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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름쟁이 Jul 13. 2020

나는 잔잔바리와 결혼했다

<<<잔잔바리 예찬론>>>


결혼식을 한달 정도 앞두고 있던 날이었다. 

잦은 청첩장 모임이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날과 다름없이 소소했던 나의 연애이야기, 결혼식 준비 이야기로 대화가 채워 졌다. 

그러던 중 친구의 입에서 한 마디가 불현듯 훅 튀어 나왔다. 


" 언니, 그래서 결국 잔잔바리와 결혼하는구나 " 

"응 ?? 잔잔바리...? 
하하하, 그래 나 잔잔바리랑 결혼한다!! " 

하고 나를 포함한 지인들은 이내 깔깔깔 웃어 넘겼고 그렇게 내 청첩모임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난 그 말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결단코 나의 예비신랑을 잔잔바리라고 칭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언짢지는 않았다.

단지, 평범하게 살아온 나의 예비신랑의 34년 일생을 "잔잔바리"라고 단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랍고 또 그게 딱히 부정할 것 없는 사실이라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을 뿐이다. 

잔잔바리라니... 조금은 서글품 웃음이 내 얼굴에 어리었다. 

 
난 종종 예비신랑에 대해서 소개할 때, 

'성격, 집안, 외모 경제력 등등 조건을 두고 도형을 그린다면 (예쁘고, 적당한크기) 다이아몬드가 그려질 남자' 라고 말했다. 

튀는 구석이나 특출난 점은 없지만, 그렇다고 모자란 점도 찾기 힘든 평범하고 적당한 남자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런 남자가 단 한마디, "잔잔바리" 였다니... 


잔잔바리가 무엇인가 ?

무난하게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사회가 정해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게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줄 알고 자란.. 

특별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삶을 책임져 가는 사람    


되짚어보면 나 또한 잔잔바리이다. 아니 내가 오히려 더 진짜 잔잔바리이다. 

난 경상도 어느 작은 소도시에서 태어나 아주 평범한 유년시절을 지냈고, 서울로 대학을 유학오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5평짜리 원룸을 시작으로 총 7번의 이사를 하며 좁아 터진 서울 바닥에 내 한 몸 뉘일 곳을 찾아 헤맸고  
30개가 넘는 이력서를 제출하고 1년의 강제 휴학 끝에 나름 이름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사원증은 목에 두름과 동시에 나의 목줄이 되어 이리저리 전쟁터로 이끌고 다녔고, 한달에 한번 단비같은 그러나 벼룩의 간 같은 월급을 모으고 또 모아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인생의 1막, 사회에서 내준 다소 일방적인 가이드라인 입시, 취업, 결혼이라는 미션을
그래도 나름, 열심히, 뒤쳐지지않게 통과한 노.력.파 30대 여자 사람인 것이다. 


나는 잔잔바리로 살아온 나의 삶이 가끔은 고단하고 힘들때도 있었지만

'평범하게 사는게 얼마나 힘든건 줄 아느냐! 나는 평범하다 ! 고로 잘 사는것이다' 라며 

자기 위로, 위안 삼으며 일상속에 나름 만족하며 잘 살아왔다. 


나의 인생 2막에도 딱히 큰 클라이막스가 생기지 않을 예정이므로(?) 

앞으로도 찐 잔잔바리로 살아갈 예정이다. 

굳이 애써 클라이막스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없다. 


남편과 나, 두 잔잔바리가 만났으니 뭐 아주 잘 만난것이 아닐까. 

천생연분이다!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삶을 사는 이 세상 모든 잔잔바리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했드면 좋겠다.


응원한다 잔잔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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