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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안 Dec 31. 2020

해를 보내고 사랑을 쓰네

찬란한 슬픔의 여름,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제목 자체만으로도 모순이다. 알다시피 8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없다. 이 모순에는 의미가 있다. 8월은 주인공 정원과 다림이 만난 여름을 상징하고, 크리스마스는 해의 마지막에 있다는 이유로 죽음을 상징한다. 삶과 죽음, 대조적인 단어인 동시에 서로 양립할 수밖에 없다. 삶의 마지막은 죽음이고, 죽음은 애초에 삶이 시작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가장 이질적인 단어는 가장 밀접한 동시에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삶의 아이러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로 출발한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단어를 던진다. ‘죽음 앞에 사랑’과 ‘사랑 앞에 죽음’. 언뜻 비슷해 보여도 그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죽음 앞에 사랑이 인 사람은 바로 정원이다. 정원은 동네에서 조촐한 사진관을 운영한다. 장가도 안 간 채로 잊지 못한 첫사랑의 사진을 여태껏 사진관에 걸어둔 순정남이다. 동네 꼬맹이들의 싸움을 중재하고, 마지막을 앞둔 노인을 위해서 말없이 하지만 슬프지 않게 영정 사진을 찍어주는 다소 사려 깊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삶에서 얼마 남지 않 시간은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는 아무리 가르쳐도 리모콘 작동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술에 취해 모르는 사람과 시비가 붙어 생전 얼씬도 안 하던 경찰서에 들락날락한다.     


불안정한 그에게 창문 틈으로 삐져나오는 햇살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그 사랑의 주인은 바로 다림이다. 텅 빈 운동장에 외롭게 앉아 있던 정원은 다림과 함께 운동장에서 뜀박질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한다. 꼬맹이들에게 나눠주던 아이스크림도 이제는 정원과 함께 나눈다. 시간이 아까운 그에게 이보다 더 소중한 선물은 없다. 삶의 마지막에 주어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할까?     


반대로 사랑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다림이다. 주차 단속 요원으로 일하는 다림은 여름처럼 산뜻하고 건강하다. 정원과 다르게 젊고, 통통 튀는 구석도 있다. 순진하고 어설퍼 보이는 아저씨, 정원에게 이상한 끌림을 느끼지만 대놓고 표시하지 못한다. 소녀처럼 수줍고 투박하게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정원이 죽음으로 인해 삶의 불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호감과 사랑에서 갈등하는 그녀는 감정의 불안정을 느낀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가까스로 잡은 약속 장소에 가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밀당 끝에 결국 그녀는 답을 찾는다. 정원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군대 얘기를 들려줘도 재미있다고 여긴다. 심지어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할 정도라면, 정말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콩깍지의 폐해!)      


하지만 정원이 나눠주던 아이스크림처럼 시간이 지나자 이 모든 것이 녹아버린다. 정원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놓고 사라지는 산타처럼 사라진다. 그녀는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편지도 넣고, 심지어 답답한 마음에 사진관의 유리도 깨는 등 온갖 갖은 수를 쓰지만 사라진 산타에게 답을 듣지 못한다. 이후 쌀쌀하고 황량한 겨울의 뒷배경과 달리 사진관 앞에 웃고 있는 다림의 사진이 걸려있다. 다림은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핫팩 같은 대답을 그곳에서 발견한 것이다.     


사랑과 이별은 삶과 죽음만큼 대척점에 있다. 이별과 죽음은 결국 누군가를 지우는 일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죽음 앞에 놓인 사랑과 사랑 앞에 놓인 죽음. 이별이 주는 데미지도 큰데, 거기다 죽음이라니. 신이 만든 해악의 상자인 판도라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걸 꺼내라고 하면 두 단어를 꺼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신은 이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지 않은 걸까? 예상컨대 이 고통을 멈출 사이드 브레이크가 바로 사랑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이러한 사이드 브레이크에 관한 얘기다. 영원한 잠에 빠진 정원은 이 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로 떠났고, 다림도 사진관 앞에서 웃으며 그를 떠나보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랑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에게 8월은 찬란한 슬픔의 여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해를 보내며 나는 이렇게 또다시 사랑을 쓴다. 오늘은 괜히 기형도의 시가 읽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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