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llflower May 07. 2018

100만원으로 산 우리네 인생

누가 누가 잘 샀나, 블루밍살롱 <가치경매소> 

 <가치경매소>를 처음 열었던 건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수업을 듣기 싫다고 염불을 외던 고등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아이템이었다. 나는 외모, 공부, 자유, 성공, 가족, 건강 등 블루밍살롱의 <가치경매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항목들을 꾸려갔다. 그런데 결과가 좀 의외였다. 


 진행을 하면서 '자유'에 도달했을 때였다. 나는 내가 참여할 수 있다면 100만원을 전부 걸고서라도 '자유'를 갖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도 갖지 않았다. 결국 10만원이라는 헐값에 고1 여자아이에게 팔렸다. 


 내가 물었다. 


 "자유는 왜 안 갖고 싶니?"


 아이들이 오히려 반문했다.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자유롭지 않아요?"


 그러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쯤에는 어른이 되면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어른으로 한 해, 두 해 살수록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는 멀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내겐 여전히 '자유'가 중요했다. 그래서 그 때 못 산 '자유'에 올인을 할 생각으로 블루밍살롱에서 <가치경매소>를 열었다. 그러나 또다시 진행을 맡아 경매에 참여조차 못한 건 슬픈 후일담으로 남겨두자.  







입찰의 종아 울려라! 

 4월 28일 토요일. 2시 '청춘삘-딩'.  블루밍살롱 <가치경매소>의 문이 열렸다.


조촐한 간판. 그러나 이날 600만원이라는 거금이 돌아가는 판이 열렸다고. 

 

 <가치경매소>가 준비한 경매 물품은 총 21개. 이른바 '가치'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 가치 리스트

1. 인정

2. 외모

3. 배움

4. 봉사

5. 정직

6. 건강

7. 관계

8. 직업

9. 평등

10. 자유

11. 안정

12. 권력

13. 돈

14. 신념

15. 자존감

16. 행복

17. 우정

18. 사랑

19. 명예

20. 재미

21. 성장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 경매 참석자들에게 가치들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다. 진행자(본인)의 재량에 따라 랜덤으로 공개됐다. 

- 참가자들은 10만원짜리 10장을 받았다. 총 금액은 100만원. 여기에 대해서는 덧붙일 말이 있다. <가치경매소> 공고에는 1억원이라는 금액이 나갔기 때문이다. 준비 과정에서 구할 수 있는 가짜 지폐에 한계가 있었다는 정도로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다. 


무시무시한 돈.



- 참가자들은 경매가 끝날 때까지 3가지의 가치를 반드시 가져가야 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안 살 수는 없는 법. 

- 경매 입찰 최저가는 10만원, 최고가는 50만원이었다. 

- 그리고 야심찬 규칙. 경매에 입찰하는 사람들은 '할리갈리'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종을 쳐야 했다. 


냉정한 손들.




최고가와 최저가 

 이 날 최저 입찰가는 10만원, 최고 입찰가는 50만원이었다. 50만원의 가격에 입찰된 가치들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자유와 사랑, 그리고 돈이었다.


 <가치경매소>를 열었던 이유였던 '자유'는 블루밍살롱 호스트인 우주가 미친듯이 종을 때려대며 50만원에 득템했다. 우주는 '자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사지 않을 기세였다. 자유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는 질문에 우주는 "무언가 속박당하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랑'은 익명의 참가자가 구매했다. '사랑'에 가장 큰 금액을 지불하며 사가는 이유를 묻자 철학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직업이나 행복이나 다 내 마음대로 노력하면 되는데, 사랑만큼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돈'이라는 가치는 어땠을까. 


 '돈'이라는 가치는 처음에 만들면서부터 걱정했던 가치였다. '돈'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치경매소> 시작 전에 '돈'이나 '권력', '명예'와 같은 가치를 고를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었다. 


 '돈'에 높은 값을 매긴 참가자는 '돈' 자체가 목적이라서 돈을 고른 건 아니라고 했다.  그 대신 '돈'을 별 거 아닌 것으로 볼 수 있을 때 조금 더 커다란 것들을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 말이 내겐 상당히 와닿았다. 한 때 돈이 너무나도 '별 것'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에 나는 내 인생을 '고지서 인생'이라고도 불렀었다. 10일엔 가스비, 20일엔 관리비, 28일엔 보험료. 그 돈에 치이느라 하고 싶었던 꿈도 내려놓을 뻔 했다. '돈'에서 어느 정도 놓여난 지금은 다른 것들을 보는 여유가 생겼다. 목 끝까지 물이 찰박거리는 물 속에서 벗어나 뭍에 다다른 느낌이랄까. '돈'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 이유는 아마 이것이었으리라. 


 반면 정직이나 신념, 봉사라는 가치는 인기가 없었다. 경매가 마무리되고 뒷얘기를 나누는 시간에 나는 '신념'을 조용히 빼앗아왔다. 내겐 자유만큼 신념 있는 삶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유'는 못 얻었지만 '신념'은 얻을 수 있었다. 



성장하지 않아도 될까

 이 날 참가자들이 가장 탐냈던 가치가 있다면 뭐니뭐니 해도 '성장'이 아닐까 싶다. "성장을 가진 게 부러웠다"는 말까지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성장하는 삶'과 '성장하지 않는 삶'. 


 이 두 가지 삶은 성공하는 삶이냐 실패하는 삶이냐를 가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아주 많이 실패한 사람의 삶일지언정 성장하는 삶일 수 있고, 성공만 한 사람의 삶이 오히려 성장하지 않는 삶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떤 방향으로 결정지어지든 내가 전날의 나보다 한 뼘 자라나게 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좋은 일이 아닐까. 새싹같은 걸 심어놓고 자라나고 꽃 피우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이 유독 뿌듯하고 기쁘듯이 말이다.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무적의 단어. 모두가 값지다고 생각한 이유는 여기에 있던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가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고 언제까지 도전해야 하냐는 의견도 나왔다. 2030세대가 '자기계발서 세대'라 자기를 계발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는 모 학자의 의견에 십분 동의하는 나는 이 의견에도 공감을 표했다. 성장하지 않고 이대로 머무는 삶도 평화롭고 안온하지 않을까. 문득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비성장에 대한 욕구'를 생각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블루밍살롱의 중요한 가치 '자존감'은 40만원에 아깝게 팔렸다. 그러나 이 '자존감'을 팔기에 앞서 각자에게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가 정의하는 바는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 행복했던 것이 있다면 이 날 <가치경매소>에 찾아온 사람들은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가 중요하다는 것은 무척 당연하면서도 사소하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사실이다.  


50만원에 팔렸어야 했는데.. 아까웠던 '자존감' 


 어쩌면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앞다투어 경매에 나서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인생 한켠에 존재하는 가치니까 말이다. 


 끝으로 다음 블루밍살롱 <오픈살롱>에 또 다른 참가자들이 오길 기대하며 <가치경매소> 참가자들의 소감 몇 마디를 덧붙여 본다. 




 평소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기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내 현재를 되돌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내가 어떨지 궁금할 수 있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마감] 1억원으로 '인생'을 구매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