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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rette Dec 13. 2019

2008 일본 자전거 노숙 일주 #4

일본을 자전거로 관통하던, 그 넷째 날.

고생끝에 낙이 오나 싶더니 다시 고생.



오늘 여행기는 조금 정신이 없습니다. 이날 여행도 정신이 없었다죠.



모기가 싫어 침낭을 덮으면 더워서 땀이 나고,

침낭을 제끼면 땀냄새 맡고 모기가 덮치는 잠못이룰 상황 속에서

더 이상 못참겠습니다, 자리를 뜨기로 결심합니다.

달리다가 로손에 들러봅니다.

2시 반이라...얼마 자지도 못했군요.

피곤하고 엉덩이도 쑤시고 그렇습니다.

배고파서 어제 밤 사둔 아침식사용 벤또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합니다.

흔들려서 좀 뒤섞여 있어도 맛이 있군요.

그나저나 너무 잠이 쏟아집니다.

다른 장소라도 찾아서 자야할 것 같습니다.

슈난 시내를 달리다가, 슈난 그린 스포츠 파크라는 공원을 찾았습니다.


그나저나 일본의 밤길은 너무 어두워요.

안에 조명하나 없어서 꽤나 무섭습니다.

그래도 대충 돌벤치를 찾아서 눕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순식간에 잠들었습니다.



[오늘의 노숙]

슈난 그린 스포츠 파크

노숙지수 : 4

장점 : 시원하고, 모기 없고. 씻을 수도 있고.

          사람없고 조용. 돌벤치가 널찍하고 시원.

단점 : 벤치가 적고, 밤에 어두워 무서울지도.

메모 : 슈난은 노숙할만한 도시가 못됨. 공원들 상태가 다 안좋음.

          만약 머물게 된다면 필히 여기서.



잘 잤습니다.

역시 일본답게 여기저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침운동중이시네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씻고 출발합니다.


사진 상으론 날이 흐린 것 같지만 실제론 매우 더웠습니다.

습도가 높아요.


오늘도 업힐은 계속됩니다.

적절히 끌바를 활용해서 올라가야죠.


그리고 올라가는 길에 많은 여행기들에서 봐왔던 독특한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 같진 않아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나요?

휴, 드디어 오르막이 끝났습니다.

업힐 후에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일품입니다.

멋진 풍경에 녹아들려고 해보지만 쉽진 않네요. ㅎㅎ


그나저나 팔의 상처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신나게 다운힐을 내려온 다음에,

병원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 거립니다.

병원 입구입니다.

일본 병원까지 오게 될 줄이야 ㅎㅎ

과감하게 이국의 병원에 들어서는 이런 자신감은 여행자 보험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한산합니다.

간단히 접수를 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역시나 자판기뿐이로군요.

병원인데 급수대 하나 없다니...


그나저나 굉장히 친절합니다.

직원분인지 의사분인지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일일이 다 설명해가시면서

증상에 대해서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국내 여행자 보험 적용 여부는 여기서 확인이 안되므로, 영수증을 떼주신다고 합니다.

접수가 끝나고, 차례가 올때까지 디카와 mp3를 충전합니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입니다.

모두 치료하고 나니, 무려 4000엔이 넘는 치료비가 드는군요. 와우

그래도 보험처리 될 것을 믿고 눈물을 머금고 영수증을 챙깁니다.

결국 한국 와서야 받았지만요.


치료도 받았으니, 다시 신나게 달려봅니다.

앗, 저 물은?!

후다닥 내려가봅니다.

정말 맑고 깨끗합니다.


마치 원령공주에서 본 듯한 깊은 숲이네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킵니다.

지금 돌이켜보자면 사실 위생적으로 별로 좋진 못한데, 그래도 이 때는 정말 시원하고 상쾌했었어요. 

그리고 물장난치면서 휴식을 취합니다.

이와쿠니로 가는 2번 국도, 혹시라도 이런 풍경을 마주치신다면

주저말고 계곡으로 내려가시길.

다운힐을 다 내려온 후, 그 곳이 그리워 다시 뒤돌아봅니다.

정말 이 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운힐'로 친구와 서로 명명할만큼

정말 좋았어요.

이 하천을 따라 가다보면

점차 강이 되어가면서, 그 고즈넉함을 더합니다.

당장 내려가서 물놀이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 나오네요.


이런 멋진 풍경들을 뒤로하고,

이와쿠니로 향합니다.


그리고 근처 맥도날드에 들러 점심을 먹습니다.

무려 610엔짜리 빅맥세트.

하지만 리필이 되지 않는 콜라는 여전히 맘에 안드는군요.

(이 때는 한국 맥도날드가 콜라 리필이 되던 시기였어요.)


이렇게 간단하게 점심만 먹고 이와쿠니를 벗어납니다.

이제와서야 드리는 말씀이지만, 사실 이와쿠니는 이렇게 그냥 훌쩍 지나갈 도시는 아니구요.

유명한 목조 다리인 킨타이교를 꼭 가보셔야 합니다.

제가 지나친 길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있었는데, 몇 년 뒤에 생각하니 아쉽더라구요.

역시 여행은 아는만큼 보고 즐길 수 있나봅니다.



높은 산을 넘고나니 바로 바닷가입니다.


거참 갑자기 바뀐 풍경이 신기하군요.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식수대가 마트에 있군요.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달려봅니다.

왠지 저 섬을 바라본 순간 필이 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일본 3대 절경이라 꼽히는 미야지마일까요?

그러기엔 그 유명한 상징물이 보이지 않는데 말이죠.

한참을 달려서 보이는 저것은!

미야지마 맞군요. 의외로 섬이 커서 몰랐어요.


저기 멀리 보이는 히로시마에서 오늘 밤 유숙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미야지마 관광부터 하고 가야죠.

왕복표에 자전거 싣는 가격까지 꽤나 비쌌지만

이미 떨리는 마음에 이정도 지출은 거뜬합니다.


페리는 이렇게 꿈과 희망을 싣고 나아갑니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군요.

사슴들이 저를 반겨줍니다.

사람이 익숙해서 그런지 아주 표정들이 권태롭더군요.

하긴, 이 섬은 사슴이 주인입지요.

가장 먼저 이 섬의 자랑인, 오도리이를 찾아갑니다.

큰 도리이라는 뜻이지요.

크고 붉습니다.

인상이 그랬어요.

신도의 신자가 아닌 이상, 그 이상의 감동을 느끼기는 힘들죠.


운이 좋게도, 도리이의 기둥을 직접 만져볼 수 있을 정도의 썰물이었습니다.

타이밍 좋았죠.

실제 나무라는게 더욱 신기할 따름입니다.

잠시 감상해보시겠습니다.

ㅎㅎ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마지막 사진은 선착장에 달려 있던 사진을 찍은 사진입니다.

밀물 때는 마치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스쿠시마 신사입니다.

좀 늦게 와서 그런지 입장이 불가능하더군요.

아쉬웠지만 돈을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애써 위로해봅니다.

그래도 다음엔 꼭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물 위를 걷는 느낌을 누릴 수 있게 해보이겠노라 다짐합니다.

교토 같은 곳이 아니면 의외로 보기 힘든 목탑입니다.

뭐, 아무리 명승지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요.

마을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신사의 뒷모습이 보이는군요.

규모가 상당합니다.

언덕 위에 있는 이 절도 무언가 내력이 있어 보이지만

이미 늦어서 입장은 불가합니다.

배 시간을 기다리며, 사슴들과 사진을 찍어봅니다.

반기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것이

꽤나 거만하군요. 그래도 귀엽습니다.

미야지마를 떠나고 있습니다.

돈이 아깝지 않았어요.

좋은 시간 보내고 갑니다.

어둡습니다.

빨리 히로시마에 도착해야할텐데요.


역시나, 어두워서 그런지

신나게 달리고 있던 도로가 어느샌가 자전거가 지나갈 수 없는 도로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주변에 있을 법한 자전거 도로를 찾아 우회를 시도했습니다만

어두워서 그런지, 잘 파악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여기저기 헤매다가 산 초입에 위치한 공동묘지까지 이르기도 했어요.
무서워서 다시 뒤돌아 나옵니다.

그리고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올라온 길과는 또 다르더군요.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합니다.

낮이라면 헤매지도 않겠지만,

밤이라 달리고 있던 2번 국도도 보이지 않아 쉽지 않았어요.


결심합니다.

가끔 차들이 올라오는 도로.

그 길을 따라 내려가도록 합니다.

그렇게 내려가다보면 큰 도로와 마주치게 되겠죠.

한참을 내려와서 만난 세븐 일레븐!

너무 반갑습니다.

역시 인간에겐 자연보단 문명이 친숙하지요.

길을 물어보니 편의점에서 왼쪽으로 가다보면 큰 도로랑 만나는데

그 도로가 바로 2번 국도라고 합니다.


2번 국도?

분명히 2번 국도에서 헤매다가

오른쪽으로 향한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저쪽 방향으로 가면 2번 국도가 나올 수 있을까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지도를 꺼내 찾아봅니다.

아, 2번 국도가 2개로 갈라졌었군요.

우리가 헤매기 시작한 곳이 아마 바이패스가 한창 접어들고 나서였을거에요.
애시당초 자전거가 갈 수 없는 길을 신나게 달렸던 것이죠.

그리고 중간에 빠지는 길을 만나게 되어, 산을 타고 바닷가쪽으로 내려왔나 봅니다.


다시 만나는 2번 국도는 해안에 가까운 도로지요.

도시가 보입니다.

제대로 히로시마에 온 듯 싶어요.

산 위쪽으로 올라가는 2번 국도는 자동차 전용이니까

왠만하면 처음부터 아래쪽 2번 국도로 오도록합시다.

그나마 대도시라 밤길이 밝은게 다행입니다.

물어물어 평화공원에 향합니다.

히로시마에선 '겐파쿠도무'로 묻는 것이 더 확실하더군요.

결국 도착했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이미 선배님들이 자리를 선점하고 계시군요.


씻고 자도록 합시다.

밤놀이 하는 젊은이들이 시끄럽게 굴어도

쏟아지는 잠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나를 이끄시는 분께 감사를 드리면서 잠이 듭니다.



슈난 → 히로시마

Distance - 110.91km

Average Speed - 14.2km/h

Riding Time - 7:47:23

Max Speed -  40.2km/h



[오늘의 노숙]

히로시마 평화공원

노숙지수 : 3

장점 : 넓고 시원, 수많은 벤치, 많은 장애인 화장실

단점 : 시끌시끌하고 곤란한 사건 발생할 가능성.

          옆구리 시림, 좋은 자리는 선객이 있을 수도.

메모 : 늦게 도착하면 아주 곤란하면서도 난감한 사건을 겪을 수 있어요.

          씻으려고 장애인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잠겨 있었다죠.

          그래서 다른 곳에서 씻고 돌아와보니

          이상야릇한 남녀의 신음소리가 들려서,

          그저 한숨을 내쉬며 멀리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좀 조용해진다 싶더니 조용히 문을 열면서 두 남녀가 나와

          두리번 거리다가 재빠르게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어요.

          역시 일본이라는 생각이 드는 평화공원.

          그 외에도 커플이 많아서 꽤나 눈꼴 시린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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