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첫사랑을 하나쯤 품고 산다. 두 번째 서랍에 고이 모셔둔 나만의 일기장처럼. 그렇다면 그놈의 첫사랑이란 무엇인가. 가장 아름답던 시절을 노래하던 가사는 어느새 잊히고, 음만 흥얼거릴 수밖에 없는 노래. 영원한 맹세처럼 운명을 믿어보지만 외려 반짝이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배우고, 돌이킬 수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주는 약간의 후유증을 겪는 것. 더 이상 또렷하게 호명할 수 없는 이름을 마음에 음각처럼 새기는 것. 우리는 첫사랑이 삶에 남기는 크고 작은 파도 속에서 살아간다. 휘청휘청.
드라마 ‘퍼스트 키스, 하츠코이’는 첫사랑을 동어반복 한 드라마답게 첫사랑에 관해 묻는다. 기억을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만나도 그때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유년 시절 서로에게 운명적 첫사랑으로 연을 맺었다. 하지만 여주인공 야에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고, 하루미치는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첫사랑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간다.
한 사람은 애 엄마가 됐고, 다른 한 사람은 약혼을 앞둔 상황 속에서 우연한 기회로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 야속하게 엇갈린 운명 속에서 서로 다시금 그때처럼 묘한 끌림을 갖는다. 드라마는 기구한 운명 속에서 기억을 잃은 여자와 죄책감을 안고 사는 남자가 이러한 운명 안에서 풀어내는 사랑의 방정식을 다룬다.
물론 그들이 다시금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판타지가 더해지긴 하지만, 이 방정식의 열쇳말은 바로 ‘용기’다. 모든 걸 기억하는 하루미치는 야에를 향한 자신의 마음과 이기심이 빚어낸 가혹한 운명적 장난에 놓인 첫사랑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는 용기를 보였다. 반면 야에는 기억을 되찾는 과정이 판타지스러웠지만 자신의 사랑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드는 용기를 보였다. 이러한 둘의 용기가 모여 사랑이란 하나의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가능했던 건 두 사람 곁에 있던 이들의 용기도 한몫했다. 하루미치의 약혼녀는 그가 약혼을 앞두고 첫사랑을 찾아간다고 할 때 잡는 대신 그를 생각해 외려 놓아주었고, 야에를 짝사랑하던 사수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여인이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 외려 ‘도망치지마!’라고 다독였다. 결별 신에서 자신들의 사랑 앞에 놓인 운명적 장난 앞에서 보여준 그들의 용기와 눈물은 이 드라마의 명장면이었다.
결국 사랑은 용기다. 운명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용기. 첫사랑이 휩쓸고 간 자리가 뼈아픈 후회로 남을지라도 강이 바다로 흐르듯, 밀물이 가면 썰물이 오듯. 도망치지 않고 다시금 나아가는 것.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억은 잊어버려도 사랑은 기어코 우리에게 찾아들 수 있다는 것. 기침과 사랑은 원래 숨길 수 없는 법이니.
영화를 보고 나서 새로운 이상형이 하나 생겼다. 하츠코이를 아는 사람. 홍 박사도 아니고, 사랑 박사도 아니지만, 하츠코이를 아세요? 라고 물었을 때 안다고 하면 그 사람과 같이 나폴리탄을 먹고 별을 보러 가야지. 그리고 언제든 도망치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