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별명은 바리스타
신여성 시어머니 적응기
결혼 후 첫 명절을 맞이했다.
8남매 장남 며느리 친정엄마의 명절 히스테리를 경험한 덕분(?)인지 명절이 시작도 되기 전에 온갖 걱정과 스트레스로 이미 지친 느낌이었다.
남편 할아버지 댁은 남해였다. 밤늦게 출발한 우리는 새벽이 가까이 와서야 남쪽나라로 도착했다.
잠깐 눈 좀 붙일 겸 남편과 나, 시부모님이 나란히 방 한 칸에 누웠다.
난생처음 본 방도, 누워있는 자리 위치도 모든 것이 불편했다. 숨 쉬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하나하나 신경이 곤두서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
달그락달그락
어느덧 아침이 왔다는 신호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며느라기가 활동해야 되는 시간!!
잠에서 덜 깬 눈을 부릅뜨고 시어머니를 돌아봤다. 어머님 나갈 때 같이 나가야지~~
5분, 그리고 10분이 또 지났다. 바깥에서는 아침을 알리는 소, 닭들과 사람들의 분주한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내 마음은 조급해졌으나, 그 작은 방은 고요했고 평화로왔으며 시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만 우리의 존재를 바깥으로 알리고 있었다.
'혼자 나간다 or 나가지 않는다'
나의 눈치싸움은 얼마간 계속되었고 많은 내적 갈등을 일으켰으나 결국에는 나도 다시 모른 척 눈꺼풀을 덮기로 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시할머니가 아침밥을 모두 차려둔 후였다.
그렇게 밤길을 달려온 서울 식구들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밥상머리에 겨우 앉았다. 시할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식사라니.... 밥이 제대로 넘어갈 리 없었다.
길고도 짧았던 아침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명절 준비가 시작되는 분위기였다. 두리번두리번 시어머니는 또 없었다.
큰 아버님이 내 옆으로 오셨다.
"새 며느리야. 너희 시어머니 별명이 뭔지 아느냐?"
"글쎄요" 난 고개를 저었다. "뭔데요??"
"니 시어머니 별명은 바리스타다."
"아??? 어머님이 커피를 좋아하세요?"
"허허허 아니. 명절날 내려와서 아무것도 안 해. 그냥 커피만 타. 지금도 자러 갔다. 얼른 가서 커피라도 좀 타라고 해라."
역시나 신여성!! 우리 시어머니였다. 시댁에 와서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당당하고 뻔뻔했다!!
"명절에는 좀 쉬어야죠. 우리 어제까지 일하다 왔어요. 못하는 거 억지로 하면 병나요. 커피 드실 분?? 손!!!"
옆에서 듣고 있던 큰어머님이 다가오셔서 한마디 붙이셨다.
"아이고 내가 작은집 며느리는 어떨까 해서 봤는데 지 시어머니랑 똑같네. 똑같은 며느리를 데리고 왔어"
그렇다. 나는 아침식사 시간 순간의 선택으로 눈치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며느리, 지 시어머니랑 똑 닮은 뻔뻔한(?) 며느리로 찍혀버린 것이었다.
그 이후로 3번의 명절이 더 있었고, 시어머니와 나는 며느라기들의 본업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외길을 걷고 있다. 나는 2호 바리스타 며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