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나 Sep 07. 2022

숨겨진 존재에게 건네는 따듯한 위로

친구를 친구라 부르지 못하고 연인을 연인이라 부르지 못했던 암흑시대

작년에 모든 것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나를 일으켜 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기 작가인데, 돌이켜보면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음에도 멀리서 늘 나에게 따듯한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내 인생이 끝난 것 같던 시간 속에서 그 친구의 격려 덕분에 작가라는 꿈도 처음으로 갖게 되었고, 조금씩 힘을 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내 꿈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위해서 비싼 해외 배송료를 부담하며 좋은 책을 한아름 보내주기도 한 고마운 친구이다. 언제나 한없이 큰 힘이 되고 고맙기만 한 그 친구에게 가장 크게 고마운 특별한 일은 따로 있다.


교포 쓰레기에게 10년 동안 강제로 숨겨진 존재로 살면서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어떤 성품의 사람인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고, 훌륭한 성취를 이루고 있었는지에 상관 없이, 아이가 셋 있다는 이유로 나는 원치 않는 비밀연애를 해야 했고, 심지어 비밀결혼까지 하고 지은 죄도 없이 숨어서 살아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제대로 된 데이트 한번 못해 봤던 그 비밀연애는 진정한 사랑도 연애도 아니고, 결혼식은 커녕 한 집에서 같이 살아보지도 않았고 그냥 공동명의 계좌에 넣은 내 전재산만 털렸던 그 비밀결혼 역시 말도 안되는 괴상한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너무 좋고 그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냥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숨겨진 존재로 사는 세월은 늘 당당하고 명랑했던 성격의 나를 걷잡을 수 없이 어둡고 자존감 낮은 존재로 만들었다. 어느 새 나 스스로도 내 존재 자체가 부끄럽고 세상에 숨겨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몇 년 전 미국에서 처음으로 같은 또래 한국인 친구를 한 명 사귀었는데, 그 친구랑 나누는 대화, 함께 보낸 시간들은 분명 즐거운 소녀 친구들의 우정이었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교회 사모라는 이유로 나랑 친구인 것을 비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참 괴이한 말이다. 수많은 속깊은 대화를 나누고 꽤 오랜 시간 함께 했는데도 결국 끝까지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고 그 관계는 끝이 났다. 그 사람은 단지 전도를 위해 나에게 친구인 척 하면서 다가왔다가 내가 절대로 교회에 다니지 않을 것을 알고 떠난 것일까. 


물론 여러 해를 절친처럼 지내면서도 끝까지 절대 친구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친한 사이임을 숨기던 그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는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비밀연애, 비밀결혼에 이어 비밀우정까지 강요 당하면서 나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처럼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더더욱 어둡고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내 작가 친구의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다. 사실 빈털터리가 된 나에게는 그 수업료가 큰 돈이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울면서 쓰러져 있을 수 만은 없어서 친구의 수업을 어렵게 신청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를 찾고 치유가 될 수 있는 글을 쓰는 수업이었다. 비록 시차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참여해야 했지만, 줌으로 하는 수업이라서 미국에서도 한국에 사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하고 신기한 일인지, 친구가 다정한 목소리로 진행하는 수업을 듣는 것 만으로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어느새 숨겨진 존재로 사는 것이 당연해졌던 나는 친구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듯이 조용히 있었는데, 친구가 공개적으로 나에 대해 칭찬을 해주고, 나도 모르게 힘들어서 눈물이 났을 때 더 크게 같이 울어주면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친구라고 불러주는 모습에 죽었던 영혼에 숨이 불어넣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부끄럽지 않은 존재라고 세상에 큰 소리로 인정 받는 느낌이었다. 내 존재가 소중하고 당당한 것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오랜 시간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숨겨졌던 나에겐 다시 살아나기 위해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둠에 갇혀 죽어가다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살아나서 아주 오랜만에 조심스럽게 햇살 아래에 고개를 내밀어보는 기분이었다. 악독한 마법의 저주에서 드디어 풀려난 듯 안심이 되고 따듯한 기분이었다.


미성숙하고 인품이 낮은 몇 명의 사람들이 나를 짓밟고 내 존재를 부정했다고 해서 나까지 나를 버리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나도 그들의 악행에 동참하여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의 따듯하고 배려 깊은 우정이 내가 잃어버렸던 내 안의 힘을 되찾을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천천히 다시 스스로 일어서고 꿈을 꿀 수 있도록 내 친구가 부어준 마중물은 언제나 내 안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맑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난한 40대 싱글맘의 연애 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