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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Feb 22. 2024

와비사비

- 완벽하지 않은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

주말마다 서평을 읽습니다. 가끔 밀리기도 해서 몇 주 전의 서평을 지금 읽었는데, <오리지널스>의 저자 애덤 그랜트가 그의 신작 <히든 포텐셜>에서 ‘품성 기량’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더군요. ‘도덕’으로 종종 간주되는 품성을 그랜트는 이렇게 재정의 합니다. 


“품성을 흔히 성격과 혼동하는데 이 둘은 같지 않다. 성격은 당신이 지닌 성질이나 경향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원초적 본능이다. 품성은 본능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는 역량이다… 성격은 평상시에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의 문제이고 품성은 어려운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다.”


저도 ‘품성’을 성격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기량’이라고 표현하니 좀 색다르더군요. 그런데 예로 들어놓은 ‘품성 기량’들이 흥미가 갔습니다. 독특했거든요. 가령, 제가 이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건축가 중에 안도 다다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거의 독학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반열에 오른 인물인데요. 이 사람이 가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의 대표적인 품성 기량이라는 것입니다.


“낡고 닳은 도기에 차를 따라 마시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일본적 삶의 방식 ‘와비사비’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삶을 지배했다.”


서평에 인용되어 있는 이 구절의 ‘와비사비’라는 단어가 좋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 이게 제게는 꽤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전 최근까지 물건을 사용하다가 어디가 망가지면 ‘쓸모가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일요일 점심때 집에서 커피를 내리다가 도자기처럼 생긴 커피 드리퍼를 잘못 떨어뜨려서 손잡이 부분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는 으레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그 ‘쓸모가 다한 커피 드리퍼’를 버리려 했는데요, 아들 녀석이 그런 제게 말하더군요. 


“아빠, 이거 커피 내리는 데는 아무 지장 없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평소에 아빠는 손잡이를 안 잡고 드리퍼의 몸통을 잡으시잖아요. 그냥 써도 될 것 같아요. 아까운데 버리지 마세요.”


그 별것 아닌 말이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삶에서 제가 얼마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지요. 또한 나이가 50을 넘어가면서 무릎도 아프고 이빨도 좀 고쳐야 하고 대장 내시경을 받아보면 용종이 한두 개 튀어나오고 뭐 그렇게 몸조차도 고쳐가며 써야 하다 보니, ‘하자’가 생긴 물건들에 대해 한층 너그러워진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손잡이가 좀 떨어졌으면 어때. 커피만 맛있게 내려지면 그만이지.’


아들 덕에 이런 맘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렇게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랜트가 중시하는 대표적인 ‘품성 기량’이라는 기사를 보니 기분이 좋았던 것이지요. 


‘학교에서 A+를 받는 완벽주의자는 직관적이고 익숙한 문제 해결에는 탁월하지만, 실제 세상은 훨씬 모호하므로 학교를 벗어나 잠재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불완전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왜 학교를 졸업하고 반백살이 되어 다시 만나면 공부 잘했던 범생이들보다 오히려 성적이 바닥을 맴돌았던, 하지만 남달리 친화력이 좋고 교우관계가 넓었던, 조금은 말썽을 부렸던 친구들이 크게 성공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품성 기량 중 하나를 느즈막 하게나마 갖게 된 것 같아 마음이 한껏 부풀었던 것입니다.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 그건 모든 것이 잘 갖춰진 데서 배우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뭐든 조금은 부족하고 아쉬운, 그런 결핍에서 얻어질 것 같네요. 또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고 꽃길로만 걸어온 사람 역시 배우기 쉽지 않은 기량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어떤 품성기량들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이제는 책을 직접 읽고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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