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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Dec 13. 2019

사서 고생, 크로스핏 생존기(2)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고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고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고수가 아니니까 장비를 좀 탓해도 되고 가려도 되지 않을까? 학창 시절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필통은 또 화려해요" 돌이켜보면 우스갯소리인지 아니면 정말 사실에 입각한 얘기인지 헷갈린다.


나도 시험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 싶으면 애꿎은 필기구와 필통을 탓해본 적이 있다. hi-tech 같은 고가의 볼펜을 쓰면 왠지 더 필기도 잘 되는 것 같고 공부도 잘되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비단 공부뿐만이 아니다. 인생이 장비빨이지 뭐. 


이제는 가끔 즐기는 로드바이크도 시작은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였다. (1시간에 1,000원) 처음엔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가 즐거웠지만 익숙해지니 조금씩 스피드에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무거운 따릉이로 심장이 터져나가라 신나게 밟아봤자 가볍고 잘 나가는 로드바이크를 탄 할머니, 할아버지, 중고등학생 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역시 운동은 장비 빨"을 외치며 엔트리급 로드바이크를 냉큼 구매해버린다. 조금만 밟아도 깃털처럼 앞으로 나가는 로드바이크를 타보니 이건 마치 맛의 대 참치 수준의 신세계가 열렸다. 그리고 이것에 익숙해지고 실력이 나아지면서 여러 장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자전거 벨, 앞 뒤로 부착하는 라이트, 자전거 헬멧(사실 이건 장비병이 아니라 자전거를 탈 때 필수로 갖춰야 한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헬멧일 뿐), 생수병 거치대, 스페어타이어, 각종 연장, 펑크를 대비한 바람 넣는 미니 기계 등을 다 구입하고 나니 자전거 본체의 가격을 넘어버렸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


하지만 온갖 장비로 중무장을 하고 한강을 나갔는데 어디서 20년간 비 맞아 녹슬고 다 썩어가는 쌀집 자전거로 찌꺼덩찌꺼덩 공포의 소리를 내며 뒤에서부터 쫓아와 유유자적 나를 앞질러 아득하게 사라져 가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 고수를 만나고는 그 날로 나의 장비병이 사라졌다. 그리고 자전거를 탈 의욕마저 사라졌다. 커다란 부작용.


크로스핏도 마찬가지다. 등록 초기에는 장비를 신경 쓸 새도 없었다. 집에서 굴러다니던 NI*E 운동화 대충 챙기고 박스 공용 체육복을 입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크로스핏에 익숙해지기 바빴으니. 


그런데 시간이 지나 크로스핏에도 익숙해지고 조금씩 실력이 늘면서 또 장비병이 돋기 시작했다. 사실 장비병이 나쁘지만은 않은 게 실력에 맞는 적절한 장비를 갖춰줘야 부상도 당하지 않고 실력도 또 금방 는다. 과도한 장비병이 문제지.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은 운동복이었다. 사실 박스 공용 운동복을 입어도 아무 상관없다. 다만 여럿이 돌려가며 입는 것에 대한 찜찜함(물론 박스에서 알아서 깨끗이 세탁했겠지만)이 있어서 크로스핏 한 달 째부터 개인 운동복을 구비했다. (는 핑계고 디자인 구린 박스 공용 운동복보다 이쁜 걸 입고 싶어서?!) 사실 기능과 디자인을 모두 잡으면 최고다.


레깅스 같은 것이? 덧대있는 운동복(좌)과 속 팬티가 있는 운동복(우)


운동복은 나*키 dry-fit을 선호한다. 드라이핏 소재를 사용해서 가볍고 착용감이 좋고 왠지 땀을 많이 흘려도 상쾌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바지는 긴바지보단 반바지가 편하다. 대신 반바지 사이로 무언가? 보이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 속 팬티가 있는 반바지를 선호한다. 여자들처럼 레깅스를 입으면 더 편하고 운동할 때 내 근육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더 잘 볼 수 있겠지만.. 쫓겨나겠지



티셔츠도 반팔이 좋다. 역시 나이키 dry-fit 제품을 좋아한다. 디자인도 예쁜 것이 많다. 가장 맘에 드는 건 88 서울 올림픽 에디션 드라이핏 티셔츠. 하지만 최근에 귀여움에 반해 아디다스 티셔츠도 구입했다. 기능성 의류는 아니고 일반 면티지만 너무 귀엽다//_// 저걸 입고 박스에 가면 인싸 확정. 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스포츠 의류 입고 운동하면 기분도 괜스레 좋아진다. 


그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요가매트와 폼롤러였다. 크로스핏 초반만 해도 운동시간보다 조금 일찍 와서 박스 구석에서 폼롤러로 몸 구석구석을 미는? 사람들을 보며 '요란 떤다'라고 생각했다. 반성한다. 운동 전 폼롤러로 몸을 풀어주면 근육의 긴장도 풀어주고 가동범위도 늘려주며 부상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또한 운동 후에 하면 잔뜩 사용한 근육을 이완시켜 다음날 통증을 줄여준다.

요가매트는 처음엔 '이걸 사는 건 좀 오버 아닌가?' 생각했는데 폼롤러를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맨바닥에 폼롤러를 사용하면 굴러가는 게 아니라 그냥 스르륵 미끄러진다) 까끌까끌한 요가매트가 필수다. 그리고 매트 위에서 몸을 푸는 게 맨바닥에서 하는 것보다 덜 아프고 아랫집에 가는 소음도 적다. 


폼롤러의 경우 요가매트보다 좀 더 고민이 된다. 왜냐하면 3가지 강도와 3가지 길이 4가지 밀도 2가지 형태 등 선택지를 다 조합하면 대략 70여 가지나 된다. 일단 강도부터 확인해보자.



강도는 3가지로 분류된다.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EVA, 약간 딱딱할 수 있는 EPP, 그리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리밸런스 폼롤러. 폼롤러를 처음 싸 용한다면 부드러운 EVA를 추천한다. EPP의 경우 자칫 각목에 몸을 비비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구입했다가 아파서 안 쓰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몸이 너무 뻐근하거나 뻣뻣하고, 좀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을 받고 싶은 사람은 EPP를 추천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강한 자극(변태냐..)을 원한다면 리밸런스 폼롤러를 추천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폼롤러는 EPP다. 박스에서 써본 폼롤러와 동일한 재질이라 별 고민 없이 구입했다. 



이제 길이와 밀도를 고려해보자. 길이의 경우 거의 표준화된 것처럼 어느 회사든 90/60/45cm 3가지 종류를 판매한다. 45cm는 짧고 가벼워서 갖고 다니기도 편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작은 이 길이만으로 수행이 가능하다. 다만 몇몇 복잡한 동작을 할 땐 조금 짧을 수 있다. 60cm는 이 구역의 표준이다. 휴대는 불편해도 거의 모든 스트레칭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90cm의 경우 세로로 세워서 목부터 엉덩이까지 폼롤러에 몸을 대고 할 수 있는 고강도의 스트레칭까지 수행 가능하다. 


그리고 밀도의 경우 같은 부피의 폼롤러 안에 재질이 얼마나 가득? 들어있느냐를 말하는 건데 내구성 혹은 견고함과 연결되니까 오래 잘 쓰고 싶으면 g수가 높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2가지 형태의 폼롤러(좌)와 마사지볼(우)


형태는 원형과 반달형이 있는데 원형을 추천한다. 반달형은 원형과는 달리 몸에 대고 딩굴딩굴 굴릴 수가 없고 한쪽면만 쓸 수 있어서 활용도가 크지 않다. 그 외 하나 더 추천하면 마사지볼이 있다. 폼롤러와는 달리 좁은 근육부위의 뭉친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 조금 아프긴 해도.. 가끔 공부하거나 책 읽을 때 바닥에 대고 발바닥으로 굴리면 나름 기분이 좋다.. 음?


이제 운동화로 가보자. 사실 운동화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한 것은 크로스핏을 한 지 대략 2달 반이 지나고 나서이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굴러다니던 정체모를 러닝화를 신고 운동을 했다. 


운동화든 운동복이든 기능에 충실해야 좋다. 달릴 때는 러닝화를, 축구를 할 때는 축구화를, 자전거를 탈 때는 클릿슈즈(페달에 신발 바닥을 끼울 수 있어 페달과의 접지력을 높여 힘 손실도 적고 회전도 빠르게 가할 수 있다)를 신어야 효율적이다. 


나? 정체모를 러닝화. 나이키 프리런 제품 (좌) 로드바이크용 클릿슈즈(우)


당연히 크로스핏에도 전용 운동화가 있다. 하지만 난 그걸 몰랐지. 러닝화는 달리기 편하라고 만들어진 신발이다. 가볍고 통풍도 잘되고 단거리든 장거리든 달릴 때 발바닥이 아프지 말라고 대부분 푹신푹신하다. 그래. 이게 문제다. 푹신푹신한 거


푹신푹신한 쿠션은 달리기와 같이 일직선 운동이 아닌 앞뒤 양옆으로 격하게 방향을 전환하고 움직여야 하며 고중량을 단단히 잘 버티도록 바닥과 밀착되어야 하는 크로스핏엔 적합하지 않다. 급가속 급정거 급방향전환이 일상인 스포츠카의 미션이 세단마냥 푹신하지 않고 단단한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언젠가 박스 점프를 하고 내려오다가 러닝화의 푹신한 쿠션 때문에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뻔한 적이 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거 아니구나.


나이키의 트레이닝 전용화 메트콘(좌)과  내가 구입한 retaliation(우)


크로스핏 혹은 트레이닝 전용 운동화를 각 메이커별로 판매하고 있다. 나이키의 경우 메트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일단 딱 보기에도 신발 밑창? 이 단단해 보인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예쁘다. 다른 메이커에 비해. (순전히 개취의 영역입니다)


사이드의 빗금은 로프 클라임 할 때 발로 로프를 꽉 붙들고 신발엔 손상이 가지 말라고 있는 것. 뭐 다 이렇게 디자인에도 기능적인 이유가 있다. 


내가 구입한 건 그러나 메트콘이 아닌 retaliation tr2. 뉴욕 아웃렛에 갔을 때 메트콘은 한국 가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쌌고(...) R_TR2는 한국 가격의 거의 반값이었다. 메트콘보다 이름값은 덜하지만 기능상 많은 차이는 없어서 덥석 물어왔다. 매우 만족하며 사용 중이다. 


메트콘이나 Retaliation은 무산소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어느 정도는 유산소에 대응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서 간단한 수준의 달리기 등도 소화 가능하다. 그래서 크로스핏 용도로 딱이다.


더 철저히 장비를 나누는 사람들은 아예 무산소 운동(주로 중량)용으로 반스나 컨버스화 같은 바닥이 flat 한 단화 한 개와 유산소 운동용으로 괜찮은 러닝화 하나를 가지고 다닌다. 내가 만약 이렇게 신발 두 개를 샀다고 브런치에 올리면.. 이 인간 운동 중독 중증이니 말려주시길.


그리고 여담이지만 운동화에 맞는 스포츠 양말도 몇 켤레 구매했다. 기존에는 회사 갈 때 신는 페이크 삭스를 신고 그대로 운동화를 신었는데 운동할 때 조금씩 안에서 미끌거려 발이 밀렸다. 그래서 퐁 신하게 발을 꽉 잡아주는 스포츠 양말도 구매.



이제는 각종 보호대가 남았다. 아직 이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는데 실력이 계속 늘고 무게가 증가할수록 더욱더 필요성을 느낄 것 같다. 크로스핏이 바(벨)를 기반으로 여러 동작을 하는 만큼 손목이나 허리에 무리가 가는 동작이 많은데, 아무리 정자세로 해도 중량이 늘면 늘수록 손목과 허리에 부담이 가기 쉽다. 이럴 때 손목 스트랩이나 리프팅 벨트를 매면 내 몸을 보호해주고 내 운동을 조금이라도 지지(support)해줄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손바닥 보호대도 있으면 좋다. 쇠질?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손에 물집이 많이 잡히는데 이게 아예 굳은살로 변하면 괜찮? 근데 그 단계로 가기까지 살이 쇠에 밀리고 벗겨지고 다시 생기고 하는 과정에서 bar를 잡을 때 너무나 아파서 못 들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뭔가 거추장스러운 게 싫어서 이거는 구입할 생각이 아직까진 없다. 


지금까지 크로스핏을 시작하면서 눈여겨본 장비들과 직접 구입한 것들에 대해 살펴봤다. 적절한 장비의 도움을 받는 것은 운동 효과를 증대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과도하게 장비에 집착하는 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다. 다만, 실력에 따라 그리고 운동 종류에 따라 적합한 그리고 필요한 장비가 있는 건 맞다. 


운동 고수가 혹은 운동 굇수가 된다면 뭐 이런 장비들이 무슨 의미겠냐마는.. 우리는 고수가 아니니까 장비의 도움을 조금은 받아도 되지 않을까? 


다음 편은 크로스핏에 중독되면 해외에 나가서 어떤 짓?을 하게 되는지 알아보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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