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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flower Aug 31. 2017

애, 쓰지 말아요.

당신의 마음은 소중하니까요. 



장면 하나.

디큐브시티 저 멀리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온 것 같았다. 좌우로 달리던 차들이 멈춰서고 사람들 무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뛸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버스 어플로 도착 시간을 확인했다.


160번 버스가 2분 16초 남았다. 잠시 뒤 신호등에 선 나를 지나쳐 가는 버스를 상상한다. 나는 신호등을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여유 있게 올라탄 버스는 신호등에 걸렸다. 운 좋게 버스에 올라 탄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나는 괜히 뛰어서 더워진 몸에 부채질을 한다.


그래,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최선을 다한 것이 허무하게 끝나기도 하고 낭떠러지밖에 남지 않은 순간에 행운은 온다. 온전히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있는지 떠올려보면 손가락 다섯 개 접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왜 매일같이 애를 쓰면서 살고 있을까?


나는,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애, 쓰는 나, 당신 그리고 우리.

그러나 정말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조차 않는 것이 있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불현듯 내 뒤통수를 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뜬금없는 선물처럼 생기기도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내겐 이것만큼 애쓰는 것도 없다. 아마 관계라는 것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바위처럼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주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쪼개듯이, "고작 이걸로?" 같은 말을 들을 만큼 사소한 것들로도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난다. 그게 아직 두려워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른다.


이것이 문제일까?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기 싫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나'이다. 그냥 배려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의 이야기를 참아가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의 기분과 상황을 배려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 번은 내 20년 지기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내게 친구는 대뜸 부케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2부 시작하는 부분에 축사도 부탁했다. 그리고 청첩장은 우편으로 왔다. 나는 내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남편될 사람을 소개받지도 못했다. 결혼식은 완벽했고 신혼여행 후에 만난 우리의 식사는 내가 샀다. 그리고 그 해 9월, 내 생일에 나는 무료로 나눠주는 1+1 아이스크림 쿠폰을 받았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등짝을 맞을 때까지 이게 잘못된 일인 줄 몰랐다. "걔가 그럴 애가 아닌데...." 라는 말만 반복했다. 당연히 내가 애 쓴만큼 돌려받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애를 쓴 걸까? 


결국 나는 혼자 남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 맞추면 적어도 그 사람이 나를 떠날 확률은 낮아진다. 나 혼자 속상한 것을 참아내면, 그 관계는 무탈하게 유지된다. 나는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힘든 것 쯤이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더라. 




내 편은 우리 집 고양이뿐이다. 바흐흑 고흐흑.




'나'도 나를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면 그가 나를 떠나듯,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도 나를 떠날 수 있다. 내 마음이 어떤지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심리 상담 센터의 상담사 선생님이 내게 해준 첫 번째 이야기가 이것이었다. 감정을 느끼는 첫 번째 단계는 감정의 '인지'인데, 내가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힘들어도 '괜찮아', 속상해도 '괜찮아', 이 정도 견디는 것도 '괜찮아". 선생님은 내가 내 스스로에게 늘 이런 식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힘들거나 속상하다고 이야기해도 그렇게 무디게 넘어갈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내 속의 '나'는 이미 나와의 관계를 포기하고 떠나버린 것 같았다. 



"OO 씨,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혼자 남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물었다. 


선생님이 대답했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OO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아 있어요. 이미." 


창피하게 나는 그 때 조금 울었던 것 같다. 







당신의 마음, 당신에게 쓰세요.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 같은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오전만 해도 나는 버스를 타려고 또 다시 디큐브 시티 앞을 전력 질주했다. 룰루랄라 탄 지하철에선 정거장을 지나쳐 눈물의 복귀를 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니까 마음을 좀 놓고 살자는 다짐을 한 지 겨우 일주일도 안 됐는데 말이다. 


그래도 나는 노력 중이다. 사람들이 내 마음을 똑같이 헤아려주리라는 기대를 조금은 덜어내는 노력. 그것을 바라고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노력. 남의 감정보다 내 감정을 조금 더 명확하게 느끼려는 노력. 글로 쓰니 이미 해낸 것 같지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카톡방에서 내 심장은 쿵 하고 떨어지길 반복한다. 내 말이 실수는 아닐까. 기분은 나쁘지 않을까. 잘못 말했나.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문 자기 검열같은 것이 여전하긴 하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털어낼 줄 알게 된 것 같다. "(물론 네 기분이 상한 건 미안하지만...) 나도 속상하긴 했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주 소중한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조차도 자신을 오로지 신경쓰기에 바쁠 수 있고, 그리고(!) 생각보다 다른 이를 나만큼 헤아리는 데에 서툴다. 그냥 이 사실 자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위하던 나의 감정이 비로소 나를 향하게 되고, 나는 이만큼 멀어졌던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진다. 그 뿐이다. 왜 그 유명한 <어린 왕자>에도 나오지 않는가.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누군가에게 아주 아주 특별해지는 것은 정말 마법같은 일이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마음 씀씀이를 갈아 만든 주스다. 


그러니 정말 우리가 애써야 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우리 각자의 고운 마음씨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쓰는 것. 

어쩌면 시도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는 이 간단한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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