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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21. 2023

'남'의'편'과 함께 육아를(feat. 냉장고)

정신의 세계.
남편은 상담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신경정신의학의 세계를 불신한다.
의사가 엑스레이로 뇌를 찍어 잘못된 신경을 보여주기라도 했냐면서, 정신은 정신으로 이겨내는 거라 했다.
신경정신과 치료 중이라고 누구에게든 말할 수 있었지만, 남편 앞에서는 작아지기만 다.
나의 투병일지에 남편은 정말 '남의 편'이다.




쌍둥이 아이들이 태어난 지 30개월 무렵 시작한 발달지연 치료.
개인치료라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의사가 괜찮다고 해주길 바랐다.

발달센터의 치료는 선생님과 아이의 일대일 수업 40분과 부모상담 및 교육 10분으로 구성된다.
내게 주어진 10분.
내겐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이었다.
특히 아이 심리를 담당하는 놀이치료 시간에는 궁금했던 내용을 묻고 답을 구하고 메모했다.
부모교육 시간에 배운 내용을 최대한 실천하려 애썼다.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이집 생활에도 지도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상담 후 늘 아이 선생님과 공유하고 협력을 구했다.

남편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부모의 실천.
집에서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는 하루가 달랐다.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대."
"기질이 예민한 아이들이니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대."
발달센터에서 배운 내용은 남편과도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 러. 나.
남의 편이 내뱉는 가시 돋친 말은 아이의 발달치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선생님들은 프로필 있어? 경력이나 학력사항 꼼꼼하게 봤어? 그 사람들 말이 무조건 다 맞는 거야?
수험생들이 온라인 강사를 고를 때도 얼마나 따지는 데.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거리가 멀어도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 보는 건 어때?"

남의 편이 내뱉는 말들...
상담을 받아보지 않은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저런 얘기를 듣던 몇 년 전엔 정말 괴로웠다.
아무리 애써도 동업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남편은 내 가장 중요한 육아 동지였다.
아무리 남의 편이라 할지라도 육아에서 만큼은 한 배를 타야 했다.




냉. 장. 고.


남편이 물을 꺼내고 야식을 찾을 때 애용하는 공용 가전.
나는 결혼 살림을 장만할 때 가장 먼저 함께 골랐던 그 냉장고에 주목했다.
냉장고 문에 붙이자.
그럼 찰나의 순간에라도 읽어보겠지.
스쳐지나기만 해도 대화보단 백배 나을 거란 생각에 나는 우리의 소통 창고로 냉장고를 택했다.
남편이 봤는지, 실천했는지 심각하게 따져보진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냉장고에 대꾸하진 않았다.
가시 돋친 말이 붙어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메모가 계속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도했다.
냉장고에 무사히 붙은 메모지가 남의 편이 내 얘기를 잘 들어준다고 얘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메모들 중에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붙어 있던 내용을 공유해 본다.

* 부모의 의사를 전달할 때 '나 메시지'
너는 왜 그렇게 떠드니? X
네가 떠드니까 엄마가 손님과 얘기할 수 없어. O

* 긍정적인 말(원하는 행동을 얘기하기)
누워서 책 보면 안 돼. > 앉아서 책 보렴.
동생 때리지 마. > 동생과 사이좋게 놀아라.

* 구체적인 칭찬
장난감 정리하니 참 착하다. > 장난감이 제 자리에 있으니 보기 좋다.

* 잘못한 경우 행동만 야단치기
때리면 나쁜 아이야.(스스로 나쁜 아이라고 생각) > 왜 때렸니?

ㅡ일방적으로 지시와 명령하지 않기
이렇게 해. 저렇게 해.
ㅡ 비난하거나 비웃지 않기
이 바보야. 멍청하게 이것도 못하니.
ㅡ 비교하지 않기(자아존중감 발달에 악영향)
저 애를 좀 봐라. 너는 왜 그렇게 못하니?
ㅡ 적당히 둘러대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이는 실망
그래. 내일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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