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어머니는 처음입니다만
신여성 시어머니 적응기
"난 효자랑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
8남매 맏이 그리고 지극한 효자 아빠와 사는 엄마를 보며 난 결심했다.
절대 효자와 결혼하지 않기, 그리고 며느라기 노릇 하지 않기.
나의 간절한 염원(?) 덕분인지 나의 시어머니는 내가 만나본 여성 중에 가장 시어머니 같지 않았으며, 그야말로 신여성이었다.
어머니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에 다니고 계셨으며,
돈 버는 여자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집안 청소나 궂은일은 아들을 시키라고 하셨으며 반찬투정을 하거든 밥을 굶기라고 조언해주었다.
무엇보다 시아버지와 다툼에도 절대 지는 법이 없으셨으며, suv를 몰고 담배를 피우셨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결혼 후 어머님과 나의 사이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런 사이였다.
가족 생일 명절 등 경조사 때나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안부를 물을 뿐이었다.
특별히 내 생일에는 편지까지 써서 용돈을 주기도 하셨다.
내가 아들밖에 없어서 이런 거 잘 못해하며 수줍어 웃으시며
후다닥 자리를 뜨셨다.
그렇게 어머니와 나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통해 점점 가족이 되어갔다.
가끔씩 만나 맛있는 거 먹고 헤어지는 그런 만남이 종종 있었다.
나의 시월드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친정엄마에게도 엄마가 시월드를 너무 험난하게 경험해서
나는 아주 편안한 시월드를 만났다고. 엄마가 내 몫까지 다 고생한 거라고 말할 만큼이었다.
결혼 얼마 후, 우리는 임신을 했고 딸아이를 낳았다.
육아휴직 1년이 끝날 무렵,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통보했다.
"엄마, 우리 엄마 집 아파트로 이사 갈게. 딸아이 등 하원 좀 시켜줘(수고비는 50만 원이야)"
그리고 나는 난생처음 살아보는 도시로, 시댁 바로 옆 동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어머님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게 되었고 아버님은 우리 딸을 무척 사랑했다. 그렇게 한집인 듯 한집이 아닌듯한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