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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Dec 29. 2019

재즈와 함께 깊어가는 방콕의 밤

방콕 최고의 재즈바 색소폰

"여행"이라는 마법에 걸리면 평소 안 하던 과감한 행동을 한다


방콕 여행에서는 한국에서 평소 가지 않는 재즈바에 가고 싶었다. 사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공연장을 자주 가지 않는다. 현장의 뜨거운 열기나 환호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도 좋지만 혼자 집에서 조용히 그리고 편하게 감상하는걸 더 선호한다. 


하지만 여행만 가면 현지 공연 하나 정도는 꼭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재즈의 경우 좋은 재즈바 많기로 유명한 상하이에서 단 한 곳도 즐기지 못한 채 돌아온 아쉬움이 큰 후회로 남아있다. 밤의 도시 방콕 역시 상하이처럼 유명한 재즈바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많은데, 그중에서도 전승기념탑 근처에 위치한 색소폰(SAXOPHONE)이란 곳이 유명하다.



택시를 타고 전승기념탑으로 이동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무척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탑을 제외하면 딱히 시간을 내어 들를만한 관광지가 아니라 동선에서 뺐는데 이렇게 방콕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어차피 한 두 번은 지나가고 여러 번 차 안에서 보게 된다. 



전승기념탐 근처에 내려 빙글빙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나온 색소폰 재즈바. 이런데 재즈바가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골목에 있기 때문에.. 의구심을 버리고 구글 신이 알려주는 곳으로 걸어가야한다. 


우리나라처럼 가게 앞에 '색소폰 재즈바'라는 거대한 간판 같은 게 없어서 여차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정면 사진을 잘 기억하면 된다. 


참고로 운영시간은 저녁 6시에서 다음날 새벽 2시까지이며.. 공연은 9시부터 시작하니 공연을 기대하고 너무 일찍 가면 곤란해진다.



설레는 맘을 안고 실내로 들어갔다. 그냥 지나칠 듯 말듯한 외부 풍경과는 달리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진한 음악의 향기가 확 풍겨오는 그런 느낌이랄까..


색소폰 재즈바를 찾은 시각은 대략 밤 11시가 가까워진 시점이었는데 이미 1층은 만석이라(1층에 있는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예약은 필수라고) 2층 구석진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1층은 이미 만석이고 2층 역시 여기저기 사람들로 꽉 들어찬 상태. 2층에서 내려다본 공연장 모습. 규모가 크진 않지만 그만큼 밀도 있는 에너지를 기대할 수 있었다. 



색소폰 재즈바의 내부 풍경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세련되고 적당히 낡았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내가 좋아하는 그런 풍경이었다. 


입장료가 없는 대신 음식이나 음료를 시켜야 한다. 나는 간단히 음료만(시키려 했지..) 시켰는데 오른쪽이 색소폰 모양의 맥주잔이다. 센스 있네.


나는 공연을 기대하고 왔는데 몇몇 사람들은 '음악 따위'라는 쿨내를 풍기기도 했다. 공연에는 신경도 안 쓰고 그저 자리에 앉아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러 번, 자주 왔다면 음악은 백그라운드로 깔아놓고 하고 싶은 걸 해도 되겠다 싶었던..



공연장 바로 앞자리에 앉은 행운아들. 행운 아라기엔 부지런하게 예약을 했겠지? 공연장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찾아온 살마들의 연령대가 정말 다양했다. 젊은 사람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이런 자유로움이 정말 좋았다. 어느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남녀노소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란 것이.


가게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쳤다. 한눈에 훑기에도 예뻤는데 구석구석 눈길이 가는 장식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그에 걸맞은 장식을 여기저기에 걸어둔다.



음료만 시키려 했는데 나의 식탐이 폭발하면서 값싼? 스테이크도 하나 시켜버렸다. 근데, 방콕에서 먹은 음식 중 이게 제일 맛없었다(...) 


몇몇 재즈바의 경우 구색을 갖춘답시고 식사 메뉴를 팔기도 한다. 하지만 어딜 가도 무난한 맛 이상을 보장하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재즈바에 오면 간단한 음료와 함께 음악이나 즐기자. 음식은 기대말고. 태어나서 고기를 남긴적이 손에 꼽는 나도 저 스테이크는 중도에 포기했다.



약간의 휴식시간을 마치고 드디어 밑에 아티스트들이 등장하여 악기를 세팅하더니 이윽고 음악 시작! 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공연에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음악 따위 공연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쿨내 나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2층 구석진 자리에서 음악을 들으며 단란하게 식사하고 있던 외국 커플.. 부러웠다. 솔직히. 이런데 처연할 수 있는 여유가.

난 방콕에 언제 또 올지 모르니 하나하나가 전부 다 눈길이 가고 소중한데



내가 머문 2층은 대략 이런 구조다. 7시 방향에 내가 고기를 남긴 흔치 않은 장면이 보인다(...) 여기도 사실 음악을 감상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다만, 난간? 때문에 1층이 잘 보이지 않아 무릎을 꿇고 고개를 빼야 된다는 단점이 있다. 


2층에서 충분히 음료와 음식(...)을 즐긴 뒤 자리를 옮겨보았다. 공연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정면으로 담은 모습. 각자 다양한 표정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다. 2층에는 당구대도 있다. 



1층으로 내려왔다. 적절히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곳에 서는 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확실히 2층보다는 1층이 공연을 감상하기에는 좋다. 두툼한 몸을 갖고 계신 아저씨는 예상대로 육중하고 두터운 음성으로 노래를 하셨다.


3평 남짓한 공연장에 겨우? 서너 명 되는 밴드였지만 색소폰 재즈바를 가득 채우기엔 넘치는 에너지와 공연이었다. 작은 공연임에도 아티스트들은 훌륭하게 그리고 즐겁게 연주하였다. 



보컬은 그 몸집만큼이나 육중한 존재감을 뽐내었고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후한 목소리는 큰 공연장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서두에서 조용히 혼자 음악을 감상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지만 확실히 공연은 공연만의 멋과 매력이 있다. 각종 악기들의 울림이 귀만 때리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의 대기를 통해 내 가슴으로 직접 전달된다. 말 그대로 가슴이 울리는 경험. 


그리고 작은 이어폰을 통해 얇은 창으로 찌르듯 귀로 음악이 흘러들어오는 게 아니라 거대한 망치로 귀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랄까. 얼굴 한 가득 꽉 차게 들어오는 소리의 느낌..귀가 아니라 온 몸으로 감상하는 경험..



1층엔 의자에 앉은 사람도 있고 바에 앉은 사람도 있고 서있는 사람도 있다. 자리가 없어서 2층에 갔다 해도 내려와서 적당히 눈치 보며 방해 안되게 서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공연장 바로 앞자리에 앉아 내내 진지하게 음악을 듣고 계셨던 할아버지. 계속 눈에 띄던 분이셨다.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문화를 즐기러 한 밤에 나올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장 맨 앞 줄에 앉은 사람들 표정은 특히 유심히 봤던 것 같다. 뭔가 다들 정말 음악을 사랑하고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 같아서



바에 앉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뒤를 돌아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방콕 색소폰 재즈바에는 현지인도 많았지만 서양인들도 많이 있었다. 


글로 제대로 표현 못하고 사진으로 대신했지만 정말 감동적이고 재미있던 경험이었다. 서울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재즈 공연이겠지만 타지에서 가볍게 크지 않은 비용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매너 있는 관객과 예쁜 공연장에서 즐기는 경험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방콕 색소폰 재즈바, 정말 강추..



재즈바는 새벽 2시까지 공연을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야 했기에 아쉽게도 공연장을 나왔고 잠시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데 아까 그 공연장 맨 앞줄에 앉아계시던 할아버님을 보아서 급하게 담았다. 정말 인상 깊었던 분인데 오른팔에 팔찌를 주렁주렁 매단 걸 보니 보통 분은 아니구나 싶었다. 젊게 사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고 부러웠던.



자정을 넘기니 꽉 막혔던 도로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흘렀다. 편하게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택했다. 다행히 가는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았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밤 길의 방콕은 정말 아름다웠다. 도시의 밤의 아름다움에 취하기 쉽지 않은데 차창 밖을 보며 말없이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깊어가는 밤을 함께한 방콕 재즈바 색소폰의 선율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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