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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flower Apr 08. 2018

꼭 '잘' 해야 할까요

성실한 개미의 변(辯)

"열심히 하는 건 별로 안 중요해. 잘 하는 게 중요하지."



평생을 개미로 살아온 내게 이보다 더 청천벽력같은 얘기가 있었을까.

나는 저 말을 들었을 때 거짓말을 조금 더 보태어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째서인가. 저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잘' 하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즐거운 여름방학의 방학숙제같이,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던 와중 토요일, 우연히 들린 홍대 상상마당에서 만화 <유리가면>을 보게 됐다.

천재소녀 기타지마 마야와 노력파 소녀 히메가와 아유미가 연기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그린 순정만화다. 

어렸을 때는 천재소녀 마야를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마야에게 패배감을 느끼는 아유미한테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열심히'는 무쓸모인가? 그래서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림에 나온 사람이 천재소녀 기타지마 마야다. 흑. 역시 천재소녀가 1권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따흐흑. 출처는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나비 개미, 상처 많은 개미

 나는 길진 않지만 여태까지의 평생을 개미로 살아온 것 같다.  봄이면 봄이라서, 여름이면 여름이라서, 가을이면 가을이라서, 겨울이면 겨울이라서 열심 열심 성실 성실. 어찌 보면 그러려고 노력했다기보단 그게 기본인 줄 알고 그렇게 살아왔다. 컴퓨터를 새로 사면 으레 깔려 있던 기본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 또는 '손발이 고생한다' 같은 얘기를 듣기도 했다. 내가 정말 손해를 보고 사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잠깐이나마 요행을 바랐던 내게 인생은 성실히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혹독하게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인생이 내 뜻대로만 움직였다면 나도 '크게 열심히 안해도 되는데 뭐' 라고 생각하며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진 않았다. 열심히 노력해도 안될 수도 있다는 결과를 수도 없이 받아본 데 대한 반작용이랄까. 어쨌건 그렇기에 왜 그렇게까지 사느냐, 손발이 고생한다 같은 소리는 내 마음에 조금의 파장도 주지 못했다. 


그래, 넌 그렇게 살아라. 난 이렇게 살란다. 


마이웨이가 가능했다. 


'열심히'가 필요없는 세상

 그러나 세상에는 내 생각보다 '열심히'가 필요 없더라.


 오히려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나지 않는 사람이 바보인 듯 했다. 농땡이 피우지 않고 열심히 했어도 옆에서 띵가띵가 놀다가 엇비슷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일은 너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뭐라 변명이라도 하고 싶지만 대체 뭐라고 변명하나. 그 사람들은 내 마음을 살필 이유가 없는 타인인데.  


 그 때쯤부터 자주 위축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의 무기라고 생각했던 '열심 열심', '성실 성실'이 필요없다는 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마저 하지 못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필요없다는 곳에서 내가 대체 뭘 잘할 수 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일희일비는 그 때부터였다. 사수로부터 칭찬 한 마디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다가도, 비판을 들으면 기분이 한도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되돌아보면 칭찬받기 위해 일을 했던 것 같다. 그 필사적인 아둥바둥이 너무 괴로웠다. 뭔가 잘 흘러가는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은 그렇게 의미가 없을까.


성실한 개미의 변(辯)

 그러나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열심 열심, 성실 성실하게 사는 개미 같은 나도 사랑스러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열심 열심, 성실 성실은 결코 배반하진 않는 것 같다. 당장 딴짓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불시에 상사가 모니터를 보더라도 Alt+Tab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나는 3년 간 취직 준비만 했다. 주위의 수많은 '그냥 썼는데 덜컥 붙은', 그야말로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낙담하기도 한 3년이었다.  


 그러나 3년간의 '열심 열심'이 내게 남긴 것들은 값지다. 

 

 우선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만큼 사랑하는 일을 찾았고, 내게 값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걸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해소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걸 견디지 못하는지, 어떤 상황을 힘들어하는지. 


 그게 지금의 나를 훨씬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처음부터 너무 '잘' 했더라면 지나쳤을 지도 모르는 일들이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는 한 달, 두 달 다니다 때려칠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칭찬 대신 회초리가 나 자신을 길게는 더 완벽하게 만들어줄지 모르는 일이다. 


 또 하나 개미의 좋은 점은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성실 성실, 열심 열심 쏟아부으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놀랍게도 괜찮다. 차라리 빠르게 털고 일어날 준비가 된다. 결국 개미로 산다는 것은 나를 더 완벽한 개미로 만들어주거나, 또는 빠르게 다른 길을 안내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나쁘지 않은 길들이다.





그러니, 개미로 살아가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해도 꼭 '잘'해야 할 필요는 없는 듯 싶다.

'잘' 하는 사람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람과 만나면 해결될 일이다.


온 힘을 다해 하루를 열심히 산 것만으로도 버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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