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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Sep 03. 2022

가난한 40대 싱글맘의 연애 현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가 절대 아니었다고!

내가 모든 상처를 딛고 드디어 진짜 연애다운 연애를 시작했다는 기쁜 소식이라면 좋겠지만, 그쪽으로는 별 의지도 관심도 없는 상태이다.


아무튼 얼마 전 대학 때 절친의 친구가 내가 사는 지역에 취업을 해서 오게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25년 전에 한 두 번 만났고 친구의 친구인 사이지만, 나도 그 친구의 이름과 얼굴이 얼핏 기억이 날 정도이니까 생판 모르는 남은 아닌 셈이다.


더욱이 내가 형제자매처럼 생각하는 내 대학 절친들 중 한 명의 친구이니까 내 친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고, 오지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지역에 내가 아는 사람이 취업을 해서 오게 되었다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리고 어린(매우 젊은) 시절부터 아는 사람이니까 이곳의 살벌한 교포들과 달리 나에 대해 아무 편견 없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앞으로 그 친구와 재미있게 이것저것 같이 할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딱히 외롭지도 않고 이미 좋은 미국 친구들이 있는데도 왜 자꾸 리스크를 감당하며 한국인 친구가 사귀고 싶은 건지, 이민자로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무의식의 아주 작은 결핍 현상인가보다.


어쨌든 그 친구와 만나서 다운타운 관광도 하고, 차가 없어서 운전을 못하는데다 한인마트도 하나도 없는 극한의 오지에 혼자 살게 된 친구를 위해서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고추장과 된장도 배달해주는 등 별것 아니지만 그냥 몇 번 챙겨주게 되었다.


그 친구에 대한 솔직한 내 느낌은 나랑 입맛도 잘 맞아서 같이 맛있는 한식 사먹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궁시렁대는 말투의 그 친구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비록 40대 중반에 만났지만 스무 살에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냥 내 절친이 우리 동네로 이민 온 반가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고 나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친구로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친구를 통해 소개 받은 낯선 사람일 뿐이고, 처음 하는 미국 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만 얻고 그냥 아무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처음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친하게 대하니까 큰 부담이 되었나보다.

갑자기 나에게 가끔 만나서  먹는 친구로만 지내자고 하더니, 세상에 남자가 자기밖에 없냐면서 당장 감정을 접으라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어쨌다고?

연락도 늘 그 친구가 먼저 했는데, 나를 작정하고 덤비는 여자처럼 몰고 가는 그 친구의 말에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가장 먼저 솟아올랐다.


내가 진짜 자기를 좋아하는지, 내 감정과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철벽을 치는 것이 황당했고, 정말 이성으로는 아무 관심도 없었는데 말로만 듣던 “0고백 1차임”의 주인공이 되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진정하고 차분히 생각해보니, 마흔 넘어 큰맘 먹고 유학 와서 힘들게 전문직이 되었는데 “애 셋 딸린 가난한 이혼녀”에게 발목 잡히기 싫은 기분이 이해가 되었다.(물론 그 친구 혼자만의 착각이지만)


한편으론, 이제는 내가 조금만 친하게 대하고 다가가도 손절하고 멀리 도망가고 싶은 불가촉천민과 같은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어쨌든 잠시 반가웠던 친구의 친구와의 만남은, 관심도 없는 남자에게조차 기피 대상 0순위에 등극한 나의 연애 현실을 얼떨결에 체험하게 된 냉혹한 경험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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