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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름쟁이 Nov 16. 2022

시어머니의 이상한 은퇴준비

주식 리딩 방에서 은퇴준비가 가능할까.

지극히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아침 6시 40분, 우리 부부는 출근을 위해 1호선 열차에 올랐고, 시어머니는 우리 집으로 출근하셔서 딸아이 등원을 책임지셨다. 오후 4시면 시아버지가 딸아이 하원을 시키고 어머님, 남편과 나 이렇게 퇴근을 하고 한집에 모였다.

평생 요리와 담을 쌓고 사셨던 어머님은 우리가 이사오자마자 저녁을 함께 하자고 먼저 말씀해 주셨다.
 
"나 요리는 못해. 그래도 회사 마치고 와서 밥 해 먹으려면 힘드니깐 우리 집에 와서 먹자"

살림이 버거운 나에게 정말이지 한줄기 빛과 같은 말이었다.
시어머니는 정말 요리를 못하셨지만 가끔씩 유튜브를 보고 새로운 메뉴를 해 주셨고, 시아버님은 매번 밀키는 또는 반찬집에서 공수해주신 음식들로 꽤나 그럴듯한 저녁밥을 대접해 주셨다.
저녁식사 후 함께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며 딸아이의 재롱을 보고 있자면 '아 이게 정말 행복이구나. 이렇게 남편을 통해 내가 새로운 가족을 만났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타인에서 진짜 식! 구! 가 되었다.

딸아이 재롱을 끝으로 시어머니는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와 남편은 우리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 인생에서 이토록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일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잔잔한 하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 나는 안락함을 느꼈고 또 행복했다. 이 균형이 당연히 쭉 계속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때는..

어느 날 시어머니는 회사 동료에게서 주식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셨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하여 전 세계 주식시장이 과열되고 있을 시점이었다.
본인이 다니고 있던 회사 주식을 몇 주 사고 치킨값을 벌었다고 좋아하셨다.
"그동안 돈만 번다고 주식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이거 참 재미있다"
어머님은 주식을 시작한 첫 달 수익이 본인 월급만큼 된다고 활짝 웃으셨다.

"나 은퇴하고 전업 주식투자나 해야겠다. 이걸로 우리 손녀딸 영어유치원비 충분히 벌 수 있겠다"

한 두 달이 지난 뒤부터 어머님은 주식 종목을 추천까지 해 주는 수준으로 발전하셨다.
5G 관련 주식에서부터 생소한 주식까지 문자로 카톡으로 오늘 사라 내일 팔아라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어머님 이 주식정보는 어디서 알려줬어요?? "
"이박사 님이라고, 우리 주식 방이 있어 거기서 알려줬어"
"거긴 공짜예요??"
"아니 2백만 원. 근데 그거보다 많이 벌어서 본전은 충분히 해"

실제 어머님이 알려준 주식으로 나도 돈을 벌기도 했다. 어머니와 나는 남편들 몰래 이종목 저 종목 투자하면서 나름 쏠쏠한 수익과 소소한 즐거움을 공유하기도 했다.


어머님의 주식 사랑은 점점 심해졌다. 딸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에도 주식 채팅방에 눈길이 머물러 있었고, 벌 때와 잃을 때의 어머니 기분 변화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렇게 어머님은 하루 종일 주식창과 주식 채팅방을 오고 가며 이박사의 시간을 늘려갔다.

어머님의 은퇴 시계는 부지런히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정년퇴직을 불과 10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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