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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May 18. 2016

긴 여정의 마무리

제주 농가주택 고치기 | 오래된 집에 머물다.

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길었던 우리의 첫 여행의 마무리를 서로에게 남긴 편지로 대신합니다.




J에게


 J. 길고도 짧았던, 힘들고도 행복했던 우리의 첫 여행이 이제 마무리되었어. 지난 일 년 동안의 일들을 이렇게 한 데 모아 책으로 엮고 보니, 이제 정말 우리의 첫 여행이 마무리되는 느낌이야. 길었던 공사를 끝내고, 우리가 만든 이 공간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 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 때문인지, 영- 마무리의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 책이 우리의 첫 모험의 마침표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


 처음 당신을 만났던 때가 생각나. 무얼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고민하던 20대 후반의 남자였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선 예전부터 오랜 시간을 고민해온 사람 같았어.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깊어 보이는 눈이 참 마음에 들었어. 당신이라면 꽤나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인생을 함께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었어.


 J. 당신이 100년이 다 되어 허물어져가는 오래된 옛집을 구했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집을 나와 함께 고쳐보자고 얘기했을 때 말이야. 사실 나, 별로 고민하지 않았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떤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 당신에게. 모두들 힘들 거라고 포기하라고 했지만, 나는 왠지 청개구리 기질과 쓸데없는 고집이 있거든.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 고집과 믿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 참 멋진 공간을 만들어낸 것 같아. 아마도 나는, 당신 없이 혼자였더라면 내 인생에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을 해낸 것 같아. 참 고마워. 아무나 할 수 없는 멋진 일을 해볼 수 있게 해줘서.


 사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 공간을 만들어낸 일은 내 인생 계획이나 목표나 꿈에 없었던, 얼떨결에 하게 된 일이라고 생각했어. 운이 좋아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 정말 얼떨결에 말이야. 그런데 기억나? 며칠 전 우리 집에 혼자 다녀간 남자 손님 말이야. 독일에서 음악을 배워 작곡을 하고 있다던 그 사람 말이야. 그 손님이 이런 말을 했잖아.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언가를 통해 표현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있고요. 지금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음악이니까요. 두 분 이야기를 보고, 두 분이 하고 싶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 공간 곳곳에 표현해두셨구나. 꼭 한 번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 얘기를 듣고 깨달았어. 나,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해낸 거란 걸 말이야. 늘 창작에 대한 욕구가 있었어. 글을 쓴다거나, 사진을 찍는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무언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리고 우린 이 공간에 당신과 나의 이야기들을 담아내었어. 그래서 참 재미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 춥고, 덥고, 힘든 일들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우린 또 다른 방법으로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해나가겠지?

늘 고맙고, 사랑해.

이만 총총.


2015년 코끝에 겨울. 다비가









다비에게


 지난 1년간 힘들다고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어줘서 참 다행이라 생각해. 처음에는 나도 우리가 다 해낼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 그러다 추운 겨울 어느 날엔가, 그토록 잠이 많은 다비 네가 어서 일하러 가자고 날 깨웠던 적이 있었지. 나는 그때쯤, 너도 이제 마음을 굳게 먹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그 후로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어. 우리가 할 수 있겠구나.


 돌아보면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닌데, 꽤나 오래된 일처럼 느껴져. 아마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너를 만난 이후 나의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것 같아. 이러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폭삭 늙어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된다. 그래도 매일매일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쁘진 않아. 그리고 너는 나보다 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지. 때론 그런 점이 어이없긴 하지만 그런 점이 너답고 좋아. 나도 그런 모습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우린 늘 하루가 끝날 때쯤엔 그렇게 피곤한가 봐.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일은 자유롭게 살려고 고민하고 그 와중에 시작하게 된 일이지만, 어쩌면 지금 하는 일이 오히려 자유를 구속하고 더 얽매이게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유로움은 뭘 더 갖고 혹은 비움에서 오는 느낌만은 아닌 것 같아. 우리가 가진 것들을 그대로 누리고, 때론 사람들과 나누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사는 것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의 다음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계속해서 나는 나의 느낌대로, 너는 너의 느낌대로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진동을 준다면 그야말로 짜릿하겠지. 오늘 우리가 하는 일들이 누가 알든 모르든,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전해지고 영향을 준다면, 우리가 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옆에서 지금처럼의 관심과 사랑으로 자유로운 하루를 살자.


사랑한다.

늘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로운 인생을.


-겨울이지만 아직 문을 다 열어 놓고 누워서 천정을 바라볼 수 있는 2015년. Jay







오래된 집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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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서쪽 조용한 마을 모슬포에 작고, 낮은 오래된 집. '게스트하우스 활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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