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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Jul 26. 2016

내가 애정 하는 제주의 곳곳

바다와 숲길, 작은 섬, 폐교, 계곡과 절벽, 오름, 녹차밭. 

내가 애정 하는 제주의 곳곳과 그에 대한 단상들입니다.



박수기정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작고 조용하고 평온해서 사랑스러웠던 이 마을은 이제 완벽한(?) 관광지로 변해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육지에서 내려와 민박집을 하면서 먹고살고 있는 형편이라.. 남 탓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마을은 사라지고, 관광지만 남은 대평리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J와 함께 울분을 토로하며 포구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아... 그래..... ' 

감탄이 나왔다. 바다는 변하지 않았더라. 깎아지른 박수기정의 모습도, 새하얗게 일렁이는 파도도 편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주었다. 너무도 고맙고, 미안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안덕계곡

: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법


               

  대평리 마을 뒤쪽으로 군산을 넘어 나오면, 안덕계곡이 나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안덕계곡에 발이나 담그고 가자! 해서 계곡 길로 들어섰다. 한낮 땡볕의 더운 공기가 계곡에 가까워질수록 선선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 에어컨이 없이도 우린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는데 말이다. 

  계곡은 물이 엄청 맑지도 않고, 엄청 차갑지도 않지만. 그늘에 앉아 발 담그고 하염없이 앉아있기에 딱 좋다. 사람도 바글거리지 않는다. 다들 조용조용히 논다. 다음번에는 꼭 수박 한 통 사서 돗자리 가지고 가서 낮잠 자야지. 생각했다. 



가파도

: 바다로 가는 미끄럼틀       


        

  섬에는 바다로 가는 커다란 미끄럼틀이 있었다. 바다색의 커다란 미끄럼틀은 분명히 바다로 향해있었다. 나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한 걸음에 미끄럼틀로 달려갔다. 커다란 미끄럼틀에 앉아 나는 이대로 주르륵- 미끄럼틀을 타고 흘러내려 바다에 풍덩-! 하고 빠지고픈 유혹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내 곧 나는 겁을 먹었다. 옷이 젖은 채로 돌아다닐 용기도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여름이면 이 미끄럼틀을 타고 바다로 풍덩 들어가 ‘꺄르륵-’ 웃으며 신나게 놀 섬 아이들을 상상했다. 그러니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자연 놀이터인가! 



가파도

: 누릇누릇 익어가는 보리밭      


         

  5월의 가파도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4월의 가파도는 푸릇푸릇 생동감 넘치는 청보리로 가득해, 온 섬이 계절 봄 그 자체로 활기가 넘쳤다면, 5월의 가파도는 누릇누릇 익어가는 보리밭 덕으로 한결 더 부드러웠다. 청보리는 누릇누릇 익어가고 있었다. 푸릇푸릇한 청보리는 예쁘고, 청초하다면 누릇누릇 익어가는 청보리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우아하고, 근사하다. 각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서 언제고 가도 좋은 곳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내 얼굴은 온통 불긋불긋 물들어 있었고, 뜨끈하게 열이 올라있었다. 이게 맑은 날의 뜨거웠던 태양 때문인지, 아니면 섬을 걷는 내내 기분 좋게 들떠있던 내 마음 때문인지 여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송악산 둘레길

: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      


         

   육지에서 내가 애정 하는 사람들이 올 때면 항상 빼지 않고 가는 곳이 있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 우리 엄마 아빠가 오셨을 때에도, 10년 지기 친구가 왔을 때에도, J의 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어김없이 걸었던 이 길. 바다와 산의 가운데에서 한 시간 반쯤 걷는다. 걷는 내내 나의 왼편으로는 파랗고 드넓은 바다가, 오른편으로는 푸르고 든든한 산이 자리하고 있어,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나는 언제고 자연의 한가운데에 그 일부로 놓였을 때에 가장 안전하고, 보호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가장 자유롭기도 하다. 



송악산 둘레길

: 내 마음도 따라 흐드러진다.                  


  

  가을이 되면 제주는 온통 하얗게 흐드러진 억새로 뒤덮인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새파란 바다를 바탕으로 하얗게 흐드러진 억색의 무리를 만나면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다. 제일 마음에 드는 억새 하나를 뽑아 들고 오른쪽 귀에 꽂아두고 황홀하게 걷는다. 내 마음도 따라 흐드러진다. 



숲         


      

어느 숲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숲에 갈 때면, 항상 숲의 정령의 집에 초대받은 손님이 되는 기분이다.

바다는 주인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구나 풍덩- 빠져들 수 있게끔 말이다. 숲은 조금 다르다. 어느 숲이건 숲을 지키고 있는 정령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 숲에 초대받은 손님이다. 겸손한 손님의 자세로 숲으로 들어가면.. 그러면 숲의 정령은 신성한 자연의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선물해준다. 그런 것이다. 



환상숲 곶자왈

: 숲의 정화              


 

 숲에 들어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위를 올려다보기를 참 좋아한다. 하늘이 흐려도, 혹은 맑아도 좋다. 제주의 숲은 언제나 푸른 잎이 있고, 와중에 붉거나 노란 단풍잎도 있다. 때때로 자연은, 숲은, 나무는 인간이 줄 수 없는 위안을 주고, 맑은 숨과 기운을 주고, 한 겨울에도 포근한 숨을 내뿜는다. 숲은 거칠지만 부드럽고, 어지럽지만 고요하고, 날카롭지만 포근하다. 제주에 살면서 전보다 숲에 가는 일이 훨씬 많아졌는데, 숲은 그 안에 들 때마다 나를 정화시키고, 겸손하게 한다. 



화순 곶자왈

: 다듬어지지 않은     


          

 숲의 기운이 필요할 때면, J와 종종 찾는 곳이 있다. 집에서 가장 가깝기도 하지만, 다른 곳보다 더 찾게 되는 이유는 덜 다듬어진 숲의 모습이 좋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을 덜 탄 곳. 언제 찾아도 북적이지 않는 곳. 나뭇잎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가끔 꿩 소리뿐이 없는 곳. 조용히 걷다가 걷다가 마주 오는 누군가를 만나면 오히려 반가워지는 그런 곳. 다른 무엇보다 숲의 기운을 온전히 받기 위해 꼭 필요한 곳. 가끔 길을 점령하고 있는 소들을 만나면 길을 비켜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면 된다. 



화순 곶자왈

: 가을 숲의 웨딩사진   


            

  어디서 태어났냐 물으신다면, 대지의 끝 그 어딘가, 물과 바람이 태어나는 곳이라 대답하지요.      

  우리가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어쩌면 대단히 흔한, 그러나 신비로운, 이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하찮고도 특별한 것이라 대답하지요.      

  어디로 가냐 물으신다면, 대지의 끝 그 어딘가, 물과 바람이 잠드는 곳이라 대답하지요.



탐라대학교

: 폐교와 홍가시나무길               



  제주에 내려와 처음 살았던 동네에서 이 나무를 처음 보았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저 멀리 보이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나는 궁금했다. 초록의 잎이었다가 그 색이 점점 붉게 변해가면서 나타나는 그 묘한 색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몇 해가 지나고 보니, 그 나무의 이름이 홍가시나무였다. 나무를 들여다보면 속에는 잎이 푸릇푸릇하고, 햇빛이 닿는 바깥 부분의 잎들이 붉게 물들어간다. 그 나무가 많다는 폐교를 찾아갔다. 막상 눈앞에 거대하게 펼쳐진 그 나무들을 보니, 예전에 차에서 스쳐가며 보았던 그 나무를 볼 때만큼 설레지는 않았다. 폐교의 곳곳을 걸어보았다. 이 곳에서 교재를 들고 바쁘게 걸어 다녔을 예전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대정향교

: 아주 오래도록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


               

  때론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이 곳에 살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날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그 오랜 세월을 한 모습으로 지켜온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아주 오랜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런 곳을 가면 마음이 겸손해진다.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의 모습처럼 그 오랜 것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으로 집을 짓고, 학교를 짓고 살아온 우리의 옛 조상들의 현명함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지금의 우리는 도대체 어딜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한탄스럽기도 하다. 



새별오름

: 숨은 벅차고 노을은 고요하다.      


         

  평화로를 타고 제주시를 오갈 때면 늘 보이던 새별오름. 어느 날 제주시에 다녀오던 길에 어김없이 새별오름이 보였고, 올라보자 하였다.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곧 후회. 여태껏 올라본 오름 중에 가장 가파른 오름이었다. 거의 땅에 붙어서 기어 올라갔다. 엉금엉금. 운동신경도 없고, 평소 운동도 안 하는 저질체력의 나는 숨이 무지 가빠왔다. 뒤에서 J가 밀어주었다. 나는 오르는 내내 징징거리며, ‘기울기가 70도는 되는 것 같아. 그렇지?’라고 말했고, J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70도는 기어오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웅다웅 다투며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다다랐다. 숨은 매우 벅찼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빠르게 뛰는 내 심장과 달리 노을은, 해가 지는 하늘은 매우 고요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70도는 되는 것 같다. 



사계 바다

: 우리는 수영을 못해요.     


          

  웃기죠. 제주에 사는 부부가 둘 다 수영을 못하다니요. 근데 진짜예요. 저는 원체 운동신경이 없는 편인 데다가 겁도 지지리 많아서 수영을 못 배웠어요. J는 운동신경도 좋고, 겁도 없는데 이상하게 수영만 못한데요. 하하. 천생연분인가요? 그래서 둘이 수영하러 바다는 잘 안 가요. 혹시 빠지면 서로 구해줄 수가 없잖아요. 하하. 올여름에는 구명조끼를 구입해서 물놀이라도 하려고요. 귀엽지요? 그래서 입수가 금지된 바다도 우리는 좋아해요. 그냥 모래사장을 거닐고,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만 보아도 좋아요. 



오설록 녹차밭

: 녹차의 초록을 좋아합니다.


               

  모든 종류의 초록을 좋아하지만, 유독 당근 풀의 초록과 녹차의 초록을 좋아합니다. 아, 생각해보니 우리 집 마당 돌길 사이에 자라난 이름 모를 풀의 초록도 좋아해요. 초록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힘을 가졌음에 틀림없다고도 믿어요. 그래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기하네요. 바다를 더 좋아할 때는 분명 파란색을 무지 좋아했는데, 나무와 숲이 더 좋아지니, 초록이 이렇게나 좋아졌어요. 

 여담으로.. 어렸을 적에 (지금도 종종) 나는 노란색, 파란색을 ‘노란, 파란’이라고 하듯이 초록색을 ‘초란’이라고 불렀어요. 초란.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면 “엄마! 초란색이야!” 라고 했지요. 



카멜리아 힐    


                

딱히 이 공간이 매우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나누고, 함께 나란히 걸었던 시간이 참 기억에 남는다.      


때론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중요하다.








제주 모슬포 낮고, 자그마한 옛집. 

활엽수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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