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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rette Jul 07. 2021

2008 일본 자전거 노숙 일주 #10

일본을 자전거로 관통하던, 그 열째 날.

나름은 호화롭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합니다.
친구의 여행자금이 다 떨어져서, 빨리 오사카에 있다는 우리은행에 들러야 합니다.
다행히도 전날 밤 아팠던 무릎은 괜찮네요.

달리다가 보니, 저 멀리 거대한 다리가 보입니다.

세계 최장 현수교라고 하는, '아카시해협대교'입니다.


너무 멋있어서 자꾸 찍어봅니다.

저런 다리 위를 라이딩하면 정말 기분 최고일 텐데 말이죠.

정말 이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기술이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베 시에 진입했습니다.

노면이 고르지 못해 자전거가 쿵덕쿵덕 춤을 추는군요.

마치 한국에 온 듯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슬슬 사람들이 교통신호를 잘 안 지키기도 하고,

클랙슨 소리까지 들어봅니다.

역시 간사이인가요.

잠시 족탕에서 쉬었다가 갑니다.

뜨거운 족탕에 있으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요.

할머니들과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출발합니다.

스포츠 드링크 페트병이 100엔이라니!

아리가또를 연신 외치며 뽑아 먹습니다.

오사카를 향해서


고베의 고가도로를 보고 있노라면

고베의 대지진이 생각납니다.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지진의 공포가, 새삼 살아납니다.

저 길고 거대한 도로가 쓰러질 정도라면 엄청나지요.


생각해보니 여행하고 있을 땐 약한 지진이라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혹은 일본스러움을 느끼지 못함에 아쉬워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고베 시내는 그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고베의 중심이라는 산노미야역에 이르러

아직 11시도 되지 않았지만 너무 배고파서 쉬기로 합니다.

쭉쭉 뻗은 빌딩,

세련된 빌딩,

그리고 깔끔한 거리가 고베의 이미지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상가는 이렇게 그늘져 있어서

무더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행할 수 있게 했군요.

그래야 매출도 오르겠죠.

근처 맥도날드에서 한 두어 시간 쉰 다음에,

고베는 별로 볼 거 없다는 판단 하에 오사카로 출발하기로 합니다.

노상 창고인가요.

민숭민숭하게 평평한 노면은 주행은 쉬워도

왠지 재미가 없군요.


그러다 갑자기 기어도 없는 주제에 우리를 제치고 가는 어린애가 있었습니다.

쓸데없이 자존심이 상해서, 열심히 페달을 밟아 추월해버립니다.

그리고 친구랑 마주 보면서 웃습니다.


너무 유치한 짓이었지만, 이런 소소한 재미가 여행을 살려주는 포인트라 할 수 있죠.

강물로 뛰어들고만 싶은 날씨.

밥값보다 더 많이 나간다던 음료수 값.

다른 여행기들에서처럼, 정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사카부 오사카시 진입!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다리만 건너면 본격적으로 오사카란 말입니다.

하지만 지도와 여행 가이드북을 제외하면 오사카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일단 친구의 여행자금을 송금받기 위해서,

분명히 가이드북에 떡하니 소개되어있는 우리은행 오사카 점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우선 오사카 역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일본의 웬만한 도시의 중심은 역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관광안내소 따위가 있겠지요.

심오한 건물이라고, 신기하게 느꼈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덧 돌이켜보니 저 건물 전망대를 오사카 갈 때마다 가게 되더군요.

오사카 시내를 내려다보는 야경이 훌륭한 곳입니다.

오사카 역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야 가이드북에서 본 선플라자 호텔로 정해뒀으니 방향 물어보고 출발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은행입니다.

아무리 공중전화로 물어봐도 모른다고, 없다고 하는군요.

결국 도쿄 우리은행에까지 전화해서 알아냈습니다.


오카사에 있는 건 외환은행뿐.

또다시 전화해서 위치를 메모하고, 이젠 숙소로 출발하기로 합니다.

가이드북이 저를 마음껏 낚는군요.

시간은 오후 6시를 넘어가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합니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엄청난 화이트칼라의 물결입니다.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도 숙소에 빨리 도착해서 짐을 풀어야 하니까,

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열심히 달립니다.


숙소인 선플라자 호텔은 매우 저렴해서, 젤 비싼 더블 화실밖에 없었지만

고작 3000엔 밖에 안 합니다. 두 명 합쳐서.


아코의 료칸을 생각해보면...에휴

비록 일용직 노동자들의 저렴한 숙소이긴 해도

따뜻하게 샤워할 수 있고 시원하게 잘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방 상태도 나름 괜찮아요. 숙소에서 잠만 자면 되니까요.


이때의 인연이 이어져 여기 또한 자주 찾는 숙소가 되었네요. 가격과 위치가 깡패입니다.


식사하러 도톤보리로 향합니다.

숙소 바로 옆에 이렇게 전철역과 지하철역이 있어서 좋군요.

괜히 추천하는 곳이 아닌가 봅니다.

저희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고수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죠.

초보 노숙자는 경의를 품은 채 지나갑니다.

가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금룡라멘집


사진으로만 보던 도톤보리를 내 발로 밟게 되다니!

감격스럽습니다.

인기 있는 애니의 ost가 흘러나오고

살아있는 대게 간판이 꿈틀거리는 이곳.

도톤보리의 마스코트, 구리코맨

부끄럽지만 포즈를 취해봅니다. 

본 적 없던 거리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막 상경한 촌뜨기처럼, 이리저리 둘러보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불야성이에요.

오사카에서 맛보는 타코야끼는 참 쫄깃하고 맛있었네요.

귀여운 마인부우도 뽑아보려 했으나 실패!

킨류라멘이 또 보이는군요. 여기가 본점이었던가요

하지만 왠지 다른 게 먹고 싶어 집니다.

그래서 오사카 하면 떠오르는 오코노미야끼를 먹기 위해서 도착한 이곳!

이미 수많은 젓가락이 휩쓸고 지나간 철판입니다.


친절한 한국어 설명으로 유혹하는군요.

당연히 디럭스를 시켜야겠는데요.

"나마비루모 오네가이시마스"

캬~얼마나 개운하던지.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떠들 수 있게,

적당히 왁자지껄하면서도 귀에 거슬리진 않았다죠.

헛, 정신 차리고 사진을 찍으니 이미 오코노미야끼는 반토막이 되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위장을 달래주기 위해,

야키소바도 먹습니다.


그리고 계산해보니, 맙소사 하루 밤에 4000엔이 날아갔네요.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고생만 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요.

돌아오는 길에 만난 오사카 성.

다음 날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못 보았네요.

언젠가는 방문하게 될 거라고, 그때도 생각했었던 대로 오사카는 여러 번 오게 되더라고요.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라도 숙소로 돌아가야죠.


도톤보리로 올 땐 150엔이었지만 다시 숙소로 갈 땐 120엔입니다.

회사의 차이인가요. 같은 역에서 같은 구간을 탔지만 300원이 차이 나는 셈입니다.

정말 이해가 불가능한 요금 책정이군요.

여성 전용차량도 있군요. 신기한데요.

역시 일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옵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면 되고,

그저 알코올의 기운에 포만감을 느끼면서 잠에 빠져듭니다.





아카시 → 오사카

Distance - 67.41km

Average Speed - 13.9km/h

Riding Time - 4:59:23

Max Speed - 35.3km/h




[오늘의 숙박]


JR 신이마미야 역 근처 선플라자 호텔

사진은 2013년 여행 때 찍은 이미지.


숙박지수 : 4

장점 : 싸다. 깨끗한 편이었다. 교통도 편리하고. 

단점 : 돈 넉넉한 분들은 굳이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 숙소 자체에 낭만은 없다.

메모 : 주변지역이 '우범지역'이라 불리는 곳이긴 하나, 역 바로 옆 이 거리는 치안상 나쁜 곳은 아니다.

         그저 뭐랄까, 자주 씻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거하는 곳이라 그런 것일 뿐.

         색안경 끼지 말고 바라본다면 오히려 정감 있지 않을까 한다.

         화려한 도톤보리의 간판만이 일본이 아니다.

         하룻밤 묵어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기에 강추하는 곳이다.

  

       


첨언하자면, 이 글을 쓰는 지금 - 먼 훗날에 돌이켜보니, 이곳에 머물지 않아도 다른 좋은 숙소나 게스트하우스 많아졌으니 굳이 이곳을 선택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다만 가격과 위치의 장점은 여전히 다른 숙소가 따라오기 힘든 곳 중 하나기도 하다. 바로 옆이 신이마미야역(난카이, JR), 동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도부츠엔마에 역(오사카 메트로)이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매우 저렴한 물가를 자랑하는 타마데 마트도 있으니, 정말 숙소에 돈 안 들이고 여행만 다니겠다 싶은 분들에게는 지금도 강추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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