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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Dec 15. 2019

여행자가 본 뉴욕(1)

뉴욕여행 프롤로그

이렇게 기대되지 않은 여행이 있었던가?


11월 말 뉴욕 여행을 하루 앞둔 어느 날 밤, 그 어떤 설렘이 느껴지지 않아 당황했다. 1년 내내 여행력을 모으고 모아 연말에 원기옥처럼 터뜨린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장기휴가인데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기계적으로 캐리어에 짐을 담고 있는 내 모습이 적잖게 놀라웠다.


남들은 가고 싶어 마지않는 뉴욕이지만 내게는 그저 역사도 얼마 되지 않고 오리지널리티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가 정신없이 뒤섞여 있으며 거대 자본으로 급격히 도시의 세를 말아 올린 뻔하디 뻔한 (서울의 공방 5 업 정도는 되는) 도시 여행지에 불과했다. (이 정도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그래도 이왕 결정된 여행, 애써 '도시 여행의 끝판왕' '세계 최고의 도시'라 스스로를 합리화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녀온 약 7일간의 뉴욕.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기대 없이 떠난 뉴욕은 어떤 모습일까?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장면을 짚어보자.


# 뉴욕의 첫인상_정신없던 JFK 국제공항

터미널 1에서 택시나 우버 등으로 시내를 가려는 사람들


어느 도시(국가)든 플래그십 공항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서울(한국)하면 떠오르는 인천 국제공항, 도쿄(일본)하면 떠오르는 나리타 국제공항, 파리(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샤를 드골 공항, 런던(영국) 하면 떠오르는 히드로 국제공항.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외국인들에게 첫인상을 담당하기 때문에(비주얼 센터랄까) 각 나라에서는 이들 공항에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편의성 청결성 효율성 치안 등등


미국을 대표하는 공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JFK 국제공항이다. 미국 본토 땅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나도 이 공항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 기대했다. 얼마나 좋은? 공항일까.


그런데 웬걸. 장장 14시간의 힘든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비몽사몽 정신과 천근만근 몸뚱이를 이끌고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왔는데 눈에 보이는 건 완전 아수라장.


생각보다 작고 노후화되어 초라하고 후줄근한 터미널에 택시/우버 등을 외치며 호객을 하는 기사들과 길 막하지 말고 빨리 갈길 가라는 공항 직원들의 안내와 강요섞인 몸짓, 캐리어를 든 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이용객들이 한데 어우러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JFK 국제공항은 국제선 기준 미국 최대의 공항이자 세계를 대표하는 공항이다. 터미널이 무려 6개. 인천 국제공항은 이제 겨우? 2개인데. 다만 명성 대비 공항의 역사가 오래되어 몇몇 터미널의 경우 굉장히 낡고 오래된 느낌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지어진 지 몇 년 안된 4 터미널 같은 곳은 인천 국제공항 같이 깨끗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터미널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깨끗함의 빈부격차가 심해 보이는 느낌적인 느낌은 이번 여행 내내 복선이 되었다.  내가 도착한 터미널 1은 이렇게 얘기한 듯 보였다. 어서 와, 뉴욕은 처음이지? 이제 시작이야


# 뉴욕엔 뉴욕만의 향기가 있다_쓰레기와 악취

공항에서 우버 타고 시내 첫 진입했을 때 내 눈에 보인 거대 쓰레기 더미들
길가에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 쓰레기와 각종 오물들(좌) 공원이라고 깨끗할쏘냐 쥐라도 나올법한 분위기(우)


뉴욕 여행을 간다고 하니 누군가 그랬다. 생각보다 더러운 곳이니 놀라지 말라고. '서울도 대로변이나 관광지만 깨끗하지 일반 주택가 같은 곳은 쓰레기도 쌓아놓고 청소도 잘 안된 곳 있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뉴욕, 정말 대체적으로 서울보다 쓰레기도 많고 지저분하고 더럽다(서울 만세). 


여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워낙 사는 사람들이 많고 인건비는 비싸서 청소부들을 많이 고용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대체적으로 시민의식이 떨어져(뉴욕인데? 이민자들 불법 체류자들 많으면 그럴 수도 있을까?) 길가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는 걸까?  분리수거나 쓰레기 버리는 규정? 이 약해서 저렇게 막 방치하는 건가?


물론, 뉴욕도 주요 관광지나 빌딩이 밀집한 곳은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한데 대체로, 정말 대체로 지저분한 것 같다. 공원이나 지하철도 예외없이 더럽고..대로변에서 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골목골목은 정말 신세계.


그리고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건 눈에 보이는 쓰레기보다 시도 때도 없이 급습하는 그 정체모를 매캐한 냄새다. 지저분한 거리에서도 나고 지하철에서도 나고 말끔하고 깔끔한 거리에서도 가끔 난다. 도대체 뭘까? 음식이 썩는 냄새인 건지 오래된 지하철 역사에서 올라오는 냄새인 건지..


혹자는 마약 냄새라고도 하는데 도대체 정체를 모르지만 한 번 맡을 때마다 오만정이 떨어지고 기분 나쁜 시큼한 향기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게 '생각나는 냄새'라는 거다. 한국에 돌아온 지 꽤 되었는데도 그 냄새가 가끔 떠오르며 몸서리친다. 뭐냐, 그 냄새의 정체는.


# 거대한 공사판, 병든 뉴욕

일상적인 거리의 모습. 뒤편 가게가 뭔지 알아볼 수도 없다
도시는 여전히 타워크레인이 올라가고(좌) 보행도로에서 밖을 보면 이렇게 갇힌듯한 풍경이 보인다(우)
철창 속을 걷는 기분
오래된 빌딩도 많아 건물 전체적으로 보수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오른쪽 사진은 그 유명한 플랫 아이언


도시마다 특유의 기세가 보인다. 상하이는 마구 성장해 나가는 기운이 느껴졌고 교토에서는 천년 고도의 정갈한 품위가, 서울은 이제 막 성장을 끝낸 어른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러면 뉴욕은 어떨까?


뉴욕을 여행하기 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번쩍번쩍한 고층건물로 즐비한 도시였는데 막상 가보니 도시 곳곳이 공사판이었다. 마치 나이 들어 여기저기 약해져 병들고 약 먹고 치료받는 것 마냥 여기저기 기둥을 덧대고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일까? 보행통로는 시도 때도 없이 보수공사 중인 철제 기둥들이 양 옆과 위를 막아놓아 밖에서 안을 보기에도 그리고 안에서 밖을 보기에도 불편하며 통행도 편치 않다. 그런 통로를 걸을 때면 마치 철창 안에 갇힌 채 걸으며 세상 밖을 보는 기분?


그래도 뉴요커들은 이게 일상이라는 듯 아무런 불편함 없이 거리낌 없이 도시 한가운데 철창 속을 자유롭게 누비고 다닌다. 그 어떤 불평이나 짜증 어린 표정 없이.


유럽에도 오래된 도시 많고 오래된 건물 많은데 왜 유독 뉴욕은 여기저기 거리가 공사판인 걸까.. 오래된 건물을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그냥 건물 그대로 놔두고 무너지지 않게만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걸까? 걸핏하면 건물 부수고 새로 짓는 서울이 더 나은 방법일까 아니면 이렇게 부수지 않고 노후화된 건물을 보수해서 오래 쓰는 뉴욕이 나은 방법일까, 아니면 취향의 차이인 걸까..



# 타임스퀘어, 공허한 뉴욕의 자화상

타임스퀘어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들

뉴욕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 몇 개 중 하나가 바로 타임스퀘어일 것이다. 처음 갔을 땐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다. 광화문이나 강남에서 보던 것과는 스케일과 차원이 다른 거대한 전광판들이 말 그대로 도배하다시피 눈 돌리는 곳곳마다 붙어 있다.


전광판에는 보기 좋고 매혹적인 상품들이 줄기차게 '나 좀 보세요'라고 뽐내고 있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낮이고 밤이고 이 곳에 모여들어 언제나 북새통을 이룬다. 화려함의 절정, 자본주의의 끝판왕 등 갖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여기, 가만 보면 실체가 없다. 


전체적으로 휙 둘러봤을 때 볼거리가 많아 보이긴 하는데, 그냥 북적이는 사람들 구경, 거대한 전광판 및 거기서 보여주는 상품들 구경, 그 아래에 있는 음식점이나 M&M 스토어 디즈니 스토어 구경 등만 있을 뿐 딱히 다른 건 없다. (뭐 이 정도로도 충분한지 모르겠지만..)


특히 타임스 스퀘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중앙에 있는 '원 타임스 스퀘어' 건물의 경우 25층 120미터 높이의 건물로 전면부의 거대한 스크린으로도 유명한데 딱히 건물 내부는 활용도 없이 비어있다고 한다.


여행지로서 이 정도 볼거리를 제공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어떤 의미를 더 찾으려는 거야?라는 생각도 들지만 뭔가 타임 스퀘어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지 1차원적인 시각적 즐거움 외 다른 의미를 찾는데 실패한 데서 드는 아쉬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 넘쳐나는 푸드 카트, 그러나 진짜는 하나뿐



뉴욕에는 약 3천여 개의 푸드트럭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딜 가도 보이는 것이 푸드트럭. 대부분 할랄 음식을 팔거나 케밥이나 꼬치류를 팔고 있다. 그런데 푸드트럭은 위생상의 문제로 아무 곳에 가서 먹지는 말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상하게 뉴욕을 돌아다니면서 길거리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뭔가 일단 맛이 없어 보인다. 음식 자체는 어딜 가도 맛있어야 하는 것들 뿐인데 보기에 당기지가 않는다. 푸드트럭에서 무언가를 먹는 사람도 보기 흔치 않다. 그런데도 푸드트럭은 여기저기 많다. 창업? 이 쉬워서 그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번 푸드 카트를 이용해 본적이 있다. 바로 뉴욕 현대미술관 앞에 있는 할랄 가이즈였다. 맨해튼의 53번가에서 작은 푸드 카트로 시작해 지금은 뉴욕 길거리 음식의 상징이자 뉴욕의 소울푸드로 불리는 할랄 가이즈. (서울에도 홍대와 이태원 등에 가게가 있다)


길거리 음식이 아니어도 워낙 맛있는 음식 가게들이 있어서 그런가, 뉴욕의 푸드트럭은 많지만 그 존재감은 빈약하다.


# 사라진 시민의식, 무법천지 도로


와.. 난 정말 뉴욕 와서 제일 놀랐던 게 서울만큼이나 혹은 서울보다 더 무법천지였던 도로. 우리보다 선진국이라 도로 위 매너도 좋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 걸. 보행신호는 정말 폼으로 달렸다. 빨간불인데도 그냥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왕복 2차선 도로 같은 경우는 눈치도 보지 않고 그냥 지나가버린다.


차가 신호대기 중이거나 말거나, 경찰이 보고 있거나 말거나. 사실 보고 있는 경찰도 딱히 무단횡단에 대해 이렇다 할 제제를 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왕복 2차선은커녕 4차선 혹은 6차선에서도 직진 신호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단체로!! 그러다 보니 운전자들도 신경질적으로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치어버릴 듯 다가와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사거리에선 종종 꼬리물기도 볼 수 있고 사방팔방 클락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기가 뉴욕이야 서울이야. 도로 위 사정은 서울이랑 비슷한데 무단횡단은 뉴욕이 한 수 위. 서울에선 아무리 폭이 좁은 도로라도 웬만하면 신호 기다렸다가 건너는데 여긴 뭐.. 그딴 거 없이 내킬 때 건넌다. 차와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도로와 인도의 경계가 불분명한 자유로움..이라고 합리화해본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 중인 사람들을 유심히 보면 현지인인지 여행객인지가 보인다. 망설임 없이 빨간불에도 건넌다면 분명 현지인이고, 망설이다가 주저주저하다가 눈치 보고 어설프게 발을 내딛으면 그건 여행객일 확률이 높다.


# 여행자를 삼키는 도시의 분위기, 뉴욕은 언제나 바쁘다


여행지에서 잃으면 안 되는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바로 여유다. 바쁜 일상을 피해 나만의 템포를 찾아 주도적으로 끌어가야 할 여행이 자칫 시간에 쫓기고 마음에 쫓기고 분위기에 쫓기면 여행이 일상이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여행지를 가든 내 템포에 맞춰 여행을 끌고 가곤 했는데 뉴욕에선 그것에 실패했다. 런던이나 파리, 홍콩 등 세계적인 대도시를 가도 여유를 잃지 않고 나만의 리듬에 맞출 수 있었는데 뉴욕이란 도시는 곳곳에 베인 선천적인 분주함 때문에 내 고유의 리듬을 잃고 같이 휩쓸려 버렸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고, 어딜 가도 공사 중이고, 어딜 가도 차들이 빵빵거리고, 사람들은 바삐 걸어 다니고, 하늘을 찌를듯한 높은 건물에 곳곳에 버려진 정신없는 쓰레기들에 전체적인 이미지가 정돈되지 않은 난잡함과 다양함과 카오스의 종합 선물세트랄까.


이게 나름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만.. 여행자를 삼킬듯한 이 도시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번잡하기로는 손꼽히는 도시들을 다 돌아다녀보아도 이 곳만의 느낌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여행자의 눈으로는 끝까지 보이지 않겠지.


조금만 쓴다는 게 글이 길어져, 프롤로그 2부에서는 뉴욕의 음식과 지하철, 그리고 마천루 등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사진도 제가 찍고 글도 제가 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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