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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ne Mar 30. 2017

난 너의 베이스캠프

태어나줘서 고마워.

1.

아침 7시 조금 지나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긴 밤 사이 운이 좋으면 4시간, 운이 나쁘면 1시간마다 발버둥 치는 아기를, 이젠 '포기하고' 안아올려야 할 시간이다. 남들은 100일 때쯤이면 이른바 '통잠'을 잔다던데. 우리 아기는 왜...

 아기 뒤척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다보면 30분 이상 눈을 붙이기 힘들다. 밤에 자다 깨는 아기를 내버려두면 다시 재우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깼다 싶으면 달려가야 한다. 육아서적에서는 완전히 자지러지는 울음이 아닌 이상 아기 혼자 우는  3~5분 정도 우는 건 괜찮다고 했다.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너무 조급히 굴지 말라고 했다. 그 사이에 다시 스스로 잠든다고 했다. 하지만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기 우는 소리를 계속 내보낼 수가 없다. 감수하고 몇 번 그대로 울려보기도 했지만 우리 아기는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기 우는 소리는 엄마에게 고통스럽다. 하지만 30분 정도 남짓 눈을 붙였다가 다시 떼는 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아기 울음소리가 커진다. 오 안 돼, 아가야, 엄마가 금방 갈게...


 빠르면 백일, 늦으면 돌을 지나면 대다수는 밤에 잘 잔다. 하지만 아기가 밤에 잘 자도 많은 엄마들은 불면의 밤이 지속된다고 한다. 몇 개월 이상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패턴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다. 아기 우는 환청에 깨기도 하고, 아기가 뒤척이면 또 놀라서 달려가기도 하고, 날이 추우면 새벽에 이불을 걷어찼을까봐, 날이 더우면 땀띠가 올라올까 걱정이 되어 또 달려간다.  

 그렇게 아침마다 몇 개월동안 누적된 수면부족을 안고 암막 커텐을 걷는다. 머리 속이 뿌옇고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리며, 그저 바닥에 드러눕고 싶다. 하지만 아기를 들어올리러 아기침대로 가면, 칭얼대던 아기가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배시시 웃는다. 그 웃음. 살짝 얼굴을 찡그리는 듯, 통통한 볼을 접으며 눈을 가늘게 감는 그 웃음에 잠이 확 깨는 것이다. 그러면, 육체적 피로는 여전할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위로가 된다. 정말로 힘들 땐 그 웃음이 꼭 어둠 속 등불같았던 적도 있다. 그 웃음을 보기 위해 긴 밤을 보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2.

등불, 이라는 단어가 참 아이러니하다. 내 팔뚝만한 아기가, 나에게 매달려 생존하는 작은 생명이 내게 무언가가 되어준다는 것이. 


3.

아기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자리를 비워야 할 때가 있다. 2개월이 갓 지났을 때, 한번은 길이 막혀서 수유시간을 놓친 적이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집에 뛰어들어가니 아기는 눈물자국이 얼굴에 가득한 채, 축 늘어져 안겨있었다. 그러던 아기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볼을 씰룩이며 웃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배고파서 지친 그 어린 아기가 내게 먼저 웃어줬다. 엄마가 미안해, 늦어서 미안해, 널 두고 나가서 미안해, 웃어줘서 고마워, 엄마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나는 아기를 받아들고 안고선 몇 번을 중얼거리면서 울었다.


아기를 키우다보면 모든 순간이 각별하기 때문에 오히려 순간 순간의 기억이 밀려나가곤한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어제와 다른 몸짓을 보이는 아기를 바라보다보면 어제 어땠는지, 그저께는 얼마나 무거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 때 웃어줬던 아기의 얼굴만큼은 오래도록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넌 나를 구원하는구나. 


4.

100일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유를 먹이고 잠을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줬다. 이제 제법 나의 목소리와 몸짓에 반응도 하고, 모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팔다리를 허우적댄다. 팔다리가 포동포동 살이 올라, 안아올릴때마다 허리가 아프다. 많이 컸네. 


넌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나와 함께 할텐데, 

뒤집고, 앉고, 컵을 잡고 마시고, 숟가락을 들고 먹고, 걸어다니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남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웅얼거리고, 내 다리를 잡고 늘어지고, 나와 실랑이를 하고, 나에게 혼나고, 

그렇게 내 곁에 착 붙어서, 내가 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겠지.

나는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너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줄거야. 

조금씩 발을 내딛었다가 돌아와서 안기고, 다시 발을 내딛고, 그렇게 나와 멀어지는 법을 배우겠지.


그러던 네가 언젠가는 내 앞에서 방문을 닫겠지.

농담처럼 가족들은 일년에 가끔봐야 사이가 좋아진다며 낄낄대겠지.

나이드신 분을 어떻게 바꾸겠냐며 나를 포기하겠지.


내 가슴팍을 부여잡고 젖을 쪽쪽 빨고 있는 너를 보며 오늘도 아득한 어느 날의 슬픔을 생각한단다.

그 때가 되어도, 네가 필요 없다며 손사리쳐도, 난 너의 베이스캠프인 채로 널 기다리고 있을거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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