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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07. 2023

상처 바늘

아버지와 딸

2012년 분당한겨레문화센터 수업 <정혁준의 문장강화>에서 과제로 썼던 글이다.


불편한 솔직함

사실, 강의를 들으며 이런 글감은 나오지 않길 바랐습니다. 마음속 이야기를 예쁜 말들로 덮어낼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재주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솔직함이 독이 된다 말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사람들이 훗날 손가락질 하며 화살을 쏠거라 합니다. 화살을 감싸다가 깊어진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마음껏 얘기하라고 합니다. 아프면 참지 말고 표현해야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읽는 이 글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세상 사는 사람 중 누군가의 이야기려니 하며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유난히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겪는 삶은 아니기에 그것이 특별할 뿐입니다. 과제로 쓰는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제게 불편한 솔직함이기 때문입니다.




상처 바늘

아버지는 저의 상처 바늘입니다. 10대 사춘기와 20대 청춘에 그 바늘로 제 마음을 수도 없이 찔렀습니다. 찌르고 찔러 터져 버릴 때면 그 바늘을 부러뜨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울었습니다. 아버지를 울렸습니다. 상처를 찌르던 바늘은 터진 상처를 꿰매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바늘은 뭉툭해졌습니다. 상처도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을 만큼 아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상처 바늘입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사라진 아이를 키울 수 없어 형과 어머니에게 맡겼습니다. 가족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아이를 선뜻 맡기엔 모두가 어렵던 시절이었습니다. 한 여자를 사랑했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딸아이가 열 살이 되어서야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딸을 제 아이처럼 잘 길러줬습니다. 아들도 제 누나를 잘 따랐습니다. 상처 준 딸을 더 많이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잘못이 있어도 무작정 딸아이 편을 들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착하게 자랐지만 가끔 상처가 보였습니다. 딸아이의 눈물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바늘로 제 가슴을 찌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상처의 거름벼늘

(벼늘: ‘낟가리’의 경남 방언. 낟가리: 나무, 풀, 짚 따위를 쌓은 더미)

오래전, 한 시인이 쓴 ‘상처’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시인들이야말로 일반인들보다 상처의 폭이 넓거나 깊은 사람들이다. 아니면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개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깊게 파인 상처 하나씩을 몰래 간직하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그들은 상처의 거름벼늘을 쌓아놓고 있다. 그 겨름벼늘이 썩어 시라는 꽃을 피운다. 오래 잘 썩을수록 아름답고 진한 향기의 꽃을 피운다.
- 김선태, 『풍경과 성찰의 언어』, 2005, 작가.

상처가 깊어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 바늘로 자신을 너무 찌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상처를 잘 쌓아두고 썩히면 그 위에 예쁜 꽃이 핍니다.

불편한 솔직함일지 모르나 밖으로 꺼내는 과정이 상처의 거름벼늘을 잘 썩히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 위에 예쁜 꽃이 피면 그 향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의 방법으로 상처를 꺼냅니다. 세상의 모든 상처 위에 꽃이 피어나길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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