님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익숙한 것에 대한 의심, 낯선 것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